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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
강단에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다
파도를 다스린 전사,
지성의 전장으로!
구종수 예비역 해군 중령
대한민국 해군을 수호했던 예비역 중령이 군복을 벗고 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라는 새로운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그는 파도치는 바다를 누비며 국가를 지키던 베테랑 군인이었지만, 이제는 미래의 장교들을 양성하는 지휘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동명대학교 군사학과 초빙교수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구종수 예비역 해군 중령의 이야기다.
글 박선경 사진 권진혁
GU JONG SU

구종수
예비역 해군 중령

정의로운 선도부, 군인의 길을 걷다
구종수 예비역 해군 중령은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동경했고, 고등학교 때 선도부를 하며 정의를 실현하는 삶을 꿈꿨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있었던 부산시 교육청 주관 전적지 순례 프로그램에서 강화도, 휴전선 부근 격전지, 독립기념관 등을 방문한 것은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전적지들은 전투에서 패배한 흔적이 남아 있었고, 독립기념관에는 일제강점기 조상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다시는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결심이 서자, 그는 곧바로 해군사관학교 진학을 목표로 삼았다.
1991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1995년 해군 장교로 임관했다. 이후 독도함, 구축함, 호위함, 초계함, 고속정 등 다양한 함정에서 근무하며 작전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한미 연합상륙훈련 작전참모로서 수십 척의 함정과 대규모 병력·장비를 동원한 연합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해군 생활은 자부심만큼이나 험난했다.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서해 최전방 해상에서 인양 및 지원작전을 수행하며 느꼈던 참담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바쁜 가운데도 공부하며 인생 2막 준비
해군에서 30년을 보낸 후, 전역이 다가오자 그의 앞에는 막막한 현실이 놓여 있었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내가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던 중, 군 생활 동안 대원들을 교육할 때 느꼈던 보람이 떠올랐다. 그는 자연스럽게 교육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를 위해 학위를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몇 년 전 야간대학원 박사과정을 시작했지만, 바쁜 군 생활로 인해 휴학한 상태였다. 지도교수님을 찾아가 복학을 요청하자, 교수님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50세가 넘어서 하는 공부가 힘들어도 끝까지 해라.” 그리고 그의 이름을 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구종수(具宗秀)라는 이름은 사소한 글자가 아니다. ‘종(宗)’은 우두머리를 뜻하고, ‘수(秀)’는 빼어남을 의미한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 말은 그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결국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 기회
전역을 앞두고 전직지원교육을 받으며 다양한 직업 정보를 접했고, 부산제대군인지원센터 상담사의 조언도 들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다. 군 생활을 오래 했으니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을 따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송섭영 상담사는 “그 자격증이 하고 싶은 일과 관련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그를 다시 고민하게 했다. 단순히 이력서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교육자로서 필요한 자격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그는 심리상담사, MBTI 전문강사, 커리어전문가, 컴퓨터활용능력 등의 자격증을 취득하며 교육자로서의 역량을 키워 나갔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해군 부사관을 꿈꾸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수업을 진행할 강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경험과 지식을 살릴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에 주저 없이 지원했고, 학생들에게 국가관, 안보관, 군 리더십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강의를 해보니 쉽지 않았다. 군에서 대원들을 대상으로 하던 교육 방식이 학생들에게는 다소 딱딱하게 느껴졌다. 그는 학생들이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강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 연구했고, 학생들의 피드백을 받아가며 발전해 나갔다.
군사학과 교수로서 새로운 도전
전역을 앞둔 시점, 그는 부산제대군인지원센터 상담사의 추천으로 동명대학교 군사학과 초빙교수 채용 공고를 접했다. 준비해 온 학위, 자격증, 경력을 바탕으로 지원했고, 다행히 면접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군에서 면접관 역할을 하던 것과 직접 면접을 보는 것은 전혀 달랐다. 다행히 상담사의 도움을 받아 자기소개서를 작성했고, 모의 면접을 거치며 철저히 준비했다. 그 결과, 최종 합격하여 현재 동명대학교에서 군사학개론, 군사법, 무기체계론, 유무인복합체계론, 위기관리론 등의 과목을 강의하게 되었다. 2013년 개설된 동명대학교 군사학과는 나승학 학과장을 포함해 군 출신 6명의 교수진이 체계적인 장교 양성을 위한 교육을 펼친 덕분에 졸업생 160명 전원이 육군/해군/공군/해병대 임관고시를 통과한, 명실상부 군 장교 양성의 요람으로 불린다.
교수로서의 삶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군에서는 실전 중심의 교육을 했지만, 대학에서는 이론과 실무를 균형 있게 가르쳐야 했다. 학생들이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강의 자료를 만들고, 강의 방식도 꾸준히 개선해 나갔다.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끼며, 군에서 경험했던 ‘교육의 가치’를 다시금 실감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부산 지역 고등학교 두 곳에서도 강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변화는 두려움이 아닌 기회다
돌이켜보면, 군 생활 후반부에 가장 두려웠던 것은 ‘변화’였다. 하지만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이고 준비할 때 더 큰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단단하고 차가운 얼음이 녹아내리듯 그가 삶의 변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이자 인상도 부드럽게 바뀌고 삶을 대하는 관점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가족들과 긍정적으로 관계가 변화해 가면서 행복을 느낀다. 그를 닮은 아들은 해군사관학교 후배가 되어 현재 서해 바다를 수호하고 있고, 대학생인 딸은 MZ세대 제자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아빠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군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지금, 그는 후배들에게 말한다. “버스가 지나갔다고 좌절할 필요 없다. 다음 버스가 반드시 온다. 중요한 것은, 그 버스를 타기 위해 얼마나 철저히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앞으로도 그는 교육자로서 더 성장하고,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군에서 쌓은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며, 제2의 인생에서도 세상에서 하나뿐인 소중한 나다운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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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실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남을 바꾸려는 것이고, 가장 쉬운 것은 나 자신을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룬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세상에 맞게 나를 바꿔 가다 보면 세상과 더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유연해진 자신의 발견뿐만 아니라 더 멋지고 더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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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성공에 대한 생각과 성공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은 ‘매일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매 순간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남들과 비교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만족하고 기쁨을 느낀다면 작은 성취가 모일 것이고, 이것이 결국에는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