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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
여성 최초 야전 주임원사에서
도시철도 보안관까지
부산 지하철 플랫폼에서 이어가는 헌신
정남숙 예비역 육군 원사
36년 7개월 동안 야전과 본부에서 수많은 장병들을 어머니처럼 품으며 책임과 헌신으로 군인의 길을 걸어온 정남숙 예비역 원사. 전역 이후에도 그의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은 부산교통공사 도시철도 보안관으로 시민의 안전을 지키며, 인생 2막을 힘차게 열어가고 있다. 군복은 벗었지만, ‘누군가를 지킨다’는 사명감만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글 박선경 사진 박진형

정남숙 예비역 육군 원사
JEONG NAM SUK

정의감 넘치던 소녀, 군인의 꿈을 품다
경북 경산의 작은 농촌 마을. 다섯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정남숙 예비역 원사는 언제나 활발했다. 병정놀이와 말타기를 즐기며 늘 남자아이들과 함께 뛰놀던 아이였다. 부모님은 농업에 평생을 바치며 ‘정직과 성실, 그리고 베풂’을 몸소 실천하였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신 그 가르침이 소녀에게는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
청소년 시절 위문편지를 통해 상상했던 “국군 언니”라는 호칭은 그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영화 속 당당한 여군의 모습과 6·25 전쟁의 참혹한 경험을 직접 들려주시던 아버지의 국가관이 그를 움직였다. “나도 저런 군인이 되어야겠다.”
결심은 곧 현실이 되었다. 대부분의 군가를 미리 외울 정도로 애정으로 입대를 준비한 그는 고등학교 교복을 벗자마자 1982년 3월 육군에 입대했고, 같은 해 7월 육군본부 인사운영감실 타자하사관으로 첫 보직을 받았다.

36년간의 군 생활, 여성 최초 야전 주임원사로
그에게 군 생활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었다. 삶의 전부였고,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 그 자체였다. 군수사령부 인사계에서는 수많은 부사관들의 인사·보급·교육을 총괄하며 ‘사람을 챙기는 군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본부근무대 보안담당관 시절에는 각종 보안 점검과 감사에서 단 한 건의 실수도 없이 임무를 완수해 다수의 표창을 받았다. 2000년, 나이 38세에 원사로 진급하며 누구보다 빠르게 그 자리에 올랐다. 탄약창 행정보급관으로 근무할 때는 장병들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돌봤다. 취사장 환경을 직접 확인하고 생활관 하나하나를 점검하며 병사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 덕분에 소속 중대는 각종 평가에서 늘 모범부대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평가나 성과가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 점호에서 보이지 않던병 사를 찾았는데, 화장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병원으로 이송해 생명을 살렸죠.”
그날 이후 ‘군인은 결국 사람을 지키는 자리’라는 믿음이 더욱 단단해졌다. 2010년 강원도 양구 2사단 31연대 신병교육대 주임원사로 임명된 그는 신병들의 생활을 꼼꼼히 챙겼다. 훈련병들이 의무실 진료를 받을 때면 사탕과 과자를 건네며 “힘내라” 격려했고, 수료식에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찾아온 부모님들께 “아들들이 든든한 군인으로 거듭나 자랑스럽다”는 말을 전하며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2014년에는 31연대 주임원사로 임명되어 여성 최초로 야전 주임원사 자리에 올랐다. 그 무게는 남달랐지만, 특유의 책임감과 열정으로 부대를 이끌었다. 같은 해 국군 모범용사로 선정되어 청와대에 초청받았을 때는 군 생활의 영광이 응축된 듯했다.
“여성 최초라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군인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버텼습니다. 무엇보다도 군 생활 중 수많은 인연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군수사령부에서 여군대장을 맡으셨던 조석희 중령님은 제 롤모델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좋은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고, 지금까지도 든든한 멘토로 남아 계십니다.”

전역, 그리고 다시 찾아온 도전
2018년 10월, 36년 7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만기 전역했다. 뿌듯함 속에서도 사회 진출의 벽은 높았다. 수십 년을 군에서만 살아온 사람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막막했다. 시·구청 일자리센터를 찾아다니고 채용공고를 모으는 날들이 이어졌다. 일상의 리듬을 놓치지 않으려 뒷산을 오르며 체력을 다지고 마음을 추슬렀다.
그사이에도 ‘사람을 돕는 자리’는 놓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 부산 한서병원에서 5개월간 방역 업무를 도왔고, 부산장애인 복지관에서 주 1회 식당 도우미로 20차례 봉사했다. 2024년에는 삼성희망네트워크를 통해 초등 특수학생 3명을 10개월 간 돌보며 ‘돌봄’의 감각을 이어갔다.
결정적 전환점은 제대군인지원센터였다. 상담사의 따뜻한 격려와 꼼꼼한 이력서 지도가 큰 힘이 되었다. 특히 김은석 상담사의 조언은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던 중 센터를 통해 부산교통공사 ‘도시철도 보안관’ 채용 소식을 접했다. 이력서를 다시 다듬고 용기를 낸 끝에 지원했고, 최종 합격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도시철도 보안관, 시민 곁의 든든한 방패
2025년 1월부터 그는 도시철도 보안관으로 시민 곁에 서 있다. 격일제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구서역에서 좌천역까지 14개 구간을 순회하며 이동상인 단속, 포교활동 제지, 소란행위 대응, 승객 불편사항 처리 등을 맡는다. 성추행이나 위급 상황 발생 시에는 초동대응과 역무 지원에도 나선다.
“군에서 배운 위기 대응 능력과 책임감이 지금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판단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힘은 군에서 얻은 가장 큰 자산이죠.”
정년은 66세까지다. 그는 앞으로 남은 4년의 시간을 또 다른 사명처럼 여기며, 하루하루를 성실히 쌓아가고 있다. 시민의 안전과 직결된 자리인 만큼, 남은 시간도 온전히 헌신으로 채워가겠다고 다짐한다.

인생 2막, 가족과 사회에 헌신하며
긴 군 생활 내내 가족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남았다. 야전과 본부를 오가며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고,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36년 7개월간의 군 생활로 직업군인으로서는 영광스러운 명예를 누렸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는 아내이자 1남 1녀의 어머니로서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가족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으로 보답하고자 합니다.”
동시에 사회와 후배들을 향한 헌신도 이어가고 있다. 부산재향군인회 이사, 재향군인회 중앙회 여성회 이사, 여성예비군, 방위협의회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제대군인지원센터 여성 제대군인의 멘토로 나서고 있으며, 산과 길을 오가며 끊임없는 도전으로 스스로를 단련한다. 한라산·지리산 등 100대 명산 완등, 제주 올레길 437km 완주, 지리산 둘레길 2회 완주, 영남알프스 6회 완등, 각종 둘레길과 등대 투어까지 그의 발걸음은 쉼 없이 이어졌다. 현재는 운탄고도 1330, 한티가는길, 200대 명산 완등에 도전 중이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남긴다. “전역 후에는 계급을 내려놓고 사회 초년생의 자세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제대군인지원센터를 적극 활용하고 적성에 맞는 자격증을 준비하며, 네트워크를 넓히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오늘도 시민의 하루를 안전하게 지켜내는 것, 그것이 제 두 번째 임무입니다. 군에서 배운 헌신의 정신을 지하철 플랫폼에서 다시 펼치며, 앞으로도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1. 1일 1만 보 걷기
건강은 최고의 자산, 꾸준한 걸음이 삶의 기초가 된다.
2. 시간과 약속 지키기
작은 습관이 신뢰를 만들고, 신뢰가 인생을 세운다.
3.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배려는 곧 바른 삶, 더불어 사는 길의 첫걸음이다.
4. 긍정적인 마인드 갖기
생각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지고, 결국 삶이 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