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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있는 여정

기억을 품은 길, 평화를 향한 발걸음

의정부·남양주 평화로드

광복 80주년을 맞은 여름,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을 따라 길을 나섰다.
나라를 되찾은 기쁨만큼, 그날을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이들의 결의와 희생을 더 깊이 되새겨야 할 때다. 경기도 남양주와 의정부를 잇는 길 위에서 그 결의의 자취를 따라 걸어보았다.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기억’이 피어나고, ‘책임’이 이어지며, ‘평화’가 조용히 마음에 스며들었다.

박선경 사진 최다영

의정부·남양주 평화로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억하다
남양주 ‘REMEMBER 1910’

첫 번째 목적지는 남양주 금곡동에 위치한 ‘REMEMBER 1910’이다. 나라를 잃은 고종 황제와 백성들의 한이 서린 남양주 홍유릉 앞에 자리한 이곳은 대한독립을 위해 토지 등 전 재산(2021년 기준 2조 원 이상)을 희사한 이석영 선생과 6형제의 애국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기억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역사적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밝고 현대적인 외관이 인상적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이석영 선생과 그 형제들이 남긴 흔적이 깊고 선명하게 다가온다. 어두운 지하 전시실에서 조명 아래 환하게 빛나는 조형물 ‘빛을 잇는 손’ 앞에 서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맞잡은 손들이 마치 우리에게도 손을 내미는 듯했다.
청소년들이 검사와 변호사가 되어 친일파를 단죄하는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역사법정이 있고, 바로 옆으로 역사감옥으로 이어진다. 서대문형무소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뤼순 감옥의 무거운 공기가 온몸을 압도했다. 나라 잃은 슬픔과 독립을 향한 갈망이 묵직한 침묵 속에서 전해졌다.
지상으로 올라와 이석영광장에 서자 눈부신 햇살과 싱그러운 나무 그늘 아래 여섯 개의 돌이 보였다. 이석영 선생과 형제들이 결의를 다지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 공간은 평화롭게 쉬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과 어우러지며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책임의 품격을 간직한 곳
남양주 ‘궁집’

REMEMBER 1910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궁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고요한 한옥마을 같은 이곳은 마치 다른 시대로 들어선 듯 시간마저 느리게 흐른다. 마을 입구 작은 연못 앞에 자리한 궁집은 조선 영조 임금이 능성위 구민화에게 시집 가는 막내딸 화길옹주를 위해 지어준 집으로, 나라에서 대목장과 재료를 보내어 지었기 때문에 ‘궁집’이라 불린다. 현재 국가민속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화길옹주는 혼인 후부터 별세할 때까지 17년간 이곳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세월이 흘렀어도 기품 있게 유지된 ‘ㅁ’자 형태의 안채와 ‘ㄱ’자 형태의 사랑채는 옹주의 단정한 삶을 짐작하게 한다.
도시개발로 사라져가는 한옥에 안타까움을 느낀 예술가 故 권옥연, 이병복 부부가 1970년대부터 궁집과 주변 토지를 매입하고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철거된 전통 한옥들을 이곳으로 옮겨 지으면서 현재의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궁집 외에도 용인집, 군산집, 다실, 초가 등 9채의 한옥이 시내가 흐르는 마을 옛길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마을 곳곳을 천천히 걸으며 듣는 바람소리와 새소리는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잊게 한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평화롭게 흘렀다.

전장을 평화로 되살린 곳
의정부 ‘역전근린공원’

고즈넉한 궁집을 뒤로하고, 다음 여정지인 의정부로 향했다. 도착한 역전근린공원은 미군기지였던 공간을 시민들이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되살린 장소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마주한 안중근 의사 동상은 결연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순국 직전 동생과의 면회를 담은 사진과 그의 생애를 따라 새긴 문구를 읽으며 숙연한 마음이 든다. 안중근 의사 동상 오른쪽 옆으로는 평화의 소녀상이 조용하지만 굳건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조금 더 걸어가자 베를린 장벽이 나타났다. 2014년 독일 정부와 베를린시가 무상 기증한 것으로, 국내에서는 가장 많은 ‘5조 각’이 세워져 있다. 과거 냉전의 상징이었던 이 장벽은 지금 이곳에서는 평화와 통일의 희망으로 우뚝 서 있다. 분수와 벤치, 나무 그늘 아래서 편하게 쉬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곳이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 온전히 회복된 공간임을 보여준다.
광복 80주년, 짧은 하루의 여행이었지만, 오랜 여운을 남겼다. 독립과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의 결의, 조용히 책임을 다한 이들의 삶, 그리고 전쟁의 흔적 위에 피어난 평화. 우리는 이 모든 것 위에 서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발걸음마다 느껴진 이 진실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살아 숨 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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