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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
특전사에서 시내버스로,
네 바퀴로 달리는 인생 2막
새벽별과 함께 시작하는 29살의 새로운 전투
김성진 예비역 육군 중사
8년간의 특전사 복무를 마친 그는, 이제 또 다른 ‘전장’인 도로 위를 누빈다. 총 대신 핸들을 잡고, 전우 대신 승객을 태운다. 새벽 4시, 아직 별빛이 남아 있는 차고지에서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그의 하루는 시작된다. 군 시절에 익힌 끈기와 책임감으로 오늘도 ‘땡큐 31번’ 버스의 운전대를 잡는 29살 예비역 중사. 그의 이야기 속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어디서든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의지가 담겨 있다.
글 박선경 사진 최다영, 박진형

김성진
예비역 육군 중사
K I M S U N G J I N

호기심 많은 소년, 군복을 입기까지
김성진 예비역 중사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 덩어리였다. 누가 뭐라 해도 직접 부딪쳐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백문이 불여일견’이 그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이었다.
운동에 진심이었던 학창시절, 합기도장에서 만난 관장님의 영향으로 경찰의 꿈을 품게됐다. 그 꿈을 좇아 대학에 진학했지만,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컸다. 적응은 쉽지 않았다.
그 무렵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 문장이 있었다. 운동하던 시절부터 가슴 깊이 새겨둔 ‘안 되면 되게 하라’.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태도. 그 말이 주는 강렬한 울림은 해병대를 생각하던 그의 계획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특전사라는 길을 선택한 그는 첫 신체검사에서 시력 문제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라섹 수술 후 재도전 끝에 마침내 합격. 2017년 3월 27일 특전부사관 후보생으로 입대하는 순간 그의 인생 1막이 막을 올렸다.

특전사에서 배운 끈기와 겸손
특수전학교에서 4개월간의 혹독한 교육 과정을 거친 그는 제9공수특전여단 53대대 화기담당관으로 배치됐다.
부대의 모든 총기 재원을 관리하며, 전투 상황에서 이상 없이 작동하도록 유지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화기담당관은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아요. 꼼꼼함과 성실함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낙하산 강하, 해상 훈련, 혹한기 훈련, 산악 훈련 등 군에서 쌓은 경험들 중에서도 제주도에서의 한 달간 전술 훈련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폭설이 쏟아지던 어느 날, 막내였던 그에게 눈을 치우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하지만 쓸고 나면 그대로 다시 쌓이는 눈,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이었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버티는 힘을 길러준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이런 경험들이 그에게 겸손함을 가르쳤다. “군대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에요. 전우를 믿고, 내 몫을 다하고, 서로를 지켜야만 하죠.” 그 마음가짐은 전역 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30살 전, 인생의 방향을 틀다
시간은 물 흐르듯 빨랐다. 어느새 8년이 지나고, 그는 28살이 되어 있었다. 계급은 올랐지만, 마음 한구석은 점점 공허해져 갔다. 새로운 배움보다는 반복되는 일상이 많아졌고, 자신이 도태되고 있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성격도 점점 소심해지고, 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생활이 계속됐어요.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다. 30살 전에 전역하자고.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곧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떠올랐다. 바로 ‘운전’이었다.
군 복무 중 이미 대형·특수면허와 화물운송자격증을 취득해 둔 상태였다. 전역 후 제대군인지원센터의 추천으로 KD운송그룹에 지원했고, 약 4개월간 실전 교육과 견습을 거쳐, 드디어 ‘시내버스 기사’라는 새로운 직함을 얻었다.



땡큐 31번, 새벽 4시부터 시작되는 작전
그가 운행하는 ‘땡큐 31번’ 버스는 남양주시 진벌마을에서 출발해 진접역과 오남역을 거쳐 돌아오는 왕복 2시간 코스다.
하루 7차례 같은 길을 반복해서 달린다. 새벽 4시 출근, 오전 5시 25분 첫차, 그리고 밤 9시 25분 막차까지 긴 하루를 보낸다. 집에 돌아가면 밤 11시, 몸은 고되지만 “하루를 잘 보냈다”는 뿌듯함이 피로를 덮는다.
승객과의 ‘배차 약속’을 지키는 것은 그의 철칙이다. “배차 시간은 승객과의 약속이죠.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노선을 처음 맡았을 땐 코스와 도로 상황을 하나하나 꼼꼼히 메모하며 익혔다.
승객들의 유형은 참으로 다양하다. 요금을 내지 않는 승객, 에어컨 바람이 약하다며 불만을 터뜨리는 승객, 배차 간격에 대해 항의하는 승객까지,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군에서 익힌 위기 대처 능력이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군대 덕분에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적절히 행동하는 힘이 생겼어요.”
체력 관리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퇴근 후에도 윗몸 일으키기, 팔 굽혀 펴기, 스쿼트 등을 꾸준히 하며 건강을 챙긴다. “버스 기사도 체력이 생명이에요. 오래 달리려면 몸을 만들어야 합니다.”
건강하게 달리며, 전국을 누비는 그날까지
그는 후배 제대군인들에게 말한다. “걱정만 하다 보면 얻는 게 없습니다. 계획하고, 준비하고, 행동하세요. 인생에는 실패가 없어요. 성공과 그에 맞는 과정만 있을 뿐입니다.”
그의 앞으로의 계획은 명확하다. 건강하게 정년까지 버스 운전을 하거나, 시외버스·리무진 기사로 전국을 누비는 것이다. “군 생활 때 못가본 여행지를 마음껏 달려보고 싶어요.”
오늘도 그는 도로 위에서 자신만의 ‘작전’을 펼친다. 총 대신 핸들을 잡았을 뿐, 책임감과 약속을 지키는 마음은 여전하다. 승객의 하루를 안전하게 이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새로운 사명이다.
특전사에서 버스 기사로. 전혀 다른 듯 보이는 두 직업 사이에는 놀랍도록 닮은 구석이 있다. 사람을 지키고 약속을 지키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군인정신이 아닐까. 그렇게 연결된 그의 인생 2막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삶은 멈추지 않는다
인생은 흐르는 강물과 같습니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우리도 한 곳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직접 겪어본 모든 순간들은 언젠가 내 삶의 소중한 자산이 됩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도전했다는 그 자체가 이미 값진 경험입니다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 시련은 반드시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누군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진짜 한계는 오직 내가 정하는 것이며, 고통과 역경조차 성장의 밑거름이 됩니다.
자신을 지켜야 남도 지킬 수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습니다. 자만하지도 말고, 스스로를 지나치게 낮추지도 말 아야 합니다. 내가 먼저 건강하고 행복해야만,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도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