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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

말과 사람 사이에서
길을 찾다

정훈장교에서 국어강사로,
단어보다 마음을 가르치는 선생님

신나라 예비역 육군 대위

군 시절, 군은 그녀의 교실이었다. 병사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올바른 가치와 문화를 전하는 일은 그 자체로 교육이었다. 시간이 흘러 군복 대신 분필을 든 그녀는 다시 교단에 섰다. 이번엔 국어책을 펼치며 ‘말과 사람’을 가르친다. 육군 정훈장교 출신, 지금은 서울 노원구의 한 국어입시학원에서 중등부를 가르치는 신나라 예비역 육군 대위. 군대와 교단, 두 세계를 잇는 그녀의 이야기는 제대 이후의 두려움을 배움의 시간으로 바꾸어낸 여정이다.

박선경 사진 박진형

신나라 예비역 육군 대위

신나라 예비역 육군 대위

S I N N A R A

책임감으로 자란 아이, 리더가 되다
그녀의 어린 시절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리더’다. 학급 회장은 늘 그녀의 자리였고, 친구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가장 먼저 나서는 아이였다. 별명은 조금 독특했다, ‘조폭 마누라’.
하지만 그건 싸움 때문이 아니라 약한 친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성격이 활발해 남자아이들과도 잘 어울렸기 때문에 비롯된 별명이었다.
그녀는 일찍부터 책임감의 무게를 배웠다. ‘K-장녀’로서 가정의 중심을 맡았고, 동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그 책임감은 자연스레 리더십으로 이어졌다.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은 저를 과잉보호하지 않으셨어요. 스스로 부딪치며 배우게 했죠. 넘어져도 괜찮다고,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하셨던 말씀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요.” 부모가 건넨 그 신뢰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존감으로 자랐고, 이후 군 조직과 교단에서 흔들림을 막아 준 나침반이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녀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책과 글을 좋아했던 그녀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며 언어의 깊이를 배웠고, 그 감수성과 표현력은 훗날 정훈장교로서 ‘말로 사람을 이끄는 힘’의 밑거름이 되었다.

말로 이끄는 장교, 정훈의 길에 서다
2012년 대학 ROTC(학군단)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군인의 길에 들어섰다. 육군 부사관으로 정년까지 근무한 원사 출신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를 보며 질서와 책임, 그리고 사명감을 배웠어요. 제게 군대는 두려움이 아니라 익숙한 곳이었죠.”
2014년 임관 후 6년 동안 육군 제12보병사단 정훈공보부에서 시작해 11기계화보병사단, 인사사령부, 국군재정관리단까지 다양한 부대를 거쳤다. 그녀의 보직은 정훈공보장교. 군 조직의 정신전력과 교육, 대내외 홍보를 담당하는 ‘소통의 최전선’이었다.
“정훈장교는 전투력을 만드는 사람이에요. 병사들이 심리적으로 무너지면 조직은 굴러가지 않아요. 그래서 늘 ‘듣는 힘’이 필요했죠. 설득이 아니라 이해로 시작하는 소통이요.”
정훈장교는 부대별로 순회 강의를 다닌다. 한 번에 200명 가까운 병사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강의할 때면 누구라도 긴장하기 마련이지만, 그녀에게는 오히려 그 무대가 즐거웠다. “집에서는 내향적인 편인데, 군복만 입으면 성격이 달라졌어요. 강의 중 분위기가 지루해지면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했죠. 나중에는 친구들 결혼식에서 사회나 축가를 맡을 정도였어요.”
그녀는 ‘정훈장교는 늘 올바르고 긴장감 있게 살아야 한다’는 인식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교감했다. “힘들어도 웃으려 했고, 제가 하는 일을 즐기려 했어요. 지금의 제 강의 방식도 그때의 태도에서 시작된 거예요.”
특히 2016년 강원도의 혹한기 훈련 당시, 영하 20도의 눈밭에서 병사들과 함께 훈련하며 얻은 경험은 잊지 못한다. “눈을 깜빡이면 눈물조차 얼던 날이었어요. 그래도 모두 함께 버텼죠. 그때 깨달았어요. 리더십은 명령이 아니라 공감에서 시작된다는 걸요.”
군은 그녀에게 체력보다 ‘인내력’을, 명령보다 ‘의미’를 가르쳤다. 그 시간은 지금의 강사 신나라를 만든 원형이었다.

군복을 벗고, 나를 다시 찾다
2020년 전역을 결심했다. 군은 여전히 애정이 깃든 공간이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른 부름이 있었다. “군 생활이 안정적이 긴 하지만, 저답게 살고 싶었어요. 주어진 규율을 따르는 일보다, 제가 만들어가는 일을 하고 싶었죠.”
그러나 전역은 예상보다 갑작스러웠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역식조차 열리지 않았다. 아쉬움은 글로 채웠다. “이제는 글로 내 삶을 써내려가자.” 그녀는 군 생활의 이야기를 엮어 에세이 군대 나온 여자인데요를, 스페인 여행에서 느낀 감정을 담은 시집 나쁜 생각을 출간했다. “책을 내면서 진짜 사회인으로 출발한다는 각오를 다졌어요.”
전역 후의 세상은 낯설었다. 리조트 영업, 모바일 결제회사, 쿠폰 마케팅 기업.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며 적성을 찾아갔지만, 마음 한켠에는 늘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남았다. 그 과정에서 서울제대군인지원센터의 박용하 상담사가 해준 조언이 전환점이 되었다. “단순히 이력서를 채우기보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답은 분명했다. 언어로 세상과 연결되는 일, 바로 교육이었다.

다시 교단으로, 사람을 가르치는 일
올해 초, 그녀는 서울의 학원법인 ‘언희당’에서 국어 강사로 새 출발했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 그녀는 교단에 선다.
중학교 1학년 50여 명의 학생들을 가르치며 독서 코칭과 문법 지도를 병행한다. “처음엔 교단에 선다는 게 두려웠어요. 하지만 막상 수업을 시작하니 강의는 군 시절의 교육과 닮아 있었어요. 학생들이 병사보다 솔직하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만 다르죠.”
그녀의 수업은 특별하다. 지식 전달보다 관계 형성에 가깝다. 문학 작품에서는 인물의 감정을 함께 이야기하고, 문법 수업은 일상 언어로 풀어낸다.
“국어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읽는 학문이에요. 문장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힘을 길러주고 싶어요.”
정훈장교 시절에도 책을 많이 읽어야 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읽는다. 학생들과의 대화와 수업을 위해 시와 소설, 에세이까지 폭 넓게 탐독한다. 군에서 익힌 유연한 대처 능력은 교단에서도 빛을 발한다.
수업 시간이 어긋나거나 학생들이 집중하지 않을 때도 그녀는 단호하지만 따뜻하게 대응한다. “군 시절엔 한순간의 판단이 부대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선생님의 한마디가 학생의 자존감을 세우기도, 무너뜨리기도 하니까요.”
그녀는 강사이기 전에 경청자가 되려 한다. 매일 수업 후에는 학생들의 질문을 모아 일지를 쓰고, 다음 날 수업에 반영한다. “군에서 배운 보고체계는 제게 ‘루틴’을 만들어줬어요. 교실은 매일 변하지만, 제 중심은 흔들리지 않아요.”

강사이자 작가, 그리고 인생의 동행자로
그녀는 여전히 글을 쓴다. 군 시절부터 시작한 글쓰기는 이제 삶의 일부가 됐다. “글쓰기는 제게 ‘숨’이에요. 하루를 버텨내는 호흡이죠.” 다음 에세이의 주제는 ‘학원 강사로서의 일상’이 될 예정이다. 아이들과의 대화 속에 배움과 성장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전업작가로 성장하는 게 꿈이에요.”
그녀는 앞으로도 시집과 에세이를 꾸준히 발표할 계획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에게 삶의 태도를 전하고 싶어요. 세상을 대하는 마음, 사람을 대하는 방법, 그걸 배우는 게 진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오늘도 교단에 선다. 군복 대신 분필을 들고, 병사 대신 학생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녀가 하는 일은 여전히 ‘정훈’이다. 말로 마음을 잇고, 사람으로 세상을 만드는 일. 그게 군에서도, 교실에서도 변하지 않는 그녀의 길이다.
그리고 후배 제대군인들에게는 이렇게 전한다. “부대 밖은 전쟁터가 아니라 새로운 놀이터예요. 군에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시도하며, 두려움보다 호기심으로 세상을 만나보세요.
‘아님 말고’라는 마음으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이미 여러분은 충분히 단단하니까요.”

1. 일상을 휴가처럼 살기
심장이 뛰는 일을 선택해 매 순간을 아쉬움 없이 즐기며, 삶은 기다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라고 믿습니다.

2. 일과 삶의 조화 이루기
일을 단순한 생계가 아니라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일상 속 배움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3. 나를 관찰하고 돌보기
바쁜 하루 속에서도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삶의 균형이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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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전환군 스펙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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