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my Life
굿 JOB 굿 LIFE
사회 초년생 未生(미생)에서 完生(완생)을 꿈꾸다
주동신 예비역 육군 중령
2023년 제대군인 리스타트 챌린지 수기 공모전 장려상(요약본)
*2024년 제대군인 취· 창업 성공수기 공모(~ 7월 19일까지)
2023년 제대군인 리스타트 챌린지 수기 공모전 장려상(요약본)
*2024년 제대군인 취· 창업 성공수기 공모(~ 7월 19일까지)
1985년 4월 봄날에 청운의 꿈을 품고 상무대에서 장교 후보생 교육을 받고 육군 소위 의정장교로 임관하여 보병 제6사단 GOP 대대 의무지대장으로 군 생활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환갑을 넘기는 나이가 되었다. 직업군인의 삶이 힘들 것 같고 두려웠다는 와이프를 만나 전방에서 후방까지 약 20차례 보따리 이사를 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군복이 좋아 가족을 설득해 가면서 행복하고 보람차게 군 생활을 했다.국가와 나의 발전을 위해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서부 사하라 해외 파병을 지원하였는데 최종적으로 선발되었다. 파병 지역의 기후와 음식이 맞지 않아 고생스러웠지만, 그보다도 연고도 없는 종합정비창 관사에 와이프와 유치원생 어린애들을 남겨 둔 것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그 시절 국제전화의 한계에 인터넷 메일로 안부를 확인할 수밖에 없어 외로움은 더 깊어갔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파병된 외국 군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며 군사 외교관 역할을 했던 보람은 아직도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거기서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육군 중령으로 진급한 날은 영원히 잊지 못할 행복한 순간이었다.
대령 진급에 실패하고 인생 2막의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라 막막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군 경력으로 취업하려니 경력을 인정해 주는 곳이 제한적이었고, 사업을 하기에는 경험이 없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진로를 정하지 못한 불안함 때문에 자신감은 날로 추락하고 있었다. 전직지원교육에 입교하여 상담사와 선배들의 의견을 종합해 본 결과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정년이 없다는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장을 제2의 직업으로 선택하는 게 좋을 듯했다. 그 후 2개월 동안 독서실에 출근하여 절박한 심정으로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첫 1차 시험에서 낙방하였다. 다시 충전하고 주간에 학원을 다니려고 알아봤으나 거리와 시간으로 따져볼 때 인터넷 강의가 효율적일 것 같았다. 이에 제대군인지원센터 상담사를 통해 직업능력개발 교육비를 지원받아 주택관리사 인터넷 과정을 신청하고 독서실에서 휴일 없이 1년 동안 준비했다. 하지만 두 번째도 1차 시험에서 낙방하였다.
낙방하고 며칠간은 잠이 오질 않았다. 그렇게 절실하게 준비했는데, 미래가 막막했다. 고민 끝에 나이가 들어 암기력과 이해력이 떨어져 공부가 쉽지 않다고 판단하여 다른 직업을 찾아보기로 하고 이력서를 서른 군데 넘게 제출했다. 그러나 단 한 군데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취업하기 위해 이력서를 들고 사업 주체를 찾아갔으나 이력서를 놓고 가라고 할 뿐 연락은 없었다. 지인을 통해 처음으로 건물 유지보수 용역 업체의 면접이 성사되었지만 행정업무 수행을 위해 50대를 찾는 사업장은 없는 것 같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냈다.
하지만 계속 놀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다시 선배들의 조언을 얻어 화물기사로 창업하기 위해 대형운전면허증(버스 면허)과 화물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나 화물 운전 창업도 쉽지 않았다. 경험이 없으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취업도 창업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집에만 있으니 몸은 점점 무기력해지고 우울증이 올 것만 같았다. 무직이라는 현실 때문에 지인들을 찾아가는 것도 싫어지고 그러다 보니 혼자 지내는 시간에 지쳐갈 뿐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무슨 일이든 하려고 찾다가 이삿짐 사다리차를 운영하는 후배를 따라다니며 현장 업무를 배우기 시작했으나, 노동 강도가 높고 억대가 넘는 자본금을 들여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을 뿐더러 가족과 형제들이 사고 위험성이 매우 큰 직업이라고 말려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으로 여러 곳에 이력서를 제출해 놓았으니 당장 어디든지 면접 일정이 잡힐 것 같은 생각에 계속 기다리다 보니 전역하면 하고 싶었던 여행마저 포기하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지난 31년 동안 고향을 떠나 전국 각 지역에서 군 생활을 하다 전직지원교육에 입교하였으니 주변에는 친구도 지인도 없다는 현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같은 또래는 아직 젊은 나이라 그런지 취업하지 않고 쉬는 사람 또한 없었다. 전직지원교육 1년을 마치고 전역을 한 후 6개월을 혼자서 집에서 빨래하고 청소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취업에 도전했으나 역시나 취업할 곳을 찾지 못했다. 인생 2막 사회의 미생(未生)에서 탈출하기 위해 사회에서 요구하는 자격을 갖추고 군에서 배운 기획, 행정과 통솔, 지휘 능력을 발휘해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직업을 모색하다 다시 심기일전하여 주택관리사 시험에 세 번째 도전하게 되었다. 주택관리사 시험이 1년에 한 번밖에 없어서 남은 6개월 동안 휴일 없이 또다시 독서실로 출근하여 밤늦게까지 더욱 절실한 마음으로 공부하였다.
그 후 도전 3년 차에 주택관리사 1, 2차 시험을 동차 합격하여 취업 전선에 디딤발을 만들게 되었다. 이때부터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격을 취득하기 시작했다. 소방안전관리자 2급, 전산회계 2급, 위험물안전관리자, 승강기안전관리자, 수도안전관리자, 건축물안전관리자 과정 등을 통해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장으로 취업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함과 동시에 제대군인지원센터 상담사에게 자격증 취득 현황을 제출하고 취업 정보를 공유했다. 드디어 제대군인지원센터를 통해 오금동 소재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으로 소개받아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았다. 그 결과 당당하게 제2의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사회의 미생(未生)에서 탈출하여 완생(完生)하는 것인가? 무직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과거 중령으로 진급한 날보다 기쁨이 더 크게 느껴졌다. 가족들 보기가 더욱 떳떳해졌으니 남편으로 아버지로 역할과 자리를 다시 찾은 것 같았다. “오랫동안 군 생활을 했으니 이제 쉬어도 된다”라고 위로하던 가족들도 취직되었다 하니까 모두 격하게 축하해 주면서 나이 들어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여 취업에 성공한 가장이 자랑스럽다고 한다. 보람과 행복감으로 자존감을 되찾은 것 같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역할은, 책임자로서 모든 직원을 채용·관리·지도하고 예산을 수립하며, 입주자대표회의 의결 사항을 집행하고 결산을 통해 관리비를 관리하는 것이다. 또한, 입주민 민원을 해결하고 공용시설물을 유지 보수하며 장기 수선 계획을 수립하고 법령을 준수하여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막중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군 생활에서 경험한 기획 및 행정 업무는 문제가 없으나 직원 관리가 제일 힘들었다. 업무 처리에 있어 관리사무소장 지침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해 업무가 진행되어야 하는데도 관리사무소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본인들의 관례대로 일을 처리하는 집단들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사회 초년생이라고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때론 관리사무소장이 직장 내 갑질을 한다고 파출소에 고발당해 경찰서를 방문해 조사받기도 하고, 해고를 강요했다고 고용노동부에 신고되어 소명하러 다니기도 했다. 특히 군 조직에서는 있을 수 없지만, 공동주택 근로자는 대부분 계약직으로 옆 단지의 월급이 많거나 기분이 나쁘거나 일이 힘들다고 느끼면 당장 사직서를 내고 퇴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러한 일들 때문에 인력을 운영하는 관리자로서 애로 사항이 많은 현장이라고 판단된다.
또한, 공동주택 입주민들은 직접 세대 전용 시설물을 유지 보수해야 하는데도 관리사무소에서 당연히 관리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억지 민원을 제기하여 업무가 가중되고 입주민과 직원 간의 다툼이 발생하곤 한다. 특히 관리사무소장과 동대표들은 서로 존중하고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동반자인데도 마치 본인들이 내는 관리비로 월급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갑질 행태를 보이기도 하고, 본인들의 아파트를 관리하는 관리사무소장은 집사이며 머슴이기에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직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자존감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아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사회생활 초년생으로서 적응기라고 위로했다. 아울러 힘들었던 지난 사회생활 미생(未生) 시절 빛도 없는 터널에 들어와 어디로 갈 것인지 방향도 잡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서 명품 관리사무소장으로 사회생활에 완생(完生)하여 자신에게 만족하고 사회 조직원으로 꼭 필요한 존재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6년째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모두가 상생하기 위해 때론 직원들과 같이 조경을 하고 도로를 정비하며 보도블록도 교체하는 한편, 비가 오면 배수로를 정비하고 눈이 오면 제설을 한다. 이렇게 현장에서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업무를 수행하며 지금도 공동주택에서 필요한 자격증을 더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방안전관리자 1급 자격증을 획득하고 기계설비기사 시험에 도전하고 있으며, 직원 교육 및 지도를 위해 법정 교육자 과정, 산업보건안전관리감독자 과정을 수료하고 각종 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공동주택관리법, 소방안전관리법, 건축법, 시설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관리규약 준칙,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 지침, 시도 조례 등을 숙지하고 실무에 적용하고 있다.
여전히 난 전직 군인이며 예비역으로 군에서 배운 경험과 경력을 바탕으로 직원들을 지도·관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떳떳이 각종 회의 및 교육 시 본인은 군 장교 출신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사회 적응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생(未生)이지만 여전히 완생(完生)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언젠가 과거를 회상하며 준비 없이 뛰어든 사회생활 적응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자신한다.
아울러 이런 점을 전역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 사회 초년생으로 전역하기 전에 전역 후 나아갈 진로에 대해 방향을 설정하고 많은 정보를 수집하여 실행하되 포기하지 않겠다는 근성을 가져라. 그것이 인생 2막의 행복을 좌우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일자리는 반드시 존재하며 도전하는 사람에게 기회는 온다.
※ 본 수기는 개인의 경험으로 정부 정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본 수기는 지면 관계상 내용이 다소 요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