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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전환
군 스펙이 자랑스럽다
서기원 예비역 육군 대위
2025년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 수기 공모전 우수상
2025년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 수기 공모전 우수상

워게임(Wargame). 전쟁을 시뮬레이션한 것으로 현대에 실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군사 연습 방법의 하나이다. 군에서 워게임을 하는 목적은 실제로 병력과 장비, 물자를 동원하여 훈련하지 않으면서도 지휘관의 지휘 능력과 참모들의 조언 능력을 향상하고 전쟁 수행 절차를 숙달시키기 위함이다. 평소 워게임을 잘해 두면 실전에서 시행착오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나에게는 전역을 앞두고 주어진 ‘전직지원교육 기간’이 사회 진출이라는 실전을 앞두고 마음껏 워게임을 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막상 전직지원교육에 입교하면서 더 이상 부대에 출근하지 않으니, 마음이 불안했다. 호기롭게 전역을 신청했지만,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장교로 임관하여 사회 경험도 없이 곧장 군 생활을 시작하게 된 나로서는 짧지 않은 군 경력을 뒤로한 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기 때문이다. 새로운 출발과 도전을 앞두고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나를 보면서 30대 중반의 나이는 더 이상 마냥 젊지만은 않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10년 동안 군에서 받았던 다양한 교육들, 여러 가지 보직을 맡아 노력했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그동안 군에서 경험했던 내 모든 순간이 과연 사회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지 물음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취업이나 전역 전 준비에 대한 정보나 조언을 듣기 위해 그동안 함께 근무했던 수많은 선후배와 동료에게도 연락해 봤지만, 전역 후 진로는 정말 다양했기에 그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나서 오히려 더 혼란스럽기도 했다. 이때 나에게 큰 도움이자 힘이 되었던 기관이 ‘제대군인지원센터’였다.
전역일이 확정되고, 전역 예정인 장기복무군인으로 등록하자, 센터에서는 나를 전담하는 상담사를 배정하여 나의 성공적인 전직을 위해 좋은 정보와 제도를 소개해 주었다. 특히 나의 병과와 이전 경력을 고려하여 맞춤식 상담을 제공하였는데, 상담사 또한 군에 대한 이해가 뛰어났기 때문에 일반적인 취업 지원 기관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전역 이후에도 사회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고 싶은 나에게 센터에서는 공기업, 공공기관 취업을 추천해 주었다. 특히 이들 기관의 경우에는 군 경력을 인정하면서도 학벌이나 나이, 출신 등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 방법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기 때문에 열심히 준비하면 분명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격려해 주었다.
하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국가보훈부로부터 다양한 혜택과 도움을 받게 된 것은 제복 입은 군인으로서 명예롭게 전역하고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나서였다. 인생의 3분의 1을 함께하며 정들었던 친정인 군을 떠나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곧장 관심 있는 기업에 이력서를 내야 하는지, 스펙 향상을 위해 조금 더 노력해야 하는지, 인턴을 하면서 경험을 쌓아야 하는지 그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었기에 혼자 판단해야 했다. 그러던 와중 국가보훈부에 장기복무 제대군인으로 등록이 완료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된 것들은 바로 ‘직업 능력 개발 교육비’와 ‘전직 지원금’, 그리고 ‘보훈특별고용 제도’였다. 특히 직업 능력 개발 교육비는 전역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자 중에서도 미취·창업자를 대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전역 직후에 교육을 받으면서 신청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제대군인지원센터 상담사의 추천으로, 그동안 꼭 취득하고 싶었지만 3주라는 긴 교육 기간과 약 200만 원 상당의 높은 교육비가 부담되어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고 있었던 드론 조종 자격증 과정 교육을 수강하게 되었다. 나와 함께 교육받는 수강생들 대부분이 내일배움카드를 통해 국비를 지원받는 상황이었는데, 국비 지원이 약 15% 정도라 대부분 금액을 직접 부담했던 반면, 나는 교육비의 80%를 지원받아 정말 저렴하게 교육을 수료하고 자격증 취득까지 성공할 수 있었다. 전역 이후 당장 어떤 것부터 시작할지 감도 잡지 못했지만, 자격증 취득이라는 단기 목표부터 세우고 실행하다 보니 오히려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국가의 지원을 등에 업고 그동안 미뤄왔던 자격증 취득에 성공하니 자신감이 붙게 되었지만, 꾸준히 지급되던 봉급이 없으니 절로 초조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취업에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저축해 두었던 돈을 사용하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25일이 되자 전직 지원금으로 내 계좌에 81만 원이 입금되었다. 신청하고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전직 지원금이 입금된 것이다. 마치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고 느낀 전직 지원금은 특히 나처럼 10년 이상 장기복무 후 연금 수령 대상자가 아닌 상태에서 전역한 군인들에게는 이 정도의 금액을 최대 6개월 동안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되었다.

한편, 국가보훈부 취업지원팀에서는 나를 보훈특별고용 추천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에 포함해 다양한 기관에 채용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보훈특별고용이란 기업에서 채용하는 인원의 5배수로 국가보훈부에서 추천하여 이 추천을 받은 사람끼리 경쟁하는 제도로, 요즘처럼 취업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엄청나게 큰 혜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 되어야 법적으로 보훈특별고용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기 때문에, 내실 있고 건실한 기업에 지원할 수 있어 고용의 안정성에 대한 걱정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난 전역 후 2개월 만에 관심이 있던 공공기관의 보훈특별고용 공고를 확인하게 되어 관할 보훈청에 추천을 신청하게 되었다. 지원을 희망한 기관에서는 단 2명만 채용을 하기로 해서 추천은 10명까지 받을 수 있었는데, 나보다 앞선 순번의 지원자들이 많아 추천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바로 일주일 후, 또 다른 좋은 공공기관의 채용 공고를 확인하여 추천을 신청했고, 이번에는 보훈 추천을 받게 되었다.
서류전형을 통과하기 위하여 난생처음으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작성하며 나의 경험을 기술하게 되었다. 필기시험이나 면접 등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 흔히들 말하는 스펙으로 어필해야 하는 현실을 이때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이틀 동안 수정을 거듭하며 500자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한 끝에 제출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런 과정을 수십 차례, 수백 차례 경험하는 내 또래 청년 세대에 비하면 나는 군이라는 튼튼한 지붕 아래에서 부족함 없는 생활을 했구나.’였다. 일주일의 긴 기다림 끝에 서류전형 통과와 필기시험 응시라는 결과를 받아보게 되었다. 전직지원교육 기간 동안 다양한 공기업, 공공기관의 NCS 기출문제와 사설 문제집을 풀어보며 했던 공부를 바탕으로 필기시험을 준비한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시험을 보고 나오면서 결과를 기다리기보다는 곧바로 면접을 준비했고, 아니나 다를까 필기시험 결과도 합격이었다.
면접을 앞두고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항상 군에서는 전투복을 입고 면접을 보았는데, 일반 기업의 면접을 앞두고 보니 당장 입고 갈 복장부터가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 관할 지역 청년 일자리 센터에서 면접 정장을 대여해 주는 복지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지원한 기관의 주요 사업 이라든지, 최근 국내외 관련 이슈와 기업에 대해서도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공부하였고, 긴장된 마음으로 면접장에 도착하였다. 면접은 다대다(多對多) 면접과 다대일(多對一) 면접으로 두 번에 걸쳐 진행 되었는데, 나를 제외하고는 지원자들 모두가 20대 중반의 사회 초년생이라 내심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다들 공공기관에서 인턴 활동이나 대외 활동 수상 경험 등 최신 스펙으로 무장하여 면접 위원들이 질문하는 내용에 대해 마치 AI처럼 짜임새 있게 잘 대답하는데, 옆에 앉아 있는 나조차도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잘 준비했는지 느껴질 정도였다.

경험이나 직무에 관한 강점을 시작으로 내가 대답할 차례가 되자, 서류 내용에 활자로써 들어가는 스펙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 있을지언정 꾸밈없이 솔직한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에서 경험하며 체득했던 의사소통 능력이나, 협업 능력, 다양한 보직을 거치며 키워온 적응력 등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며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답변으로 면접을 이끌어 나갔다. 특히 다대일 면접에서는 내가 준비했던 모든 답변이 다 소용없었는데, 면접 위원들 모두가 다 군과 관련된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 면접 위원으로부터 ‘제가 면접 위원으로 여러 해 참가했지만, 지원자님께서 가지고 계신 경험들은 참 특별하네요. 자기소개서도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내 군 경험은 아무나 가지지 못하는 유니크한 스펙이라고 평가받는 순간이었다.
면접을 마치고 면접장을 나서면서 취업을 위해 처음으로 지원한 기업에서 운이 좋게도 모든 절차를 다 경험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수기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현재, 지원했던 기업의 최종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상황인데, 이번 기회에서 불합격하더라도 전역을 앞두고 들었던 것과 같은 이전의 불안함이나 초조함은 더 이상 없을 것 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감정들이 기업의 채용 절차와 지원자로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던 나의 무지함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실패 속에서 보완과 성장이 있듯이, 다음번 도전에서는 더 빛나는 지원자로서 취업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관할 보훈청에 장기복무 제대군인 등록 서류를 제출하러 간 날, 다양한 혜택과 제도를 소개해 주신 주무관 한 분이 장기간 나라를 위해 노력하고 헌신한 나를 위해 이렇게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기쁘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이 글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인사하고 싶다. 군 복무를 하면서도 나는 늘 국가로부터 다양한 기회와 혜택을 제공받았다고 생각해 왔는데, 국가보훈부로부터 이렇게 또 도움을 받고 실제로 기업에서도 내 군 경력을 인정받는 경험을 하게 되니 그동안의 군 복무가 참 자랑스러워졌다.
이 수기가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많은 제대군인과 전역 이후의 진로를 고민하는 많은 현역 군인들에게 성공적인 사회 진출과 새로운 도전에 힘을 실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군 경력이 과연 사회에 나와서 쓸모가 있느냐고 현역들이 물어본다면, 단연코 그렇다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나의 성실함과 최선의 노력들이 전역 이후에도 높게 평가된다는 사실을 꼭 전해주고 싶다. 사회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여러분들만의 특별한 스펙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작성되고 있다고…
※본 수기는 개인의 경험으로 정부의 정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