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menu

Change Work
백 투더 잡

소비자가 원하는 건
어디라도 배달한다!
떼꾼 & 택배기사

BACK TO THE JOB

조선시대 떼꾼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아리아라리-정선>
출처: (재)정선아리랑문화재단中

뗏목에 의지해 물길을 따라서

떼꾼

지금처럼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강에 배를 띄워 물자를 운반하는 것이 더 유리했다. 과거에는 충청도와 강원도에서부터 서울까지 목재를 공물로 바치거나 땔나무와 숯을 굽기 위한 나무 따위를 수송해야 했는데, 이때 목재가 물에 뜨는 특성을 이용해 만든 뗏목을 타고 목재를 운반하는 일을 했던 사람이 ‘떼꾼’이다. 태조 이성계가 경복궁을 지을 당시에도 떼꾼들이 활약했으며 조선 말기에 가서는 한강이 목재 운송의 전성기를 맞아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수에도 떼꾼들이 동원되었다. 떼꾼 문화는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과거의 떼꾼들이 단순히 수송만을 했던 것은 아니다. 목질이 단단한 가을에 미리 나무를 베어 두었다가 봄이 되면 강어귀로 내려 보낸다. 이렇게 내려 보낸 목재를 8~10개씩 열둘 혹은 열다섯 동가리로 구성하여 뗏목으로 만든다. 뗏목에는 경험이 많은 사람과 힘이 좋은 사람이 2인 1조로 탑승하여 낮에는 강물을 따라 이동하다가 밤에는 육지에 뗏목을 대고 잠을 자며 며칠에 걸쳐 서울로 향한다. 이처럼 떼꾼들의 일은 매우 위험했기 때문에 출발할 때보다 목재의 수가 몇 동가리 줄어들어도 눈감아 주었으며, 위험에 걸맞은 큰 보수를 주어서 정선에서 서울까지 한 번 다녀온 떼꾼은 소 한 마리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떼돈 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으니 그 대단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 배송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택배기사

댐이 건설되어 물길이 막히고, 강에 다리가 놓이거나 새 도로가 건설되는 등 육로가 발달하면서 떼꾼이라는 직업은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탑차에 올라타 물길이 아닌 땅길을 누비며 먼 곳까지 물건을 전달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생활에 밀착되어 익숙해진 ‘택배기사’이다. 떼꾼들과 다르게 이들은 크고 무거운 가구부터 작고 사소한 소품까지 다양한 물건을 취급하며 골목골목을 누벼 개인의 집 앞까지 택배를 배송한다.
택배기사의 일이 떼꾼들만큼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 역시 집하, 분류, 상차, 배송이라는 다양한 업무를 소화하며 할당량을 채워야 퇴근할 수 있어 업무 강도가 높다. 코로나19 유행 이후로는 생필품을 주문하는 사람이 늘어 생수나 쌀 포대 같은 무거운 물건을 배송하는 일도 많아졌다. 진상 손님 상대나 주차 공간 부족, 빠른 배송을 위한 불안정한 휴일 등의 부수적인 고충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한동안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가 문제된 적도 있었다. 택배기사의 보수가 일반 직장인들의 월급을 다소 상회한다고는 하지만 21세기의 일자리는 더 안전하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지 않을까. ‘택배기사’라는 직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길 바라지 않는다면, 그들의 노력으로 우리 모두가 편리한 일상을 살아가는 만큼 배려와 고민이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꿀팁전당포뭐니 뭐니 해도 ‘머니’
‘돈’ 되는 유튜브 채널!
여행 보일지도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역사와 문화의 아름다움이 꽃피는
경남 밀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