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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전환
슬픔의 눈물이
행복의 눈물로 되기까지
이창규 예비역 육군 소령
2024년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 수기 공모전 우수상
2024년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 수기 공모전 우수상

초등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 아버지의 직업을 조사하는데 아버지 직업이 군인인 친구가 제일 부러워 군인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육사 시험에 낙방 후 대학에 진학하여 장교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ROTC 후보생이 되었다.
1999년 3월 1일 5만 촉광에 빛나는 다이아몬드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임관을 하면서 나의 군 생활은 시작되었다. 25사단 72연대 보병대대 소대장을 시작으로 수색대대 소대장과 인사장교를 마치고 대위로 진급 후 논산 육군 훈련소에서 1차 중대장을 하였다. 1차 중대장을 마친 후에는 기무사령부 시험에 합격하여 새로운 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전방 사단 기무 반장과 기무사령부 과학수사과에서 반장 생활을 마치고 소령으로 진급 후에는 기무사령부 지역부대에서 방첩수사과장으로 근무하며 나름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이후 다시 사령부 방첩처 과학수사 팀장으로 근무하며 각종 국가보안법 및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자에 대한 수사 지원으로 국방부장관, 국정원장 표창 수상 등 많은 공적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무사령부 1차 중령 진급 심사에서 비선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고, 2차 진급 심사에서도 진급 발표 전에는 진급이 유력하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으나 선발위에서 여러 가지 논리로 같은 특기의 후배에게 밀려 진급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진급에서 비선된 후 아내와 저녁 식사를 하며 식탁에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이사와 야근, 주말 출근 등으로 가정에 소홀하면서까지 부대 업무에 매진하였는데 그 결과가 앞으로 몇 년 뒤 전역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공모전 글을 쓰면서도 그 당시 슬픔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눈물을 흘리는 아내에게 지금 당장은 뚜렷이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전역 후 다른 길들도 많으니 잘 준비해서 더 이상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강원도 오지에서 제2의 인생 계획
그러나 설상가상으로 2018년 기무사령부 개혁의 일환으로 부대원을 감축시키면서 각 군으로 원복을 시켰는데 나도 대상이 되어 강원도 화천의 15사단으로 전출 가게 되었다. 15사단 38연대는 연대본부와 3개 보병대대가 모두 민통선 내에 있어 군의 최고 오지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점차 이제는 보병 부대원으로 적응해 갈 때쯤 별밖에 보이지 않는 독신자 숙소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생각했다. 외부와 단절된 이곳이 내가 전역 준비에만 몰두할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불필요한 감정 소비와 인간관계는 잠시 접어두고 제2의 인생 준비에 전념하기로 말이다.
그리고 전역을 3~4년 앞두고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자료수집과 함께 전역준비 계획을 수립하였다. 전역한 선배들과 통화도 하고 인터넷 검색도 하였다. 소령들이 가장 많이 준비하는 시험이 예비군 지휘관 시험이었고, 두 번째가 비상계획관 시험이었다. 경력채용 군무원 시험도 특기만 맞는다면 괜찮은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현역에 있으면서 비상계획관 시험을 응시하고 떨어지게 되면 직보반에 입교하여 예비군 시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립했다. 시험 과목이 예비군법만 동일하고 나머지 과목은 다르지만 법령을 공부하는 방법은 비슷하여 비상계획관 시험을 준비했다면 예비군 지휘관 시험 준비도 쉽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령들의 경우 비상계획관 시험에 합격하면 오랫동안 근무하다 보니 공석이 자주 나오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어 약간의 모험도 필요했지만, 군인연금 혜택과 함께 회사의 연봉과 복지를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비상계획관이 군의 경력을 활용하여 준비할 수 있는 최고의 직장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본격적으로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비상계획관 도전 준비
가장 먼저 서류전형에 필요한 항목들을 확인하고 준비해 나갔다. 경력은 그동안 해왔던 나의 근무에 대한 평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자격증은 총 3가지가 필요하였다. 정보화 자격증은 워드 프로세스 1급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을 취득하는 데 각각 6개월 정도 소요되었다. 이렇게 1년 정도를 자격증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서류전형 준비를 모두 끝냈다. 관련 분야 자격증의 경우 기업재난관리사, 소방안전관리자 등을 취득하면 0.5점을 받을 수 있는데 전방에서 근무하면서 취득할 수 없는 여건이 제한되어 과감히 0.5점은 포기하고 필기시험에 주력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두 번째는 법령 필기시험 준비이다. 4개의 법과 시행령을 모두 암기 수준으로 숙지하고 있어야 시험에서 고득점을 올릴 수 있는 만큼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준비과정에서도 가장 큰 고통이 따른다. 처음에는 각 법령을 속독하면서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흐름으로 이어져 나가는지 파악하였고, 텍스트뷰라는 앱을 설치하여 관련 법령을 텍스트 파일로 만들어 출퇴근하면서 계속 반복하여 들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지방에 있는 가족에게 휴가를 갈 때도 항상 텍스트뷰를 이용하여 법령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였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도 틀어 놓고 잠들었다.
현역으로 근무하면서 비상계획관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특히, 나의 경우는 법령 공부를 준비할 당시에 강원도 화천에서 근무하고 있어 서울에 있는 비상계획관 시험 준비 학원에 등록하여 도움을 받을 수 없어 학원 교재를 구매하여 독학으로 법령을 공부했다. 그러나 반대로 사회와 격리된 강원도 화천의 깊은 산속에서는 퇴근 이후 저녁 시간을 오롯이 내가 시험공부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텍스트뷰로 듣고 다독으로 법령 책을 몇 번 읽고 나니 법령에 대해 이해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법령에서 나오는 모르는 용어나 항목은 법령 책을 구매한 학원 선생님께 사진을 찍어 물어보며 공부하였다. 또한, 기출문제들을 풀어보며 어떤 식으로 문제가 나오며 빈출 문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4개의 법령을 이해하고 나면 이제부터는 머릿속에 암기해야 한다. 처음에는 괄호 넣기 암기 방법으로 시작했고, 문장의 앞 글자나 가장 핵심적인 단어 한 자를 말하기 쉽고 연상될 수 있는 단어로 조합하여 암기하는 두문자 암기방법을 활용하여 출퇴근하거나 휴가 갈 때 등등 시간이 날 때마다 암기하였다. 6개월 정도가 지나니 법령 책을 보지 않고 기출 문제 시험을 볼 수 있는 수준까지 되었다. 한 달 정도 5년 정도의 기출문제를 풀고 나니 더 이상 풀 수 있는 문제가 없어 학원에서 판매하고 있는 문제집을 추가로 구매하여 풀어보았다. 부대에서 주관하는 저녁 행사를 제외하고는 오직 저녁과 주말에는 비상계획관 시험을 준비하는 데 몰두하였다. 정말 간절하고 처절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은 면접 준비이다. 소령의 경우 논술 시험은 없지만, 면접시험 시 주제발표 시간이 있기에 평소 신문 사설이나 논평 등의 자료를 꾸준히 정독하며 기본 배경지식을 쌓았다. 학원에서는 교수님들이 면접관이 되어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실제 면접시험도 보면서 면접 준비를 하는데 나의 경우는 강원도 화천에 근무하고 있으니 그럴 수 없었다. 학원에서 보내준 면접 자료를 바탕으로 혼자서 연습을 해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면접 평가 각 항목별 예상 질문에 대하여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방법으로 준비하였다.
시험 D-day에 맞춰 20년 장기근속 휴가
이렇게 서류전형, 법령, 면접까지 모든 시험 준비가 완료되고 전역을 2년 앞둔 시점에 행정안전부에서 2020년 전반기 시험 일정 공고를 게시하였다. 소령 공석을 보니 7개의 공석이 보였다. 어느 때보다도 많은 공석이었다. 강원도 화천 최전방에서의 나의 노력에 하늘도 감탄했나보다 생각했다. 바로 응시원서를 작성하고 제출서류 목록들을 준비하였다. 준비된 응시원서를 육군본부로 발송하고 시험 일정에 맞추어 그동안 아껴두었던 20년 장기근속 휴가를 신청하였다.
시험 D-day에 맞추어 10일간의 휴가기간 동안 실제 시험 보는 시간에 맞추어 매일 예상 문제를 풀어보며 시험을 준비하였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도서관에 도착하여 밤 10시에 집에 들어와 2시간 정도 추가 공부를 하고 잠이 들었다. 오직 비상계획관 시험에만 모든 나의 하루 스케줄을 맞추었다.
그리고 D-day! 전날 시험 보는 장소 근처에 숙소를 잡고 마무리 공부를 마쳤다. 토요일은 법령 시험을 그리고 일요일에는 면접시험을 보았다. 토요일 법령 시험을 치고 나와서 가채점을 했는데 3~4개 정도 틀린 것으로 보았다. 시험의 난이도에 따라 합격점에 차이가 있으나 중간 정도의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였다. 다음 날 면접은 비교적 주제발표도 잘했고 면접관들과의 면접도 웃음이 오가는 등 비교적 무난하게 마친 것 같았다. 이제는 내가 할 일을 다 했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면 됐다. 진인사대천명. 20년 장기근속 휴가를 가족과 함께 여행 가는 데 사용한 게 아니라 제2의 삶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으로 쓴 것에 대해 가족에게 미안했다.
그렇게 시험을 치르고 부대로 복귀하여 다시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업무를 하였다. 그리고 2주일 뒤에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정확히 오전 10시에 발표가 났다. 그리고 합격자 공고에 나의 수험번호가 보였다. 정말 기뻤다. 너무 기쁘니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가족에게 가장 먼저 합격 소식을 알려주었다. 가족도 그동안 고생했다며 함께 기뻐해 주었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이 한 가족에게 큰 선물을 준 것 같았다.
행운 같은 제2의 삶
이후 중령으로 명예 전역을 하고, 서울성모병원 비상계획관으로 임용되어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비상계획관을 하면 군에서 한 업무의 10분 1만 해도 능력을 인정받는다고 하는 데 정말 그랬다. 군에서의 규칙적인 생활, 건전한 가치관과 올바른 국가관, 성실한 업무 태도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병원 비상계획관을 하면서도 내 고유의 비상대비업무 뿐만 아니라 병원의 안전과 보안, 재난훈련 등을 담당하며 나름대로 보람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임용된 지 3년도 안되어 병원 행정직원은 받기 힘든 보건복지부장관 표창도 수상하였다.
주말에는 나의 취미이자 특기인 테니스 운동으로 생활스포츠지도사 2급 자격증 시험도 준비하면서 정년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에 내가 준비했던 비상계획관 시험 과정에 대해 글을 올려놓고 시험 소식을 업로드 하며 비상계획관 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천주교 종교 활동을 하며 세례도 받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군 생활 때는 업무 때문에 가족 행사가 항상 뒷전이었는데 지금은 가족 행사가 가장 먼저여서 아내도 아들도 무척 좋아한다. 약 22년간의 군 생활을 하면서 전출, 교육 등으로 인해 이사를 20번 했었다. 결혼 후에도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야 해서 아이를 키우는 데도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과가 중령 진급 비선으로 다가왔을 때는 슬픔의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슬프고 서럽고 미안함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와 함께 매년 생일을 함께할 수 있고 2년에 한 번은 가까운 곳으로 해외여행도 하고 있다. 그동안 몸과 마음고생 많이 한 아내에게 앞으로는 행복의 눈물을 자주 흘릴 수 있도록 행운을 준 하늘에 감사한 마음이다.
※본 수기는 개인의 경험으로 정부의 정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