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Live
무엇이든 물어보살
우리 집
창문에 드는 햇빛
글 박성일 선아키텍처 건축사사무소 소장

Q.
안녕하세요. 군인의 삶을 정리하고 있는 40대입니다.
제겐 전역 후 꿈이 한 가지 있는데요, 바로 저만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어릴 적 주택에 살았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관사와 아파트에만 살다 보니 어떻게 해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해야 할 좋은 집이란 어떤 집일까요?
A.
저 역시 두 번의 퇴사를 하고 지금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은 늘 두려움이 앞서는 일이지요. 새출발을 하시는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좋은 집이란 어떤 집일까요.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외부로부터 안전한 집입니다. 이는 집의 기원에 가깝습니다. 아주 작은 곤충들도 알집을 만들거나 성충이 되기 위해 번데기집을 만듭니다. 더위나 추위, 또 침입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 방식이죠. 이는 우리들의 집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다행히 인간은 진화했고 지금은 외부로부터의 보호를 넘어 쾌적한 생활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도 쾌적한 공간을 유지하는 패시브 주택이 한 방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이 외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고 쾌적한 공간을 만드는 것, 좋은 집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관사와 아파트만 살았다고 해서 좋은 집의 요건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 역시 좋은 주거 양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인구의 9할 이상이 거주하는 다세대, 다가구, 아파트를 포함한 집합 주거의 형태는 매우 보편적이며 효율적인 주거 양식입니다. 이런 공동 주택의 형태는 많은 사람이 사는 만큼 경제적이면서도 대부분의 사람에게 적합하도록 발전해 왔습니다. 거실을 중심으로 방과 주방이 연결되는 공간 구성은 정해진 면적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에게 잘 맞습니다. 또한 모여 살기 때문에 풍부한 편의시설과 도시 인프라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에너지 소비에서도 효율적입니다.
반면 모여 살기 때문에 발생하는 단점이 존재합니다. 층간 소음이 대표적이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지나치게 무색무취한 공간 구성도 그렇습니다. 거실에는 소파와 텔레비전이 있고 주방 앞 빈 공간에 식탁이 있으며 방이나 거실이나 비슷한 풍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가족마다 다양한 생활방식을 모두 담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누구나 살 수 있을 만큼 무난한 공간 구성의 장점이 한편으로 무색무취의 공간이 되어 획일화되기 쉽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축가의 집을 소개하면서 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건축가 루이스 칸의 피셔 하우스입니다. 그 집과 관련한 정보들을 찾아보다가 좋은 기사가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주택이란 어떤 특정한 사람을 위해 설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이란 집주인이 바뀌어 다른 사람이 살게 됐을 때도 그들에게 잘 어울리고 차분함을 느끼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어떤 가족을 위해 지어진 집이 다른 가족에게도 좋은 특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_ 문화일보 <지식카페>
55평 집 짓는 데 7년…
건축주는 “훌륭한 건축교육 받은 시간”
이 집은 두 개의 육면체 박스가 각도를 달리하며 붙어 있습니다. 박스 중 하나는 거실과 주방, 다른 하나는 현관과 부부방, 2층에 2개의 자녀방으로 이루어진 보편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방 3개와 거실-주방의 공간 구성은 지금의 아파트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를 기능적 보편성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주택에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좋게 느껴지는 공간이 있죠. 피셔 하우스에는 두 개의 육면체 박스가 45도 정도 틀어져 있어서 바라보는 시선이 다릅니다. 그래서 방의 풍경과 거실의 풍경이 다릅니다. 한 집이 다양한 시선을 가진다는 것은 공간이 풍부해짐을 의미합니다. 특히 거실과 식탁에서는 높은 층고와 더불어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거실의 창에는 장인이 만든 목재 의자를 구성하여 건축의 미학적 디테일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보편적인 집의 공간 구성을 통해 효용성을 높여 가치를 부여하고 그 속에서 누구나 공감할 만한 공간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것, 루이스 칸이 말한 누구에게나 좋은 공간의 특성이란 이런 것일 겁니다.
이제 우리의 주택을 짓는다면 어떨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좋은 집이란 다른 가족이 살더라도 적합한 기능적 보편성과 함께 누구나 동의할 만한 좋은 공간의 특성이 있어야 합니다. 가족 구성원의 생활방식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가족 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만한 공간을 충분히 고민한다면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도 공감받는 좋은 집이 될 것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가까운 양평에 집을 지어 살고 있습니다. 집을 설계하는 사람으로서 제 집은 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있었습니다만 집에서만큼은 가족과 시끄럽게 떠들며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또 각자가 흩어져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원했습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시골에서 나고 자란 경험도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집은 산이 보이는 쪽으로 큰 창을 내고 둥그런 식탁을 두었습니다. 그 덕인지 저희 가족은 이곳에서 산과 함께 사계절을 느끼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사랑방처럼 현관에서 나뉘는 제 서재는 거실과 2미터 남짓의 거리지만 기역자로 꺾인 덕분에 풍경이 다르고 소음이 새 나가지 않습니다. 2층 방 하나는 아내의 서재가 되었습니다. 2층은 구조벽이 없어서 2개의 방을 터서 큰 서재로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가족이 살게 되더라도 각자의 방식에 맞추어 인테리어를 할 수도 있겠지요. 층고가 높은 공간은 따로 없지만 마당과 산의 풍경이 집을 다채로운 공간으로 변모시켜 줍니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고 집을 지을 토지의 조건도 다릅니다. 어떤 곳에 살고 싶은지 건축가와 함께 고민하며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생각해 본다면 좋은 집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