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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산책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출문제로 보는 역사와 보훈 지식
신간회와 이상재
글 편집실

2021년 8월 7일 제54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 37번
문항 이상재 선생의 장례가 사회장으로 거행되었습니다. 선생은 ‘일체의 기회주의를 부인함’등을 강령으로 내세운 [ (가) ] 의 초대 회장으로 민족 유일당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마지막까지 민족 운동에 헌신하였던 선생의 죽음을 많은 사람이 애도하였습니다.
① 보안회
② 신간회
③ 진단 학회
④ 조선 형평사

[정답] ②번
이상재 선생이 초대 회장이었던 단체는 신간회입니다. 신간회는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해 결성한 단체로 정치적, 경제적 각성 촉구, 민족의 단결, 기회주의 부인을 강령으로 내세웠습니다.
따라서 정답은 ②번입니다. 이와 관련한 역사 지식을 한번 살펴볼까요?
일제강점기 최대 민족운동 단체
신간회
1920년대 후반, 독립운동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3·1운동 이후 일제는 무력 진압에서 ‘문화통치’로 전략을 바꾸었고, 독립운동 내부에서도 무장 투쟁과 타협을 둘러싼 갈등이 커졌어요. 하지만 이때,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이 힘을 합쳐 거대한 민족운동 단체를 결성했습니다. 바로 1927년 창립된 ‘신간회(新幹會)’입니다.
신간회는 당시 독립운동 세력 간의 대립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에서 탄생했습니다.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일제와의 어떠한 협력도 반대)와 사회주의자(노동·농민 계층을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전개)들이 연합하여 조직한 단체였습니다.

신간회 창립 행사 장면<출처: 민족문제연구소>
개화·계몽운동의 선구자
이상재 선생
이상재(李商在, 1850~1927) 선생은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교육·계몽·독립운동에 헌신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충청남도 서천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유학을 공부했으며, 과거 시험을 통해 관직(승정원 승지)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조선이 외세의 침략을 받자, 그는 정치보다 민중 계몽과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1927년, 그는 신간회의 초대 회장이 되어 민족 단결과 항일운동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그는 정치·경제·사회 전반에서 독립운동과 민권 신장을 주도하며 독립운동 세력을 하나로 묶는 중심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간회 활동 중 병을 얻었고, 1927년 3월 2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민족운동·사회적 평등 추구·계몽운동
핵심 활동 방향
신간회의 주요 목표는 민족의 독립과 해방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신간회는 세 가지 핵심 활동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먼저 민족운동의 통일과 강화입니다. 일제에 맞서 조선 민족의 자주독립을 이루기 위해 민족적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데 주력했습니다. 민족운동의 통일성과 조직 강화를 통해 일제의 지배에 저항하고자 한 것이지요. 두 번째는 사회적 평등 추구입니다. 단순히 민족의 해방뿐만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노동자와 농민 등 민중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공통된 목표였으며, 신간회는 이를 통해 폭넓은 민중의 지지를 끌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계몽 운동입니다. 대중을 계몽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다양한 교육 활동과 연설회, 출판물 등을 통해 계몽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민중이 일제의 억압을 극복하고 민족운동에 동참하도록 독려했습니다.
그러나 신간회는 1931년 해체됩니다. 내부적으로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 간의 갈등이 깊어졌고, 일제의 탄압도 거세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간회가 남긴 의미는 컸습니다.

신간회 나주지회 창립대회 기념

조선일보 기사(1927년 2월 14일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