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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뒤집는 한 줄의 조항,
노동 문제 대리인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 속
노무사 이야기
유령을 보는 공인노무사가 죽은 노동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파격적 설정으로 화제를 모은 MBC 금토 드라마 <노무사 노무진>.
판타지 요소 뒤에 숨겨진 것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적나라한 노동 현실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인 노동 문제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이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자.
글 편집실

사진 출처: MBC ‘노무사 노무진


드라마 속 노무진, 현실을 비추는 거울
극 중 주인공 노무진(정경호 분)은 한때 잘나가던 대기업 인사팀 직원이었다. 그러나 친구의 부추김에 퇴직금을 들고 코인 투자에 나섰다가 실패로 전 재산을 잃고 좌절에 빠진다. 그때 전 직장 선배로부터 “1년 안에 노무사 자격증을 따면 복직을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불철주야 공부에 몰입한 끝에 결국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한다.
사무실을 차렸지만 사건 의뢰는 없고 생활은 갈수록 궁핍해지자, 그는 처제 나희주(설인아 분)와 처제의 친구 고견우(차학연 분)의 제안으로 산업재해 현장을 기습 방문해 문제를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금전적 합의를 유도하는 방식의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어느 날 산업재해 현장에서 큰 사고를 당하며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되고, 그 순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영혼들의 한을 풀어준다면 다시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렇게 되살아난 그는 이후 유령을 보는 능력을 얻게 되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며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신해 싸우는 노무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노무진이 이처럼 노동자의 삶에 깊이 공감하게 된 데에는 가족사가 깔려 있다. 그의 형(진선규 분)은 공사 현장에서 산재 사고로 숨졌고, 어머니는 대학 청소노동자로 근무하던 중 학교의 부당한 대우를 견뎌야 했다. 이러한 경험은 노무진에게 노동자의 고통을 ‘타인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드라마는 이러한 배경을 통해,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형이자 동생, 아들이자 딸인 ‘노동자’일 수 있음을 되새긴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법률 전문가, 공인노무사
공인노무사는 노동자의 권리 보호와 사용자와의 균형을 유지하는 전문가이다. 이들은 부당 해고, 임금 체불, 산업재해, 직장 내 괴롭힘 등 노동자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법적 절차를 통해 권리 회복을 돕는다. 노동위원회 구제 신청을 비롯해 산업재해 보상 신청 및 행정소송 등을 수행하며, 필요시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서 중재 역할까지 맡는다. 특히 최근에는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은 민감한 사건이 증가해 법률적 지식뿐 아니라 심리 상담 능력도 요구된다. 노무사는 노동자 개개인의 삶과 직결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는 실무적 전문가이다.
드라마 속 노무진이 파헤친
대표적 노무사건
1.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카트 사고
노무진은 편의점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 윤재가 무더위 속에서 무거운 카트를 반복 운반하던 중 실신한 사건을 맡는다. 상담과 CCTV분석을 통해 고온·밀폐된 실내 환경에서 3시간마다 15분 휴게만 제공된 사실을 확인했다.
노무진은 근로기준법 제54조(휴게시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쟁점으로 삼아 산재 신청을 지원했으며, 이를 통해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법적 보호 부족과 열악한 근무 환경을 사회적으로 환기했다.
2. 종합병원 간호사 자살 사건
노무진은 병원 옥상에서 투신한 간호사의 사망 사건을 맡는다. 표면상 과로사로 보였지만, 의료사고 책임을 간호사에게 전가하고, 내부 직원 들의 따돌림과 언어폭력이 반복됐던 정황이 드러난다. 노무진은 근무 표, 병원 내 보고서, 생전 메시지 등을 확보해 조직적 괴롭힘과 업무상 스트레스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고, 사건을 산업재해로 인정받게 만든다. 그는 유족과 함께 병원의 은폐 시도에 맞서 싸우며, 법률 대리를 넘어 노동자의 ‘심리적 권리’까지 지키는 노무사의 역할을 보여준다.
3. 물류창고 화재로 8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
최종회에서는 대형 물류창고 화재로 8명의 노동자가 숨진 참사를 노무진이 맡는다. 화재 발생 전 제대로 된 휴식이나 안전 점검이 이뤄지지 않았고, 명목상 책임자는 소위 ‘바지사장’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노무진은 계약 구조를 역추적해 실소유주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 허술한 위탁고용 구조와 작업장 안전 관리의 실태를 공론화한다. 그는 재난의 진실을 규명하며 노무사가 사회적 감시자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인노무사 제도의 탄생과 현황
공인노무사 시험은 1986년부터 시행되었으며, 관련 업무는 초기에는 변호사 자격자와 행정사 일부가 수행했다. 2007년 「공인노무사법」이 제정되고, 2011년부터는 별도 자격법에 따른 독립적, 법적 지위를 갖춘 제도로 정비되었다. 이후 노동 관련 법제 강화, 근로자의 권리의식 향상, 플랫폼 노동 확산 등에 따라 노무사의 사회적 수요는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최근에는 임금체불, 부당해고, 직장 내 괴롭힘 등 다양한 업종에서 노무사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노무사 시험 응시자 수 또한 증가세다. 과거 연간 수천 명 수준이던 응시자는 2023년 기준 1만 1,646명, 2024년에는 1만 3,521명으로 증가했다. 합격자 수도 2018년 이후 매년 300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응시자와 합격자의 대부분은 2030세대로, 취업난 속 전문직 진입을 위한 대안으로 노무사 시험이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현장에서도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 대상 자문(B2B) 위주였던 업무가 최근에는 개인의 임금·해고 사건 의뢰가 늘고 있으며,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상담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소규모 사업장, 스타트업, 출판사 등 다양한 규모의 기업에서도 노무사의 자문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추세다. 노동위원회 사건 처리 건수는 2021년 1만 5,811건에서 2023년 1만 8,946건으로 증가했으며, 이 가운데 96.6%가 노동위 판정에 따라 종결될 만큼 분쟁의 종착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 관련 분쟁이 커질수록 노무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공인노무사 시험 및 채용 절차
공인노무사 시험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며 1차(객관식)·2차(논술형)·3차(면접) 세 단계로 진행된다. 최종 합격 후에는 한국공인노무사회 등록 및 필수 연수를 거쳐 공인노무사로 활동하게 된다. 이들은 개인 사무소 개업은 물론 기업 인사팀, 노무법인, 공공기관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다.
공인노무사 되는 5단계 로드맵
1. 응시 자격 확인
국적·학력 제한 없음(단, 3차 면접 전까지 학사 학위 이상 필요).
2. 1차 필기 준비
노동법(Ⅰ)〈근로기준법·산안법 등〉, 노동법(Ⅱ)〈노조법·노동쟁의조정법 등〉, 민법, 사회보험법, 경제학원론 또는 경영학개론(택1)
3. 2차 필기 준비
노동법(전 범위), 인사노무관리론, 행정쟁송법, 경영조직론 또는 노동경제학 또는 민사소송법 중 택1
4. 3차 면접 준비
직업윤리·전문지식 응용능력·사례판단 및 논리성
5. 협회 등록·실무연수
합격자 발표 후 한국공인노무사회 등록, 6개월 내외 실무수습·연수



노무사의 하루, 노동자의 삶과 함께하다
노무사의 일과는 상담 의뢰와 함께 시작된다. 부당해고를 당한 근로자부터 임금체불에 시달리는 아르바이트생, 산업재해 피해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상담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후 근로계약서, 급여명세서, 의료 기록 등의 증거자료를 분석한다. 사건 접수 후에는 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접수하거나 근로감독관과의 협의를 진행한다. 때로는 기업 현장 방문을 통해 직접 문제 해결을 시도하기도 한다. 노무사의 하루는 드라마에서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노동자의 권리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은 크다.
노동과 삶을 지키는 노무사, 사회적 의미
공인노무사는 단순히 법적 절차를 대리하는 존재가 아니다.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삶 자체를 보호하고,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갈등을 최소화하며 사회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법과 현장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감을 유지하며 노동자의 삶을 지켜내는 공인노무사. 드라마 속 노무진처럼 그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