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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상담소

혼자만의 시간, 마음을 채우는 힘

최일권

Q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아이의 부모이자 가족을 책임지는 오래된 직장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게 소중하지만 종종 한 사람으로서의 공허함이 밀려옵니다. 저를 위해 시간을 내고 싶은데, 용기도 시간도 안 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너무나 이해됩니다. 저 역시 평생 직장인으로 살며 길어야 5일 남짓의 휴가가 전부였습니다. 가족을 두고 혼자 떠난다는 건 상상조차 어려웠죠. 사실 어릴 적부터 혼자, 그것도 해외여행을 간다는 건 막연히 두렵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제 버킷리스트였던 ‘산티아고 순례길 풀코스’는 오랫동안 잊힌 꿈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꼭 은퇴한 뒤에 가야 할까? 800km가 아니라 100km, 단 일주일이라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막연함을 잘게 쪼개자 용기가 조금씩 피어났습니다. 결국 저는 순례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1. 왜 순례길이었나요?
첫째, 회사에서 연차를 반드시 소진하라는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둘째, 더 이상 내 시간을 ‘소소한 행복’을 찾는다며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정신없이 쓰는 동안 정작 나 자신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극한의 상황 속에서야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영어도 서툰 채, 낯선 땅에서 스스로의 밑바닥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800km 전부를 걸을 생각에 포기했었지만, 순례자 70% 이상이 100km만 걷는다는 걸 알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죠. 그래서 순례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원했던 건 ‘모든 구간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짧지만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그것이 필요했던 겁니다.

2. 혼자라서 외롭지 않았나요?
제가 간 시기는 한겨울, 순례자는 없고 우기만 많았던 비수기였습니다. “어디 몸이나 마음이 아픈 거야? 왜 하필 그 추운 시기에 가려고 해?” 순례자 전문가 친구가 말렸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아무도 듣는 이 없기에, 마음껏 떠들 수 있었습니다. 노래도 부르고, 부끄러운 기억에 화도 내며 혼자만의 토크쇼가 열렸습니다. 그렇게 혼잣말을 이어가다 보니 결국 저 스스로에게도 꺼내지 못한 오래된 감정과 마주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텅 비워낸 마음의 자리에 순례길의 바람과 자연이 스며들었습니다. 외로움이 아니라 따뜻함으로 채워지는 경험이었죠.

3. 당황스러운 순간도 있었나요?
있었죠. 어두컴컴한 새벽길에 폭우가 쏟아져 휴대폰 액정은 젖고 내비를 볼 수 없어, 길을 잃었습니다. 엉뚱한 길을 걷다 우사(牛舍) 안으로까지 들어 갔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길도 길이잖아, 그래 나는 길을 잃은 게 아니라, 그냥 다른 길을 걷고 있을 뿐이구나.”
정답이라 믿은 길만이 길은 아니었죠. 그 뒤로는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의 나와 지금의 이 길은 지금뿐이잖아요.

4. 마지막은 어땠나요?
우기 시즌답게 사흘 내내 비가 내렸고, 진흙밭을 걷는 다리는 무거워졌습니다. 비와 함께 쏟아진 서러움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구분도 안 됐습니다. 그런데 비가 그치자,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더라고요. 자연은 그저 장엄하고 건강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나도 깎이면 깎이는 대로, 비를 맞으면 맞는 대로, 나뭇잎이 무성하거나, 다 떨어진 채로 그냥 온연하게 살아가야겠다.”
쏟아지는 비에 안개가 생기고, 그 안개가 걷히면 햇살은 더 찬란해지듯이 말이죠.

5. 일상에서 추천해 주실 게 있으실까요?
저는 ‘침묵의 저녁’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하루의 끝, 모든 소리를 끄고 어둠 속에 잠시 앉아보세요. 휴대폰도, 불빛도 멀리 두고 그저 숨소리만 들으며 있어보는 겁니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곧 마음속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릴 겁니다. “오늘도 잘 살아냈다”라는 스스로의 위로 같은 목소리요. 그 순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충만해지는 힘이 생깁니다. 그게 어쩌면, 우리가 매일 걸을 수 있는 또 다른 순례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순례길을 걷고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 불편함과 통쾌함을 지나며 각자의 색을 가진 사람이 되어갑니다. 서로 다른 길 위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걷는 모든 이의 여정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 길이 마음의 풍요로움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글쓴이 소개 최일권
<여보, 일주일만 산티아고 다녀올게> 저자, 15년 차 엔지니어이자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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