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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JOB 굿 LIFE

2070 제복은 나의 운명
지금은 100세 시대, 인생 2막이 아닌 3막을 펼쳐 본다

황운연 예비역 해군 대령

2023년 제대군인 리스타트 챌린지 수기 공모전 장려상(요약본)

2070 제복은 나의 운명

인생 2막이면 충분하다는 안일한 생각
저는 35년간 직업군인으로서 복무를 무사히 마친 뒤, 2015년 제대함으로써 인생 1막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제대하기 몇 년 전부터 인생 2막을 위해 비상계획관 시험을 차근차근 준비해 왔고, 감사하게도 합격하여 전역하고 바로 다음 날 비상계획관으로 새로운 제2의 직장인 삶을 이어갔습니다. 비상계획관을 하게 된 OO공사는 부산에 있어 당시 경기도에 거주하던 우리 가족은 지방으로 이사하여 새 터전을 마련하고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비상계획관으로서 첫 임무는 코앞에 다가온 을지연습이었는데, 처음 사회에 나와 시행하는 거라 시행착오도 많았고, 회사 전 직원을 동참시키고 안보의식을 고양해야 해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첫해 무사히 을지연습을 이행한 덕분인지 점차 더 어려운 업무가 떨어졌고, 저에게 할당된 소규모의 조직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장님께 수시로 업무 보고를 통해 추가 인력이 필요한 이유를 잘 설득하여 비상계획관의 직급을 팀장에서 부장으로 승격시켰고, 인원도 대폭 확대하여 1개 팀과 2개의 과로 구성된 안전관리실로 정비하였습니다. 조직을 정비한 후 우수한 사례를 만들어낸 덕분에 OO공사는 을지연습 우수기관, 보안감사 우수기관 등으로 선발되어 장관 표창과 시장 표창까지 받았습니다.
인생 2막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았는데, 비상계획관이라는 새 직업에 적응하고 치열하게 일하다 보니 어느새 6년의 세월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습니다. 총 41년간의 경제활동이 끝이 났으나 아직 신체 나이는 40대에 불과한 것 같았고, 퇴직 후 수많은 시간을 안일하게 보내기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사회에 아직 쓰임새가 충분한 체력과 열정, 그동안의 경력과 능력이 있는데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인생 3막을 펼쳐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인생 3막 준비-자격증 취득과 봉사활동
비상계획관으로 정년퇴직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을 때, 인생 3막을 위해 다음 취업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제 경력을 살릴 수 있으면서 동시에 요구하는 취업 요건을 만족하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분야는 군 관련 업무와 비상계획관으로 재직할 때 수행했던 안전분야였습니다. 제대군인지원센터에 이런 분야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하였고, 센터에서는 유무선으로 계속 취업 정보를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제대군인지원센터 덕분에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얻기 어려운 취업 정보를 받을 수 있어 무척이나 감사했고, 한 분 한 분 진심으로 도와주시는 직원분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빨리 재취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정은 여간 험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재취업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저의 경력과 직접 연결된, 군에서 많이 수행했던 국방 건설 분야와 국방정책 연구 분야에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도통 연락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안전 관련 업무를 찾아보니 건설 현장에서의 안전 감독 관련 일자리가 제대군인지원센터의 채용 정보에 많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서울과 지방을 포함하여 10여 군데에 이력서를 냈지만 모두 떨어지고 그중 한 곳에서 면접을 보러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취업 요건으로 경력과 관련된 자격증과 나이를 언급하였고 면접은 보았으나 이후 연락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몇 달 동안의 구직활동에도 불구하고 연락 온 곳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군 전역 후 3년 이내라는 취업 조건과 현장 경력, 여러 자격증 그리고 만 60세 이하라는 여러 요건 때문에 계속 장벽에 부딪혀야 했습니다.

전혀 새로운 학교 안전분야에 도전
그간 저의 경력과 직접 연결된 군과 안전 관련 분야에 재취업하려고 수십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취업의 높은 벽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대군인지원센터에서 일반 공립학교에는 제 나이대의 인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경력과 전혀 관련 없는 새로운 분야였지만, 학교 안전분야에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제 경력과 관련된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좁은 시각을 버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공무원의 삶이 익숙한 저에게 학교 또한 사회에 봉사도 할 수 있는 기회라 좋았으며, 어린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 근처의 중학교에서 학생 보호 인력인 학교안전지킴이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비록 기존에 구직하던 일자리들보다 조건은 열악했지만, 일단은 경제활동을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지원하였습니다. 이마저도 3대 1의 경쟁률이었습니다. 그래서 면접을 철저하게 준비하여 마침내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안전지킴이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60세 이상 70세는 물론 그 이후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늘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군 선배님께서 알려주신, 재해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평가하는 손해평가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하였습니다. 교재를 구입하고 인터넷 강의도 신청하였습니다. 평생 안보와 안전 관련 업무만 하다가 1,000페이지가 넘는 농작물 및 가축재해보험 이론과 실무를 배우려니 이해도 잘 안 되고 진도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2년 이내에 1, 2차 시험에 모두 합격해야만 했습니다. 시험 일정에 맞춰 새벽까지 교재와 씨름하며 시험을 준비하였습니다. 1차 이론시험에는 간신히 합격하였으나 문제는 2차 시험, 즉 실무 관련 평가였습니다. 2차 시험 결과는 불합격이었습니다.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외우고 또 외웠건만 시험장에 들어가니 긴장되어 학습한 것이 전혀 생각나지 않아 시험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너무 큰 허탈감과 나 자신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시험장을 나서면서 자격증과 재취업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이젠 자신감마저 급격히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70세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학교보안관
자격증 취득을 잠깐 보류하고 제대군인지원센터에서 제안해 준 학교보안관에 도전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학교보안관은 2차로 나누어 선발하는데 1차는 서류 심사여서 일단 서류 심사에서 가점받을 수 있는 항목을 확인하고 준비하였습니다. 먼저 학교안전지도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고, 지원하는 학교와 같은 지역구에 거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안전지도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우리 지역구의 초등학교에서 낸 채용 공고를 확인하였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니 우리 지역구 초등학교들도 학교보안관 채용 공고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10여 곳의 초등학교에 지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1명 채용에 100여 명 지원. 경쟁률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1차 서류 심사에서 5배수를 추리고 2차 면접에서 최종 1명을 선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학교에서 연락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A 초등학교, 며칠 후 B 초등학교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탈락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C 초등학교로부터 면접 연락이 왔습니다. C 학교는 집에서 가깝고 전통도 깊어 꼭 합격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면접을 더욱 철저히 준비하였습니다. 마침내 합격 연락이 왔습니다.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까지 채용의 높은 벽에 부딪혀 자신감, 자존감마저 무너졌던 것을 한순간에 보상받는 것 같았습니다.
최종 관문이 남았습니다. 1개월 내로 국민체력100센터에서 체력검정 3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체력에는 자신 있었지만 꼭 합격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해당 종목을 철저하게 연습하였습니다. 그래서 올해 1월 1일부터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제대할 당시에는 지난 35년간 입었던 군복을 다시는 입지 않게 될 줄 알았는데, 이제는 군복 대신 학교보안관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내 모습을 보면 묘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20세부터 입게 된 제복은 나의 운명인가 봅니다.

망망대해에 등대와 같은 제대군인지원센터에 감사
지금은 다들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제가 이 나이가 되어 보니 피부로 더 와 닿습니다. 60세는 건강한 체력과 사회 구성원으로서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인데도 사회적 시선은 노인이라고 치부해 버립니다. 그래서 인생 3막을 준비하는 예비역들에게 전역 후 3년 이내, 60세 이하라는 취업의 벽은 매우 높았고, 이런 벽에 부딪힐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나 노동의 소중함과 신성함을 느끼고 매일 출근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취업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사회의 주역이었던 우리가 60세 이후를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들을 도와주고 봉사하는 비록 작은 역할이지만 국가의 미래인 어린 학생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학교안전지킴이, 학교보안관 등에 도전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인사로 시작하는 아침, 그들과 함께 국가 및 사회 안전의 주축으로 일한다는 만족감이 큽니다. 이러한 저의 취업에 대한 의지를 이어갈 수 있게 해준 곳이 제대군인지원센터입니다. 센터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준 것, 연중 유무선으로 안내해 준 것, 홈페이지에 취업 정보를 가득 담아 제공해 준 것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대군인지원센터는 전역 후 사회에 나와 우왕좌왕하는 제대군인들에게 마치 망망대해에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전역을 앞두거나 전역한 군인들에게 본연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한편, 의지할 수 있는 큰 언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본 수기는 개인의 경험으로 정부의 정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본 수기는 지면 관계상 내용이 다소 요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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