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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JOB 굿 LIFE

9전 10기 악착 같고
끈질기게 도전하라!

2022년 제대군인 리스타트 챌린지
수기 공모전 장려상(요약본)

선승배 예비역 육군 소령

굿 JOB 굿 LIFE

몇 명의 대학원생이 한국고용정보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군에서 취득한 자격증이 전역 후 취업에 미치는 영향』의 결론은 “군에서 취득한 자격증이 취업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 “즉,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간부들은 군 생활간 학업을 연계하거나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하여 학원을 등록하여 다닌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적 측면에서 많은 제약이 뒤따르거나, 부대에서 상급자와 부서장이 본인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관점 등에서도 감수할 사항이 많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한 가운데, 지금까지 필자가 취업에 성공할 때까지의 고난과 역경, 고배를 마신 9전10기의 취업준비와 성공의 이야기를 취업을 준비하는 전역군인들에게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작성하고자 한다.
필자는 2001년 3월 1일부 소위로 임관하여 약 22년여간의 군 생활을 성실하게 하고, 2022년 4월 30일 명예전역 후 사회로 진출하였다. 물론, 명예전역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2021년 연합연습 파견간 많은 고민 끝에 ‘그래, 군인이라면 누구나 어느 시기에 사회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 거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사회로 진출하자’라는 생각으로 연합연습을 마치고 원에 의한 전역지원서를 제출하고 전직지원교육에 입교하게 되었다.

군 생활을 마무리할 즈음에서 5번의 도전

① 첫 번째 도전은, ‘국회사무처 비상계획담당관실 비상대비업무 임기제공무원으로 그동안 한 번도 작성해본 적이 없는 ‘자기소개서’, ‘직무수행계획서’와 처음 들어본 용어인 ‘NCS(National Competency Standards) = 국가직무능력표준’ 등 모든 것이 새롭고 어려웠고, 면접도 예행연습 없이 일반적인 지식으로 응답하여 당연히 비선이라는 고배를 마시게 된 기억이 생생하다.
② 두 번째 도전은, 정부종합청사 전문경력관 나군(예비군전문경력관)으로 이것 역시 경력으로 서류전형은 무사히 통과하여 최종면접까지 갔으나, 일반적인 사항에 대하여는 수월하게 답변하고, 예상하지 못한 압박질문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③ 세 번째 도전은, 전남도청 비상대비업무담당으로 서류전형에서 비선되었다. 공고 및 원서접수 기간이 매우 짧아 현실태에 맞는 직무수행계획서를 작성하는 게 어려웠다.
④ 네 번째 도전은, 충남대학교 예비군연대 전문경력관 나군(예비군업무담당)으로 최종면접에서 비선되었다. 면접장소에서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려보면 코로나19가 최고조에 치닫고 있을 때 마스크를 모두 착용하였고, 면접관의 질문 내용이 제대로 들리지 않아 다시 묻고 하는 바람에 ‘면접관의 질문에 면접자가 제대로 경청을 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하였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⑤ 다섯 번째 도전은, 한국교원대학교 예비군연대 전문경력관 나군으로 충남대학교와 동일하였으나, 이곳은 특이하게도 『연대 동원과장』 보직 이수를 필수자격으로 제시하였다. 필자는 『연대 동원과장』 경력을 제외하고 수임군부대 동원계획장교(동원장교), 동원관리교관, 예비군관리교관 등 다른 핵심직위를 모두 수행했기에 당당히 지원하였으나, 서류전형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렇게 현역 신분에서 다섯 차례 취업의 문을 두드렸으나 모두 실패하고 모든 분야에서 너무나도 부족한 필자를 생각하니 한숨과 한탄만 나올 뿐이었다. ‘나는 아직 갖추어진 게 아무것도 없다’라는 체념과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군 생활과 삶을 살아왔나’하는 자괴감이 들며 모든 것에 자신감이 극도로 떨어지고 말았다.

전직지원교육 기간의 새로운 도전

⑥ 여섯 번째 도전으로, 제70회 예비전력관리업무담당자 선발시험을 약 10개월간 매일 아침 8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준비를 하였다. 독서실에서 선 · 후배 동료들과 더위와 추위와 씨름하며 하루하루 고된 여정을 보냈다. 체력검정을 무사히 마쳤으나 필기시험을 열흘 앞두고 코로나19 확진이라는 불운이 덮쳤다. 인후통과 몸살, 고열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나 후유증으로 지속적인 기침에 피를 토하는 상태에서 시험을 마쳤고, 1주 후 점수는 모르지만 일단 통과하였다는 문자를 받았다. 함평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최종발표를 기다렸다. 하지만 결과는 비선이었다.
⑦~⑧ 예비전력관리업무담당자 선발시험이 끝나고 결과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도전은 계속 진행 중이었다. 일곱 번째 도전은, 한국수력원자력공사 예천양수 보안팀장 경력직 선발에 서류를 제출하였으나 서류전형에서 탈락하고, 여덟 번째 도전은, 조금 더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보훈특별전형’을 신청해 ‘서진도농협 6급 일반관리직’ 3배수 추천에 포함되어 면접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안타깝다”는 전화를 받았다.
⑨ 지금까지 몇 번을 낙마했던가? 이제는 그냥 무덤덤하고, 그러려니 하였다. 아홉 번째 도전은, 『광주전남연구원』 사무직 7급(공무원 9급 상당),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고 자부한다. 최종면접 및 직무수행계획 발표 날 성공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마쳤다. 하지만, 면접에서 필자는 압박질문만 연속적으로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45살인데, 군에서 관리자 역할만 하다가 말단이 하는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쓰레기통 비우고, 허드렛일, 청소, 나이 어린 상급자의 심부름 등등)”, “주로 하는 업무가 예산회계업무로 후반기에 ’23년 예산요구를 할 것인데 혼자서 다 할 수 있겠는가?” 등 ‘지원하지 말아야 할 곳을 왜 지원했느냐’는 식의 상당히 자존심을 긁어 놓은 면접이었다.
⑩ 마지막 열 번째, ’22년 전반기 전문군무경력관 및 임기제군무원 경력직 선발시험에 응시하였다. 이것은 이미 예비전력관리업무담당자 필기시험 후 지원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 이유는 코로나19 확진으로 시험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험을 봐서 왠지 불길한 예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비전력관리업무담당자 결과 발표 다음 날 전문군무경력관 및 임기제군무원 경력직 선발 연구강의 날이어서 합격하면 연구강의에는 불참할 생각도 있었다. 다행히 동원 및 예비군관련 법령을 다 암기한 상태여서 연구강의와 질의응답에 성실하게 알고 있는 직무지식을 최대한 안정되게 답변을 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최종면접에서는 사전에 준비한 예상 질문에서 다수가 나왔으며, 관련 법과 규정, 예비전력분야 관련 연구보고서의 내용과 예비전력종합발전계획 등의 내용을 근거로 정확하고, 명확한 의사표현과 답변을 하였다. 면접장을 나오면서도 왠지 발걸음이 상당히 가볍다는 기분이 들었다. 최종 합격자 발표, 이번에는 당당히 합격하였다. 정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고, 눈물을 이내 감추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혼자서 쏟아내 버렸다. 참으로,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도착한 듯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신감 회복, 회복탄력성의 충만, 즐거운 날들이 기다릴 것이라는 설렘 등 많은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사회로의 진출은 냉정하다. 하지만 ‘준비한 자’는 이기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기에 현역에 있을 때 또는 전직지원교육기간 중에 끊임없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취업의 전선에서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선 · 후배 전우들의 건승을 기원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 본 수기는 개인의 경험으로 정부의 정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본 수기는 지면 관계상 내용이 다소 요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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