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my Life
굿 JOB 굿 LIFE
당신은
운명을 믿습니까?
윤유진 예비역 육군 대위
2023년 제대군인 리스타트 챌린지 수기 공모전 장려상(요약본)
눅눅해진 빨래, 그칠 줄 모르는 빗줄기. 어김없이 찾아온 장마 덕분에 여름이라는 것이 실감 납니다. 작년 이맘때도 비가 많이 왔던 것 같은데 그때는 도서관을 전전하며 취업 준비에 매진하느라 장마가 지나간 줄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1년 사이에 인생의 기로가 180도 달라진 지금의 저는, 아직도 기적 같은 현재의 제 직업을 놓치고 싶지 않은 절박한 마음에 눈앞의 폭우를 헤쳐가면서 출퇴근을 하는 1개월 차 신입 군무원입니다.
마지막 보직, 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
2019년 7월, 야전부대(사단급 부대)에서 참모부 보좌관으로 근무하던 중에 육군본부 보직장교님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다음 달 서울현충원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내려온 명령에 당황스러웠지만, 상급자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위축되어 있던 저를 다른 곳에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 보라고 발령을 내 주신 것이라 여기고 군 생활을 만회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공보장교로 6.25전사자 유해발굴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전사자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신원 확인 속도에 박차를 가하면서 열정을 다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산악 지역의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몸소 쫓아다니느라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수시로 밤을 새우며 1년의 3분의 1은 숙소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유가족의 한을 한시라도 빨리 풀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혼신의 힘을 기울인 결과 2020년 6.25전쟁 70주년에 대통령이 주관하는 한·미 유해 봉환 행사에 대한 언론 홍보가 잘된 유공을 인정받아서 국가보훈부 장관 표창 수상의 영광도 얻었습니다.
특히, 전사자 유가족에 대한 보도자료를 쓸 때는 저마다의 사연에 눈물 없이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자녀가 불과 3~5살의 유아일 때 아버지가 전쟁에 참전해서 돌아오지 못했기에 기억은 없으면서 그리움만 더해지는 경우였습니다. 당시에 제 아들도 비슷한 또래였기에 감정이입이 더 잘 되어서 제 일보다 더 정성을 들였지만 실제로 제 가정에는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근무지에서 250km나 떨어져 있는 시댁에 맡기고 군 생활을 했는데 코로나 상황이 심각했던 6개월 동안 휴가가 통제되면서 아들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습니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자 저에게 좋지 않은 영향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아내, 엄마, 며느리, 딸 역할로의 결심
2021년 새해 첫날 당직 근무를 서고 있는데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 근무시간에는 거의 전화를 하지 않으시는 분인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약간 불안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께서는 다소 심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최근에 코로나 상황으로 아이를 보러오지 못한 동안 일이 좀 생겼어. 네가 걱정할까 봐 이야기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전화했다. 의사 선생님이 아이에게 우울증 증상이 있다고 하더라. 이번 명절에도 엄마 아빠를 못 본다고 겉으로 내색은 안 하지만 속으로는 많이 곪아 있다고 하더라고. 새해니까 엄마한테 명절 인사한다고 한복 입고 동영상 찍어 달래서 내가 찍었어. 휴대폰으로 보낼 테니 시간 날 때 보렴.”
근무시간에 휴대폰 보는 것이 조심스러워 화장실에 가서 전송받은 동영상을 켰습니다. 꼬마 도령님 복장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큰절하는 아이를 본 순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까지 하면서 지금껏 욕심을 부려왔는가’라는 생각에 허탈감과 죄책감이 몰려왔습니다. 엄마의 군 생활을 아이가 이해해 줄 것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으나 이후에도 군인으로서 임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6개월 후 소령 진급 심사 발표가 났습니다. 결과는 비선이었습니다. 대위 계급이라면 누구나 오고 싶어 하던 알짜배기 보직에서 성과도 많이 냈던 터라 솔직한 심정으로 진급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장교로서 늘 갖고 있던 자부심과 사명감, 책임의식이 있더라도 그 이면에는 진급에 대한 제 욕심과 커리어도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병과 사람들로부터 “쟤는 저 자리에 있는데 왜 진급하지 못했을까?”라며 궁금해 하는 말을 자꾸 듣게 되자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해 보았습니다. 평정 공개를 통해서 제 위치와 앞으로 발전 가능성에 대해 면밀하게 분석하여 객관화해 보니 소령으로 진급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아내이자 엄마로, 하나뿐인 며느리이자 딸의 역할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군 생활에 대한 애착이 컸지만, 전역을 미련 없이 빨리 결정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기에 그만두는 것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에 군에 쏟아부었던 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남기고 만기 전역 4년 3개월을 앞두고 이른 전역지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신분 전환에 서운해 하지 않을 준비 필요
“엄마가 군대에서 일 안 하고 나랑 같이 살면서 다른 일 했으면 좋겠어.”
문득 아들이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일을 하지 않고 아들과 함께 지내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그건 또 싫고 제가 일하는 모습이 좋다고 해서 웃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같이 지내지 못해 생긴 아들의 섭섭한 마음을 달래 주고자 한곳에 정착하여 가정도 돌보고 일도 할 수 있는 직업을 찾는 방향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전직기본교육을 받는 사흘 동안 열심히 강의를 듣다 보니 국가보훈부에서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교육에 대한 역량비도 지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대군인지원센터에 가입하기 전과 후가 확연히 다를 정도로 저에게는 인생의 멘토 같은 존재이자 큰 위안을 주는 운명의 존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력 채용이라고 되어 있는 기업부터 공직을 비롯한 공무직까지 입사 지원 서류를 제출해 보았습니다. 8군데가량 지원했는데 애석하게도 모두 낙방했습니다. 막상 사회에 나와서 취업하려니 쉽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던 이들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군에 있을 때나 장교 대우를 받은 것이지 전역하면 상황이 달라진 것에 대해 ‘내 신분이 바뀐 것에 대해 서운해 하지 않을 마음의 준비도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동안 방황하다가 남편이 예비전력담당자 시험을 권유하여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국가보훈부 소속인 서울제대군인지원센터의 상담 전화였고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통화했습니다. 형식적으로 인적 사항을 파악하고 확인하는 일련의 기본적인 절차일 것으로 생각하고 별 감흥 없이 끊으려고 하는데 제가 공부 중이라는 것을 알고는 시간이 괜찮을 때 전화를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결정적 운명을 만나게 되어 감사함
몇 달 뒤에 두 번째 전화가 왔을 때, 제 선입견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었고 진정성을 갖고 상대를 대하는 따뜻한 분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마음이 힘들어진 저에게 잘할 수 있다고 지속해서 격려해 주셨고, 제가 신경 쓰지 않아도 학원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주셨으며, 제대 후에는 실업급여(전직지원금)에 대한 절차 진행도 먼저 도와주셔서 무척 감사했습니다. 제대군인인 제가 취업 준비 기간에 정서적으로 무척 힘들 때 국가보훈부의 제도적 지원과 적극적인 상담사님 덕분에 기운을 많이 낼 수 있었던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서울제대군인지원센터에서 담당 상담사님을 만나게 된 것이 결정적인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담사님은 제가 예비전력 담당자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채용 공고가 있으면 꾸준히 정보를 알려주었으며, 저에게 맞는 직종이나 취업 분야에 대해 수시로 상담해 주고 방향을 알려 주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상담 자체로도 큰 힘을 얻었는데 간간이 ‘공부 열심히 하세요. 응원합니다. 파이팅 하세요!’라는 문자를 받을 때는 고단함이 확 씻겨 나가는 듯했습니다.
상담사님이 보내주신 취업 정보 중에 2023년도 경력직 군무원 채용에 대한 공고를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상담사님께 지원해도 괜찮은지 문의를 드렸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호봉도 인정되고 정년이 보장되는 경력 채용 군무원이 유리한 직종이라며 지원하면 좋겠다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전형 과정에서 ‘서류는 지원하는 기관에 대한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신의 군무원 면접 질문 트렌드는 이러하다’, ‘AI 면접 컴퓨터가 센터에 있으니 예약을 원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등의 적극적인 안내에 따라 상담사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면접 날 아침에도 ‘긴장하지 말고 잘할 수 있으니 파이팅 하세요’라는 문자를 받고 감동스러운 마음으로 임하여 단번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경채 군무원으로 합격한 지 3주 만에 임용되었는데 임용 신고일 아침에도 상담사님께서 축하한다고 연락을 주셔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끝이 아니라 제가 실업급여 수급기간 6개월 중 3개월 차에 취업했다고 잔여기간과 금액을 신속히 계산하여 나머지 금액을 입금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센터에는 전심으로 신경 써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이 때문에 제대군인이 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힘든 취업 기간에 많은 위안을 받게 되는 것 같아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군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국가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우하기 위해 힘쓰고 계신 국가보훈부, 제대군인지원센터의 관계자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어려운 시기에 취업을 준비하는 모든 분께는 자신의 잠재력과 능력을 스스로 믿고 본인이 가는 길이 곧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힘차게 나아가시면 반드시 원하는 바를 달성하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 본 수기는 개인의 경험으로 정부 정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본 수기는 지면 관계상 내용이 다소 요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