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ter Live
무엇이든 물어보살
행복을 담는 공간
글 김미리 『아무튼, 집』,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 저자
Q.
안녕하세요, 군인의 삶을 정리하고 있는 40대입니다.
오랜 단체 생활과 관사 생활을 했던 저는 이제 우리 가족을 위한 공간은 물론 저만의 공간을 제대로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집이라는 곳이 주는 치유와 재충전, 그리고 나만의 공간미학 같은 것을 갖추자면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요?
A.
처음 저만의 공간을 꾸릴 때를 떠올려 봅니다. 벅차고 설레는데 한편으론 막막하고 아득하기도 했죠.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무엇부터 결정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어요. 질문을 받고 그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저희의 삶은 비슷한 부분보다 다른 부분이 더 많을 텐데요. 새로운 집을 그려보는 이 마음만은 닮아있을 것 같아요.
포기할 수 있는 것 vs 없는 것
공간을 꾸려가는 과정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의 시간과 돈, 에너지가 유한하기 때문이겠죠. 그렇기에 공간을 계획할 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과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거죠. 몇 년 전 저는 시골의 작은 한옥을 고쳐 오도이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폐가였던 시골집을 고쳐 살자고 마음먹었을 때, 제 최우선 순위는 보존과 보안이었어요. 세월을 간직한 집의 모습을 가능한 유지하면서 혼자 지내기에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집 안 곳곳에 이가 맞지 않는, 낡은 전통 창호문이 있었어요. 이 여러 개의 문들을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오래 고민했습니다. 알아보니 픽스창(개폐가 불가능한 고정창)이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전통 창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안 쪽에 이중단열 픽스창을 추가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아름다운 전통 문양을 온전히 살리면서 보안과 단열에도 효과적이니까요. 하지만 픽스창을 끼운 문으로는 출입이 불가능하니까 조금 더 불편해졌습니다. 그때 생각했어요. ‘모든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선택은 없을 텐데…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은 뭘까? 반대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은?’ 저는 보존과 보안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반면 편리함은 어렵지 않게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그러니 공간을 구상하기 전에 차분히 마음을 들여다보며 포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여러 방법을 찾아보고 전문가의 조언도 들으면서요. 정보와 조언을 토대로 나만의 우선순위 리스트를 만들어 보세요. 가능하면 공간을 꾸리는 여정 내내 살펴볼 수 있도록 기록하시길 추천합니다. 가족, 동거인,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경우 함께 우선순위를 정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모두가 행복한 집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 주세요.
*오도이촌: 일주일 중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농촌에서 생활하는 라이프스타일
일상 속 취향 수집
취향이라는 단어는 집과 같은 공간을 이야기할 때 짝꿍처럼 붙어 다니죠. 멋진 집을 보면 ‘이 집은 사는 사람의 취향이 그대로 느껴지네요’라고 칭찬하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자신의 취향을 알고 공간에 반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요. 저는 독립한 이후에도 내내 룸메이트나 하우스메이트가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을 탐구하고 시도하기보다 여러 사람에게 무난한 것들을 선택해 왔죠. 그런데 갑자기 제 취향으로 공간을 채우려니 난감했어요. ‘내 취향은 뭘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필요한 가구와 집기 구매를 앞두고는, 급하게 여러 책과 SNS를 찾아보며 좋아 보이는 것들의 사진을 잔뜩 수집했습니다. 그런데 모아 놓고 나니 너무 장식적이거나 공간 여건에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아니면 예산 대비 지나치게 비싸거나요. 결국 수많은 참고자료는 넣어두고 일상 속에서 차근히 좋아하는 것들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자주 가는 카페에서 마음에 드는 그릇을 발견하면 얼른 사진으로 남겨두었어요. 사진 속 그릇과 같거나 비슷한 제품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더 마음에 드는 제품과 브랜드를 발견하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동네 책방에 놓인 커다란 나무 책장에서 영감을 얻어, 제게 필요한 책장을 구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저희 집 거실의 모양과 공간 크기, 수납해야 하는 책의 수량들을 고려해서 말이죠. 그러면서 점차 스스로를 알게 됐습니다. ‘내가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구나’, ‘이런 모양은 그냥 익숙한 거구나’, ‘이런 건 멋지지만 나의 사용방식과는 맞지 않네’ 하면서요. ‘취향’이라는 건 말 그대로 마음이 향하는 곳이라는 뜻이잖아요. 마음이 원하는 곳을 찾아가려면 충분한 시간과 여러 번의 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얼른 멋진 공간을 꾸리자는 목표가 있으니 자꾸만 서두르게 되지만, 마음이 원하는 곳으로 향하도록 일상 속에서 잠깐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어떨까요?
가장 좋아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집에 머무는 걸 좋아하고 외출을 꺼리는 편인데도 카페만은 예외로 두었죠. 어느 날은 휴대폰 속 사진첩을 살펴보다가 카페에서 찍은 사진들에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저는 늘 통유리 창가, 식물이 가까운 자리에 앉더라고요. 순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집에도 이런 공간을 만들어 볼까? 고민 끝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를 구매했습니다. 공간과 제 앉은 키에 맞춘 제품으로요. 반려묘에게 해롭지 않은 반려식물들도 몇 개 들였습니다. 그게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왜 좀 더 일찍 이런 공간을 꾸미지 못했을까 싶어요. 이제 저는 카페보다 집에서 책을 읽고 글 쓰는 것을 선호해요. 지금 이 글도 식물과 가까운 창가 테이블에서 쓰고 있어요. 이곳에서 읽고 쓰는 것이 가장 효율이 높거든요. 제 행복효율이 가장 극대화되는 공간이죠.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멀리 떠났다가도 매일 집으로 돌아오는 존재들이잖아요. 그러니 집의 어떤 공간은 나와 가족 구성원이 가장 좋아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해요. 아주 작고 소박한 공간이라도요. 집을 구성하는 사소한 물건이라도요. 매일 돌아오는 곳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멋진 집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때에 따라 멋진 집에 대한 기준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단순히 멋진 집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공간을 채워나가면 한없이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저는 ‘소중한 사람’과 ‘사소한 시간’을 떠올리고 있어요. 집이라는 건 지붕 아래 공간, 함께 사는 존재들, 함께 보내는 세월까지도 포함하는 말이니까요. 타인의 기준 말고 나만의 기준, 일상 속 작은 영감, 가족과 보낼 순간들을 마음에 두고 공간을 꾸리시면 어떨까요? 어떤 멋진 공간도 대체할 수 없는, 행복이 단단히 자리 잡는 우리 집이 될 거라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