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my Life
매치포인트
마음까지 달보드레하게
만들어주는 한국 대표 간식
– 성심당 & 오리온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사는 것이 초콜릿보다 더 달콤하다는 것.” 영화 ‘찰리와 초콜릿공장’에 등장하는 대사예요. 달콤한 인생이지만, 가끔 지쳐가는 일상에 활력이 되어주는 것이 달보드레한 빵과 과자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집 앞 편의점만 가도 언제든지 손쉽게 전 세계의 다양한 디저트를 구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예전부터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간식하면 떠오르는 것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대전의 대표 빵집 성심당과 초코파이로 유명한 오리온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글 한재동 작가 겸 칼럼니스트
Sungsimdang
대전의 작은 빵집이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빵집으로,
성심당
성심당의 시작은 1956년 대전역 앞의 작은 찐빵집이었습니다. 창업자 임길순 회장은 생계가 막막한 시절 성당에서 받은 밀가루 2포대로 대전역 앞에서 천막을 치고 장사를 시작했다고 해요. “당일 생산한 빵은 당일 모두 소진한다”라는 원칙으로 팔다가 남은 빵은 전쟁고아, 노숙자 등 어려운 사람을 비롯해 동네 어르신과 아이들에게까지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성심’이라는 상호도 ‘거룩한 사랑의 마음’이라는 가톨릭 정신을 뜻한다고 해요. 1967년 지금의 은행동 본점 자리에 자리를 잡은 이후 지역 빵집으로 순조로운 성장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야심차게 프랜차이즈 사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게 돼요.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마케팅과 외환위기 여파를 이겨내기 힘들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5년 공장이 전소되는 큰 화재로 위기를 맞게 됩니다.
존폐의 기로에서 성심당 직원들은 불타버린 공장을 청소하고, 쓸 만한 기계들을 골라서 고쳐가며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빵을 만들어 판매하게 돼요. 위기 뒤에 기회가 오는 것처럼, 2000년대 후반이 되어 대전의 지역 빵집으로 명맥을 이어가던 성심당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대전의 관광 콘텐츠로 성심당이 각광받게 된 것이에요. 이에 성심당은 1980년대부터 인기를 얻어온 튀김소보로와 부추빵에 안주하지 않고 보문산 메아리, 명란 바게트와 같은 새로운 히트작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SNS의 등장과 인터넷의 발달은 성심당의 빵을 전국에 알렸고, 한국인의 식사에서 빵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늘어가며 성심당은 가파르게 성장하기 시작해요. 2010년대 들어 백화점의 팝업스토어를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유명 백화점들이 성심당을 유치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성심당은 대전에 대한 사랑과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위해 대전을 벗어나지 않겠다고 선언해요.
2014년 프란체스코 교황이 방한하며, 가톨릭의 정신을 중요시하고 실천하던 성심당을 찾아옵니다. 아침으로 성심당의 빵을 먹고, 그간의 불우한 이웃을 도운 공을 치하하며 교황 기사단 훈장을 수여했어요. 그리고 2023년, 유수의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을 제치고 국내에서 가장 많은 영업이익을 낸 빵집이 되었습니다. 명실공히 고객이 사랑하고, 존경받는 기업이 된 것이지요.
Orion
한국인의 간식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초코파이, 오리온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저 바라보면’ 가사만 봐도 노래가 나오게 되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CM송, 바로 오리온 초코파이 정(情)의 광고입니다. 초코파이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간식이자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간식이 되었어요. 그리고 제조사인 오리온은 한국을 넘어 글로벌 제과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
오리온의 시작은 설탕 도매업으로 부를 쌓은 이양구 회장이 과자 생산시설을 보유한 풍국제과를 인수하며 동양제과를 설립한 1956년이에요. 창업자 이양구 회장은 “사회에 공헌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가난한 집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과자를 생산하려 합니다. 오리온 캐러멜을 시작으로 웨하스, 마미비스킷 등 다양한 과자들을 선보이며 제과 사업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해요. 그리고 1974년, 초코파이를 만들게 되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초코파이는 미국 경제 공황 때 가난한 노동자들이 밥 대신 먹었던 ‘문파이’를 모태로 했는데, 미국으로 출장 간 오리온 직원들이 카페에서 나오는 문파이를 맛보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개발에 성공했다고 해요. 초코파이가 출고 되는 날이면 도매상들이 공장 앞에서 기다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1987년 출시한 치토스와 포카칩도 연달아 성공하며 국내 최정상의 제과 기업이 되었어요.
하지만 경쟁사들이 초코파이와 비슷한 제품을 출시하고, ‘빅파이’, ‘오예스’가 등장하면서 점차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앞에 이야기했던 정(情)을 내세운 마케팅이 성공합니다. 스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과 일상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광고들이 연이어 성공하며 독보적인 브랜드 파워를 가지게 돼요.
1993년 중국 베이징에 사무소를 개설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한 오리온은 중국과 러시아, 동남아에서 초코파이가 인기를 끌며 승승장구합니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각 국가별 제과 시장을 석권하게 돼요. 2011년 러시아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차를 마시며 초코파이를 먹는 사진이 소개되면서 러시아 국민간식으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현재 초코파이는 매년 전 세계에 20억 개가 팔린다고 해요. 2020년부터 중국에서의 매출은 한국 매출의 2배에 달할 정도로 해외시장에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초코파이 외에도 다양한 신제품들의 성공으로 오리온은 이제 8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성장했어요. K-POP과 동시에 K-간식이 세계인을 사로잡을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