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ge Work
백 투더 잡
잠잠하지만 강인한
바다의 노동자
잠녀 & 해녀
바다는 별다른 장비 없이 아무나 잠수를 도전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런 바닷속을 드나들며 생계를 꾸렸던 강인한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과거의 잠녀와, 오늘날의 해녀다.
이들이 어떤 강인함으로 바다를 누비는 것인지 그 역사를 살펴보았다.
전복과 미역을 공납하던 제주 여성들
잠녀
잠녀는 예로부터 존재해 온 여성 나잠어업자다. 1628년 이건의 제주풍토기와 1665년 이익태의 지영록에서 전복과 미역을 따는 잠녀의 이야기가 발견된다. 제주에는 17세기 말까지 ‘포작’이라는 남성 나잠어업자도 있었으나, 과도한 역과 공납의 부담에 시달리던 포작들이 도주하자 아내인 잠녀들이 18세기 초부터 공납을 전담하면서 잠녀라는 직업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잠녀들은 1년 동안 관에 진상할 미역과 전복을 준비해야 했다. 이를 위해 10미터 깊이의 바다를 1분간 무호흡으로 잠수하는 ‘물질’을 계절에 따라 하루 4~7시간 해서 미역, 소라, 전복 등을 채취했다. ‘테왁’이라고 부르는 박으로 만든 기구와 그물인 ‘망시리’, 그리고 낫이 잠녀가 주로 사용하던 도구였다. 이 외에 특별한 작업복이나 장비는 없었지만, 덕분에 혼자 힘으로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하고 수면으로 올라오는 일을 반복할 수 있었다.
잠녀들 사이에서도 각자 특기가 달랐다. 특히 자연산 전복은 매우 힘이 세서 잠녀가 빨판에 잡혀 수면 위로 나오지 못하는 사고가 생기는 등 채취에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전복을 채취하는 잠녀는 드물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역을 주로 채취하는 잠녀에게 전복 공납을 소량 분담시키는 개선책이 등장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며 잠녀의 고역을 덜기 위해 관에서 잠녀가 채취한 전복과 미역을 사들이는 등 관으로부터 점차 변화가 일어났다. 19세기 들어서는 진상과 공납의 부담이 완전히 없어져 잠녀들이 고역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자부심을 가지고 잠녀의 뒤를 잇다
해녀
사실상 해녀는 잠녀와 크게 다른 직업은 아니다. 오히려 잠녀의 전통을 잇고 있는 사람들을 해녀로 부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크게 달라지면서, 해녀들은 잠녀와 완전히 같은 형태로 일하지는 않게 되었다. 이번에는 연속선상 위에서 잠녀가 해녀로 불리는 이 시대로 오기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되짚어 보기로 한다.
우선 겉보기로 나타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작업복이다. 해녀들은 1930년대에 들어 물적삼이라는 옷을 입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는 고무옷이 등장했다. 고무옷은 해녀의 작업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였지만, 동시에 계절에 상관없이 물질을 할 수 있게 되고 작업 시간도 증가하면서 안타깝게도 간접적으로 해녀들이 여러 질환에 시달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또한 공납을 위해 물질을 하던 조선시대의 잠녀와 다르게 오늘날의 해녀는 자본주의 위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도 큰 차이다. 1895년부터 육지의 업자들이 해녀를 일정 임금으로 고용했다는 기록이 보이며 이즈음 잠녀와 해녀의 역사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해녀들은 제주를 떠날 수도, 노동에 대가를 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제주도를 떠난 출가 해녀들이 고난을 겪기도 했으나 해녀들은 해녀공동체를 지키고자 했고,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제주해녀문화가 등재되며 더욱 인정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제주해녀를 포함한 전국 각지의 해녀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지켜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