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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
BEST Mechanic에서
BEST Farmer로!
전투기 정비사,
스마트팜 농업인으로
날아오르다
최승우 예비역 공군 준위
파일럿을 꿈꾸던 소년, 평생을 전투기 정비사로 살 줄 알았던 군인. 그러나 전역 후 그를 사로잡은 것은 최첨단 기계가 아닌, 자연의 색을 머금은 파프리카였다. 33년간 군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강원도 원주에서 스마트팜 농업에 도전한 최승우 예비역 공군 준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글 박선경 사진 권진혁
CHOI SEUNG WOO

최승우
예비역 공군 준위

33년간 최고의 정비사로 활약한 군인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에서 3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농사일에 헌신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도시로 나가 편하게 살길 원했고, 그는 그 뜻을 따라 열심히 공부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항공기 정비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다행히 국가에서 공부며 기숙까지 해결해 주는 대전의 공군기술고등학교(현 항공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꿈에 한 발 더 다가갔다.
1983년 졸업과 동시에 공군 전투기 정비부서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군 생활은 아버지의 희망대로 손에 흙은 묻히지 않았지만, 흙 대신 기름을 묻히는 일이라 편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파일럿의 생명을 지키고 국가의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기에 하루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는 ‘최고의 정비사가 되자’는 목표를 세우고, 기본적인 일부터 철저히 실천하는BEST(Basic, Easy, Small, Today) 정신을 가슴에 새겼다. 그 결과 8전투비행단, 19전투비행단, 10전투비행단 등 33년간 군에서 누구보다 성실히 근무하며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고, 2015년 준위로 전역했다.

아내와 파프리카, 그리고 새로운 길
1987년 결혼 후 강원도 원주에 터를 잡은 그는 세 자녀를 키우며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그러던 중 아내 이수정 씨는 3남매가 어느 정도 자라자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아내가 선택한 곳은 원주 신림면 황둔에 위치한 파프리카 농장의 사무직이었다. 매일 새벽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아내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컸지만, 아내의 열정은 18년 동안 이어졌다. 오히려 “농사일이 재미있다”며 기쁨을 찾았다.
2015년 전역 후 꿈꾸던 귀촌 생활을 위해 황둔 농장 근처에 집을 지었다. 설계는 운 좋게도 유명 연예인의 집을 건축한 친구가 맡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귀촌 생활이 시작됐다. 아내가 농장으로 출근하면 그는 이웃들과 소통하며 마을 경조사를 챙기고 자원봉사에 나섰다. 담배꽁초가 즐비한 골목을 아침마다 쓸었고, 솔선수범하는 그의 모습에 동장이 ‘클리닉상’ 후보로 추천하여 상도 받았다. 마을 행사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귀촌에서 귀농으로, 파프리카 농장주로
평온한 귀촌 생활을 꿈꾸던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아내가 다니던 농장의 사장이 고령으로 운영을 축소하려 하자, 아내가 “우리가 농장을 한번 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처음엔 반대했지만, 아내의 열정과 설득에 결국 마음을 바꿨다.
그렇게 3,000평의 파프리카 농장을 인수했다. 하지만 농사의 현실은 혹독했다. 한겨울 영하 21도, 온실 내부 온도를 20도로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와 아내는 매시간 온도를 체크하며 밤을 지새웠다. 모터 고장으로 보온 커튼이 작동하지 않을 때는 긴급 수리를 불러야 했고, 매출이 안정되지 않아 경제적 부담도 컸다.
하지만 그는 군에서 배운 ‘BEST 정신’을 되새겼다. 모터 수리를 전문가에게 배우며 직접 정비에 나섰고, 거래처와 신뢰를 쌓아 자금을 융통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깨달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스마트 농업 전문가로 성장하다
농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그는 공부를 결심했다. 아내가 먼저 다니던 강원대학교 스마트팜 농산업학과 후배로 입학해 졸업했다. 전역 후 3년 이내 대학 진학 시 학비 50%가 지원된 덕분에 부담은 덜었지만, 늦은 나이에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때 그는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도 밤에 한자 공부를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포기하지 않았다. 덕분에 스마트팜 기술을 익히며 농업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특히 작물의 뿌리가 튼튼해야 건강한 수확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갖게 되면서, ‘자가 육묘’에 주목했고, 마침내 이뤄냈다. 부부의 노력은 더 큰 결실로 이어졌다. 황둔 농협을 시작으로 지역 농협, 학교 급식, 원주 로컬푸드센터, 군부대, 농협마트(고속도로 휴게소) 등에 납품했고, 2016년부터 일본 수출도 시작했다. 2024년에는 온라인 판매를 개시하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 쿠팡, 강원더몰에 입점했다. 그 결과 4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연간 150톤을 수확, 연매출 5억원 이상을 기록하며 원주를 대표하는 파프리카 농장으로 자리 잡았고, 2023년 ‘강소농 파프리카 명인’으로 선정되었다. 2024년 강원도 농업인 정보화 경진대회 ‘농식품 사진 공모전’에서 최우수상도 받았다. 국내 굴지의 종묘 회사 테스트베드 농장으로 선정돼 신품종을 심고 수확량을 파악하는 중요한 역할도 하고 있다.

제대군인을 위한 멘토, 그리고 새로운 꿈
그는 지난해 강원서부보훈지청 ‘제대군인지원센터 멘토’로 위촉됐다. 스마트팜 전문가로서 예비 귀농인들과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스스로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며, 6차 산업 인증 절차도 진행 중이다. 체험농장을 운영하며 파프리카, 딸기, 토마토 수확 체험과 수확물을 이용해 주스, 와플, 피자 등을 만들어 보며 온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포토존에서 인생샷까지 남길 수 있는 농장을 만들어 갈 계획이다. 파프리카 고춧가루를 개발해 아이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김치를 만드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체험농장을 찾은 학생들에게 전역 후 노력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저씨, 짱!”이라며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오는데, 그럴 때면 평생학습의 필요성과 어려움에 포기하지 않는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지금이 참으로 행복하다. 그리고 웃으며 덧붙인다. “이제는 아내보다 내가 더 파프리카와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전투기를 정비하던 군인이 이제는 파프리카를 키우며 새로운 하늘을 그리고 있다. 도전과 열정으로 가득 찬 그의 이야기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군에서는 하늘을, 농장에서는 미래를 가꾸는 그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
Best 정신을 실천하라
기본부터, 쉬운 것부터, 작은 것부터, 오늘부터 최선을 다해야 군에서나 사회에서나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2
미리 고민하고 경험하라
취업이든 창업이든 무엇을 할지 충분히 고민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