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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
군복 벗고 예술을 품다
야전의 공병, 문화의 수호자로
한정연 예비역 육군 대위
군에서 9년 6개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건축 전공의 공병 장교가 전역 후 또 다른 현장을 찾았다. 이번엔 예술의 온기가 스며든 공간이다. 한정연 예비역 육군 대위는 이제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시민과 예술가를 잇는 ‘건축시설 관리자’로 새로운 삶을 열어가고 있다. 무대 뒤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책임지는 그의 이야기는 ‘늦은 시작’이 아니라 ‘의미 있는 전환’의 증거가 된다.
글 박선경 사진 최다영
HAN JEONG-YEON

한정연
예비역 육군 대위


문화예술 공간을 지키는 조용한 일꾼
대구시 중구 수창동, 한때 담배공장이던 붉은 벽돌 건물은 이제 전시와 공연, 창작의 열기로 가득하다. 대구예술발전소, 연간 7만 명 이상의 시민이 찾는 이 복합문화공간에서 한정연 주임은 건물의 뼈대를 지키며 예술이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는 터를 만든다. 올해 2월 17일부터 시작된 이 여정은 단순한 ‘직장’이 아니다. 오랜 기다림과 준비 끝에 만난, 그에게 딱 맞는 무대였다.
제대군인지원센터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 헤매던 그는 지방 공공기관 정규직 채용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군 경력, 나이, 몇 번의 좌절 등 그 모든 무게를 짊어진 채 “지금껏 버텨온 나를 믿어보자”며 면접장에 섰다. 군에서 갈고닦은 경험과 기술을 진솔하게 풀어냈고, 그 진심은 면접관의 마음을 움직였다. 마침내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산하 대구예술발전소 ‘시설 관리자’로 합격의 기쁨을 안았다.
땀으로 쌓은 군 시절, 그리고 전역의 선택
2009년, 계명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ROTC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첫 발걸음은 8사단 공병대대 소대장. 공병의 특성상 야전에서 다리를 놓고 지뢰를 설치하며, 전공인 건축공학을 실전 속에 녹여냈다. 73사단, 국방시설본부 강원시설단까지, 그는 군이라는 거친 땅에서 묵묵히 뿌리를 내렸다.
“군 생활은 힘들었지만 나쁘지 않았어요. 현장 일이 재미있었고,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하는 데 자신 있었죠.”
하지만 장기복무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몇 차례 탈락의 쓴맛을 봤고, 결국 전역을 결심했다.
“특별히 두드러진 점이 없는 저로선 실적 싸움에서 밀렸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전역 후의 삶도 내 인생이라 생각하며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후회 없이, 그러나 단단한 각오로 그는 군문을 나섰다.



전역 이후, 방황과 도전 사이에서
전역 후의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처음엔 군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학원 문을 두드렸고, 제대군인지원센터의 학원비 지원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하지만 시험의 벽은 높았고, 그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어린 시절 책과 컴퓨터 속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던 그는 3D 모델링에 끌리기 시작했다. 전역 후 오랜만에 맛본 ‘재미있는 공부’는 그에게 불씨가 됐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왕복 6시간 넘는 거리를 오가며 실력을 쌓았지만, 현실은 또 한 번 장벽을 세웠다. 업체는 대부분 서울에 몰려 있었고, 병환 중이던 아버지를 두고 떠날 수 없었다.
“대구에 남아야 했기에 기회가 적었죠. 부업으로 시간을 채우며 지냈지만, 하고 싶은 걸 해본 그 경험이 지금을 더 소중하게 만들었어요.” 이후 그는 아파트 관리기사로 9개월을 보냈다. 건축기사와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은 빛을 발했고, 전기 작업, 누수 보수, 안전 점검 등 몸으로 익힌 실무는 그의 튼튼한 자산이 됐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이곳에서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현장에 답이 있다, 다시 걷는 길 위에서
출근하면 1층 전시장 조명부터 옥상 정원까지, 그는 건물 구석구석을 살핀다. 작은 고장은 직접 손보고, 큰 공사는 시공업체와 협력하며 꼼꼼히 기록한다. ‘보이지 않는 완벽함’이 그의 일이고 책임이다.
“군에서 공사 감독하며 다진 판단력과 관리 능력이 지금도 큰 힘이 돼요.”
그에게 공간을 ‘안전하게’, ‘제대로’ 지키는 일은 군과 민간을 잇는 다리이자 그의 정체성이다.
현재 그는 시설관리 자격증과 전기기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단순히 일을 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공간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그를 움직인다.
후배 제대군인들에게 그는 조용히 말한다. “나이에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지금 도전하세요. 그 경험이 삶의 힘이 됩니다. 진심으로요.”
그는 오늘도 뚜벅뚜벅 걷는다. 낯선 길 위에서도 그의 걸음엔 단단한 자신감이 배어 있다. 군에서, 그리고 전역 이후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하며 다져온 보폭이다.
1
몸이 재산이다.
무리하지 말고 충분히 쉬어라.
잠은 하루 8시간 이상 꼭 자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기본이 흔들리면 어떤 것도 지킬 수 없다는 믿음. 체력은 곧 삶의 기반입니다.
2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바로 시작하라.
일단 시작했다면, 흔들리지 말고 온전히 집중하세요.
►열정은 타이밍이 생명입니다. 행동이 빠를수록 기회는 커지고, 몰입이 성과를 만듭니다.
3
바쁠수록 사람을 챙겨라.
가족과 친구를 소홀히 하지 말고, 늘 소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일보다 중요한 건 결국 ‘사람’. 일상을 함께하는 관계가 삶의 버팀목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