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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
군특성화교사로
교단에서 다시 시작된
군인의 사명
다시 전우를 키우는 삶
조승제 예비역 육군 중령
군복을 벗었지만, 그의 발걸음은 다시 군을 향하고 있다.
이번에는 계급장을 단 엄한 교관이 아닌, 아이들의 서툰 질문에도 미소 짓는 따뜻한 선생님의 모습으로 말이다.
조승제 예비역 육군 중령은 현재 경남 진주의 경남자동차고등학교에서 군특성화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오늘도 교실에서 장차 제복을 입게 될 청소년들에게 첫 번째 전우가 되어주고 있다.
글 박선경 사진 최다영

조승제
예비역 육군 중령
JO SEUNGJE


꿈은 바뀌어도 삶은 계속된다
어릴 적부터 그는 사람을 좋아했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즐겼다.
공 하나만 있으면 운동장이 곧 놀이터가 되었고, 교실 끝 창가에선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멜로디 삼아 노래를 불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합창단 활동을 하며 성악가의 꿈을 키웠지만, 대학 입시에 실패하면서 그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첫 번째 이 멈췄다고 해서 삶이 멈추지는 않았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그는 음악 동아리에서 무대를 오르 내리며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매 순간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배워나가고 있었다.
그런 일상 속에서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월남전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해병대 출신 아버지 특유의 절제된 언어와 묵직한 삶의 무게감은 어느새 그의 내면에 하나의 나침반을 만들어놓았다. ‘책임질 줄 아는 삶, 누군가를 지키는 삶.’ 그런 가치관이 결국 그를 1995년 3사관학교 입교라는 결심으로 이끌었다.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고, 동시에 단단한 출발이었다.
철책 너머에서 배운 진짜 동료애
소위로 임관한 후 그가 배정받은 병과는 수송이었다. 병력과 물자가 흐르는 길을 책임지는 중요한 자리였다. 7공수여단 수송대장으로 시작해 2작전사령부, 국군수송사령부에서 참모직을 수행하며 지휘관과 참모 사이의 균형, 현장과 전략의 중간 지점을 몸으로 부딪치며 익혀나갔다.
그런 그에게 군 생활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었다. 12사단 수색대대 소속으로 남한 최북단 865GP장으로 근무하던 1996년 9월이었다. 6개월의 혹독한 GP 근무를 마치고 철수 준비를 하던 바로 그날,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무장공비가 잠수함을 타고 침투했다는 소식에 철수는 즉시 취소되었고, 그는 그날부터 두 달 가까이 긴장과 추위, 불안 속에서 부대를 지켜야 했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가면서 그는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나갔다. 논산훈련소 참모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간호장교로 복무 중이던 현재의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아내는 먼저 제대하여 김해중앙여자고등학교에서 보건 교사로 재직 중이다.
계급은 올라갔지만 마음은 비어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묘한 공허감이 찾아왔다. 계급은 하나씩 올라갔지만, 군인의 숙명처럼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 부족했다. 그 아쉬움은 점점 마음 한구석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결단을 내렸어요. 지금 아니면 정말 소중한 것들을 모두 놓치고 말 것 같았거든요.”
23년간 복무한 그는 2018년 중령으로 명예롭게 퇴역했다. 전역 후에는 국제라이온스협회 사무국장으로 1년간 근무하며 국내외 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분명 의미 있는 일들이었고, 가슴이 뛰는 순간들도 많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모든 헌신 속에서 정작 ‘조승제’라는 개인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돕느라 바빴는데, 정작 제 내면은 텅 비어가고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전역하면서 생각했던 가족과 내 삶의 여유를 찾을 시간이 없었어요.”




교실에서 찾은 새로운 소명
그런 그에게 경남제대군인지원센터에서 온 연락은 마치 가뭄 끝의 단비 같았다. 군특성화교사 채용 공고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센터의 취업 간담회와 실무 상담, 서류 작성법 안내 덕분에 그는 차질 없이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2019년 2월 1일 그는 경남자동차고등학교 자동차과의 군특성화교사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마침 국방부 군특성화사업이 전국 23개 학교 40개 학과로 대폭 확대되던 해이기도 했다. 그가 맡은 자동차과는 기존 엔진차는 물론 최근 군에도 보급되고 있는 전기차까지 모든 차량 정비를 실습 중심으로 가르친다. 벤츠, 볼보 등과의 협업 관계도 구축하고 있어, 제대 후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한 연계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경남자동차고등학교 군특성화사업은 자동차과와 전기·전자과에 각각 20명씩 총 40명의 신입생을 선발하며, 평균 경쟁률은 3:1 이상에 달한다. 입학생에게는 연간 130만 원의 지원금과 실습비, 방과 후 수업료가 전액 면제된다. 지난해에는 기숙사까지 완공되어 더욱 안정적인 교육 환경이 마련되었다.
지금까지 총 120여 명의 제자를 배출했고, 실제로 중사까지 진급한 졸업생도 있다. 휴가를 나와 학교를 찾는 제자들도 많다.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볼 때마다 교사로서 큰 보람과 자긍심도 느낀다.
계급장을 벗고 찾은 진짜 자유
그는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계급장을 내려놓는 일이 가장 어색했다고 회상한다. “학교는 전부 평교사니까요. 처음엔 어색했는데, 계급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졌고 성격도 유해지고, 인간관계도 더 넓어졌습니다.”
군특성화교사의 근무는 주 4일제(화~금)이며 방학도 있다. 23년간 쉴 틈 없이 달려온 그에게는 새로운 여유가 생겼다.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여유로운 시기 같아요. 교사인 아내도 같은 시기 방학해서 함께 여행도 다닐 수 있고요.”
하지만 여유로워졌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지는 않는다. 그는 현재 학생들의 군 적응을 돕기 위해 군 관련 기초 지식부터 병과 선택, 부대 생활 요령까지 현실적인 멘토링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반기·하반기 각 1회씩 제자들의 부대를 직접 찾아가 확인하는 ‘추수지도’도 병행하고 있다.
새로운 전우들을 향한 따뜻한 응원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운 이 경험은 경남제대군인지원센터 멘토가 되어 같은 길을 걷게 될 후배 제대군인들에게 조심스럽지만 깊은 마음으로 조언을 건넨다. “직업이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나침반입니다. 군대에서 달고 있던 계급을 깨끗이 내려놓고, 진짜 자신과 마주 하는 용기를 가져보세요. 거기서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그의 마음속엔 늘 제자들을 향한 간절한 바람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군에서 장기 복무하며 상사, 원사, 준위까지 성장해 군의 핵심 자원이 되길 바랍니다. 군과 사회 모두에 꼭 필요한 인재로 자라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군이 맞지 않아서 제대를 하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라고요.”
아들에 대한 자부심도 빼놓을 수 없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학군 64기 장교로 내년에 초급간부가 되는 아들도 힘든 장교의 길을 택해 주어서 대견합니다. 항상 건강하게 우리 군의 초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총을 들지는 않지만, 그는 매일 누군가의 ‘용기 있는 첫걸음’을 응원하며 살아간다. 그가 서 있는 교실은 많은 청소년들에게 ‘군대’라는 세계로 들어서는 가장 따뜻하고 든든한 문이 되고 있다. 조승제 중령의 새로운 사명은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삶의 방향은 결국 내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시선과 태도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할 일은 오늘 끝냅니다
미루는 습관은 결국 나를 더 힘들게 만든다는 것을 군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저의 일상 원칙입니다.
먼저 듣는 사람이 결국 더 큰 신뢰를 얻습니다
대화를 시작할 때는 말보다 ‘경청’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자세는 사람과 사람을 잇고 관계를 지켜주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