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March Vol.181
샘 월튼 (Samuel Moore Walton)
인구 3천 명도 안 되는 시골마을의 작은 잡화점을 글로벌 유통기업 월마트로 키워낸 샘 월튼(Samuel Moore Walton).
‘고객을 위해 1달러를 절약할 때마다 경쟁에서 한 걸음 앞서갈 것’이라는 신념을 차곡차곡 실현해낸 그의 삶을 보면 ‘운명은 뜻한 바에 따라 달라진다’는 명제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글. 윤진아 일러스트. 비올라
1945년 군 전역 후 월튼은 장인에게 빌린 돈 2만 달러와 자신의 돈 5천 달러로 아칸소주의 소도시에 있는 잡화점을 매입했다.
1달러를 벌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일해야 하는지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체득한 월튼은 “월마트가 낭비하는 1달러는 고객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라며 “고객을 위해 1달러를 절약할 때마다 경쟁에서 한 걸음 앞설 수 있다”는 신념을 부지런히 발로 뛰며 구체화했다. 상품공급자를 만나 싼 가격에 팔 것을 설득했고, 가격을 낮춤으로써 판매량을 늘리는 전략으로 2년 만에 장인에게 빌린 돈을 다 갚았다.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직접 제조하는 것도 마다치 않았으며, 개업 5년 무렵엔 아칸소주 최고 매출을 올리는 소매상점이 됐다.
‘최저 가격’, ‘고객 만족’이라는 고객 제일주의를 통해 고객의 주머니를 가볍게 해주고자 했던 월튼의 신념은 불황에 더욱 빛을 발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한파로 세계경제가 흔들리고 모든 유통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한 상황에서도 월마트의 성장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1962년 아칸소주 로저스에 월마트 1호점 개점을 시작으로 29년만인 1990년 경쟁사 K마트를 추월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미국 소매업계를 평정하고 유통업계 제왕의 자리에 올랐다. 창업 40년 만인 2002년, 월마트는 전세계 4천 9백여 개 매장에서 매주 1억 명 이상의 고객이 이용하는 세계 최대 유통기업으로 성장했다.
1980년대 말. 브라질의 한 유통업체가 선진유통사업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미국의 10개 유통업체 CEO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남미 유통 업체에 별 관심이 없던 대부분의 회사는 그 요청에 응하지 않았지만, 샘 월튼만은 예외였다.
월튼은 브라질 사업가들을 미국으로 불러 며칠을 같이 지냈다. 재미있는 것은, 오히려 월튼이 그들에게 물어본 것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 브라질의 사업 환경은 어떠한지, 라틴아메리카 유통업의 특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월튼은 매우 집요하게 질문했다. 브라질 유통업자들은 자신들이 월마트를 방문하는 동안 오히려 월튼이 브라질의 유통업에 대해 철저히 배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로는 너무도 엉뚱하고, 때로는 너무도 기발한 생각으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샘 월튼의 삶을 들여다보면 절로 알게 될 것이다. 확고한 신념과 치밀한 실행의 밀도만큼 삶의 궤적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샘 월튼의 성격이나 경영방식에 대해서는 세간의 평가가 엇갈린다. 개인적인 삶의 궤적이 어떠했든, 자신의 신념을 기어코 실현해내는 저력을 보여줌으로써 평범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나이 일흔이 넘어서도 월튼은 늘 소형녹음기를 들고 다니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녹음했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완벽주의에 대한 정의도 남달랐다. 월튼이 생각하는 완벽주의는 ‘보다 좋은 것’이 아닌 ‘이 이상은 없는 것’이었다. 샘 월튼은 “충분히 높은 수준의 상품과 서비스, 충분히 낮은 수준의 가격이란 있을 수 없다. 무조건 지금보다 더 나은 수준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보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혁신하면서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신념이다. 그의 말마따나,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더 열정적으로, 이 이상은 없을 정도로 매달리면 상상하지 못한 미래의 문이 열린다. 허튼소리가 아니다. ‘유통 거인’ 샘 월튼이 직접 경험했고, 인구 3천명도 안 되는 시골마을의 작은 잡화점을 세계 최대 유통기업으로 키운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