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October Vol.188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이를 곧 ‘애플의 사망 선고’로 여겼다. 잡스가 떠나고 10년이 흐른 2021년. 이제 시장은 이렇게 기억한다. “애플을 만든 건 잡스지만, 애플을 키운 건 팀 쿡”이라고. 50세의 나이에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에 오른 팀쿡은 보스가 사망한 위기에서 어떻게 난관을 헤쳐나갔을까?
글. 윤진아 일러스트. 비올라
팀 쿡(Tim Cook)이 애플의 최고경영자가 된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됐다. 2011년 8월 24일 애플이 팀 쿡을 CEO로 선임한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우려가 팽배했다. 당시 폐장 후 애플 주가는 5% 하락했고, 쿡의 리더십을 비관한 투자자들이 애플 주식을 대량 처분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팀 쿡이 이끈 애플의 10년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팀 쿡은 새벽 4시 30분이면 일어나 5시면 회사 책상에 앉아 있는 워커홀릭으로 유명하다. 글로벌 회의를 위해 일요일 저녁에도 일하고, 출장 비행기 안에서도 서류를 놓지 않는다. 회의 땐 끊임없는 질문으로 부하직원들을 긴장하게 하지만, 직원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 때문에 독설가였던 잡스 시절만큼 상처받는 직원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팀 쿡은 잡스의 흔적을 지우려 서두르지 않았다.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혁신을 지속한 쿡의 애플은 조금씩 전진했고, 애플의 세계 지배력은 더 커졌다. 잡스의 입김이 전혀 닿지 않은 애플워치는 웨어러블 제품 시장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사업영역을 창출했다. 애플의 PC 시장 점유율은 업계에서 유일하게 꾸준히 증가했으며, 디지털 구독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 비즈니스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아이폰의 위상도 높아졌다. 잡스가 CEO에서 물러날 때까지만 해도 전 세계 1억 대였던 아이폰은 2020년 10억 대를 넘었다. 전 세계 인구 7명 중 1명꼴로 애플을 쓰는 셈이다.
이를 가능케 한 건 팀 쿡의 공급망 관리 능력이라는 평가다. 쿡은 제품 수를 줄여 재고를 효율화하는 동시에 구매대금은 나중에 지불할 수 있도록 거래조건을 조율했다. “잡스가 제품 개발을 이끌었다면, 쿡은 회사를 현금더미로 만든 사람”이라는 내부 평가가 나온 이유다.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에서 보낸 유년생활은 팀 쿡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쿡이 CEO가 된 후 애플은 굵직한 변화를 겪었다. 잡스 시절 애플은 세금을 회피하고, 기부액은 전무하다시피 하며, 노동 착취 논란과 살벌한 내부경쟁으로 악명 높은 기업이었다.
쿡이 이끄는 애플은 수십억 달러를 재생에너지에 투자해 2018년부터 전 세계 애플 매장, 사무실, 데이터센터, 협력업체 등의 시설을 100% 청정에너지로 가동하고 있다.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기 위해 업계 최초로 재생에너지와 지속가능한 제조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고, 차별 없는 교육 실현을 위해 흑인·장애인에게 코딩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쿡은 “근로자를 돌보지 않는 공급업체는 어떤 곳이든 애플과 계약 해지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애플 주주들은 “애플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반발했지만, 팀 쿡은 “기업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것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전혀 다른 분야가 아니다. 만약 이를 이해할 수 없다면 지금 당장 애플의 주식을 팔아치워라!”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팀 쿡의 경영 방식에 대해 “잡스가 아이폰을 더 효율적이고 더 예쁘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쿡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역시 중시한다”고 평가했다.
팀 쿡의 리더십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는 ‘애플의 사과’였다. 쿡은 새로운 운영체계 iOS6의 오류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는데, 잡스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앱 생태계를 성공적으로 조성한 것 또한 쿡이 애플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킨 중대한 이정표로 꼽힌다. 팀 쿡이 공격적으로 키운 앱 시장에는 현재 200만 개의 앱이 있고, 전 세계 사용자들이 지난해에만 6,430억 달러를 결제했다. 특히 주목받는 건 쿡이 ‘애플 기반경제’, 즉 애플 플랫폼에 연동해 돌아가는 모든 기업의 연 매출을 7배로 늘렸다는 것이다.
이제 팀 쿡의 애플은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애플워치와 에어팟, 그리고 하이앤드 시장을 완전히 평정한 컴퓨터까지, 오롯이 쿡의 손에서 탄생한 제품들과 함께 로봇자동차도 세상을 변화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잡스가 만들어놓은 혁명적인 하드웨어 위에 새로운 기업가치를 입힌 팀 쿡은 ‘세계 1위 기업의 리더십’에 대한 세계의 질문에 묵묵히, 그리고 쉬지 않고 분명한 답을 내놓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