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November Vol.189
잉바르 캄프라드 (Ingvar Kamprad)
‘가구 공룡’ 이케아(IKEA)를 설립한 잉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는 남다른 장사 수완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캄프라드가 이케아를 크게 키울 수 있었던 건 ‘시간, 돈, 사람을 아낄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치열했던 과거의 기억을 일평생 잊지 않고 연이은 성공에도 안주하지 않았던 창업주 덕분에, 작은 잡화점이었던 이케아는 ‘100년 기업’의 뿌리를 굳게 내릴 수 있었다.
글. 윤진아 참고. <이케아 그 신화와 진실> 일러스트. 비올라
잉바르 캄프라드는 1926년 스웨덴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캄프라드의 ‘장사꾼 기질’은 어린 시절부터 싹이 보였다. 독일 이민자 출신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캄프라드는 5살에 성냥을 헐값에 사다가 낱개로 팔아 돈을 모았고, 11살엔 연필과 씨앗 등을 팔아 번 돈으로 자전거와 타자기를 샀다. 12살 땐 우유 배달 트럭을 얻어 타고 다니면서 직접 잡은 생선, 크리스마스 카드 등을 팔았다. 그 돈으로 캄프라드는 1943년, 17살의 어린 나이에 이케아를 설립했다. 기업명 이케아(IKEA)는 자신의 이름(Ingvar Kamprad)의 앞글자 IK와 어린 시절을 보낸 농장 엘름타뤼드(Elmtaryd)의 E, 고향 마을 아군나뤼드(Agunnaryd)의 A를 각각 따서 지었다. 시작은 일종의 잡화점이었다. 양말, 넥타이, 액자 등 생필품을 팔다가 1948년 가구 판매를 시작했고, 1951년부터는 아예 가구만 팔았다.
선천적인 난독증 환자였던 캄프라드는 제품 코드를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구마다 특정 장소나 사람 이름을 지어 쉽게 상품을 분류했다. 1953년엔 제품을 종류별로 모아 전시하는 대신, 방 하나를 여러 이케아 제품으로 채웠다. 이케아의 트레이드마크인 ‘쇼룸’을 연 것이다. 1956년에는 부품을 상자에 담아 운반하고 이를 소비자가 직접 조립하게 하는 가구, 일명 ‘플랫 팩(Flat Pack)’의 콘셉트를 세웠다. 드라이버와 렌치, 볼트와 너트만으로 조립할 수 있는 이케아 가구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고객이 직접 조립하게 해 가격을 낮춘 이케아의 콘셉트는 캄프라드의 최고 혁신으로 기록된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세계 억만장자’ 명단 8위에 오른 부자였지만, 캄프라드는 소문난 구두쇠로 알려져 있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고 비행기는 이코노미석만 이용했으며, 옷은 벼룩시장에서 사 입었다.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땐 늘 문 닫기 전에 들어가 마감세일 상품을 이용했고, 식당에서 제공하는 일회용 설탕도 늘 주머니에 챙겼다. 이 같은 절약 정신은 이케아의 철학이 됐다. 캄프라드는 1976년 직원교육용 책자에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도덕적 죄악이다. 제한된 자원으로 최상의 결과를 내는 것이 이케아 방식’이라는 문구를 명시했다. 이케아 직원들은 400km 이상 출장에만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고, 이면지도 꼭 활용해야 했다.
2018년 캄프라드가 세상을 떠났을 땐 ‘전 재산의 절반을 노를란드 발전기금으로 쓰라’는 유언장이 공개돼 모두를 놀라게 했다. 노를란드는 스웨덴 북부의 탄광/목재산업 중심지로, 젊은 층은 다 도시로 떠나고 노령인구가 대부분이다. 이케아는 다양한 사회공헌으로 유명하다. 아동노동 방지를 위해 2000년 이후 8,000만 유로를 유니세프와 세이브더칠드런에 기부했고, 매년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UN난민기구 등 각종 자선단체에 기부할 성금을 모은다. 고객이 친환경 조명이나 봉제인형을 구매할 때마다 1유로씩 기부금을 쌓는 방식이다.
기실 스웨덴에서 캄프라드는 그리 존경받는 인물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나치 모임에 참가한 전력, 탈세 등의 과거 때문이었다. 캄프라드는 1994년 이케아 전 직원에게 편지를 써 “당시 나의 행동은 내 인생 최대의 실수이며 가장 어리석은 짓이었다. 나는 1950년대 파시스트와 단절했다”고 고백하며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생전 캄프라드는 이케아 직원들에게 ‘세 가지를 아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로 ‘돈, 시간, 사람’이다. 그가 추구한 것은 절약이지만, 그 안에서 최고의 품질과 최상의 서비스를 강조했다. 캄프라드는 “100만 원짜리 좋은 책상은 어떤 디자이너라도 만들 수 있지만, 2만 원짜리 좋은 책상은 뛰어난 디자이너만이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절약과 근면을 최고 미덕으로 삼고 이케아 철학으로 만든 캄프라드의 삶을 보면 ‘과거에 대한 기억이 미래로 나아가는 출발선’이며, ‘역사는 기억해야 하고, 반성하여 다시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