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December Vol.190
전북 고창
12월호 그곳에 가다는 오경호 님의 추억담을 바탕으로 취재되었습니다.
화려한 볼거리가 없어도 금세 매료되는 풍경이 있다. 고즈넉한 산사의 울림과 드넓은 바다가 어우러져 멋을 풍기는 고창이 그런 곳이다. 온통 가을색이 내려앉은 11월, 고창으로 떠났다.
글. 한율 사진. 정우철
단풍과 낙엽으로 멋드러진 선운사 가는 길
가을풍경의 멋을 더하는 아치형 다리 극락교
약 23년 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2018년 전역해 현재는 경기도 광명에서 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니 군 시절에 보냈던 한적하고 평온했던 시골에서의 생활이 가끔씩 그리워집니다. 전라북도 고창도 저에게는 그런 곳인데요. 특히 구시포 해수욕장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2011년 육군대학을 마치고 상무대 교관으로 부임했습니다. 장성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구시포해수욕장은 상무대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멋진 곳이었습니다. 해변에서 축구, 수구, 달리기 등 교관 단결 활동을 했던 기억이 저에겐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했던 즐거운 기억도 떠오릅니다. 토요일 아침이면 텐트와 먹거리를 챙겨 구시포 해수욕장을 찾아 조개도 캐고 수영도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_오경호 님
기암괴석이 많고 풍광이 뛰어나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리는 선운산 기슭에는 아름다운 사찰 선운사가 있다.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 문화재를 품고 있는 곳이라 이곳은 사시사철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선운사의 멋으로는 봄에는 동백, 여름에는 꽃무릇으로 이름이 났지만, 주변의 계곡과 산비탈을 알록달록 수놓는 가을 단풍도 결코 빠지지 않는다.
일주문에서 시작해 선운사로 향하는 길은 단풍으로 곱디곱다. 자연 풍광을 방해하는 그 어떤 장애물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창군에서는 지난 2016년 선운사 일주문에서부터 도솔암에 이르는 6.15km 구간의 전봇대와 전깃줄을 모두 없애고 선로를 땅에 묻는 사업을 진행해 경관을 살렸다.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눈을 즐겁게 한다.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등 수많은 나무들이 마치 호위하듯 서 있는 아름다운 숲길은 선운사로 가까워질수록 더욱 깊어지고 더욱 짙어진다. 도솔천 옆으로 늘어선 단풍나무가 온통 선홍색으로 물들어 도솔천 위로 붉은 단풍터널을 만들기 때문이다. 단풍은 도솔천의 물 빛깔과 대비를 이룬다. 도솔천은 선운산 깊은 계곡에서 자라는 떡갈나무와 상수리나무 잎에서 나온 타닌 성분 때문에 물빛이 어둡고 푸른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도솔천 주변의 단풍은 더욱 선명해 보이고 물 위에 떨어진 단풍잎 또한 도드라져 보인다.
아치형 다리 ‘극락교’는 멋을 한층 더한다. 아치를 프레임 삼아 뒤로 펼쳐지는 풍경을 사진에 담으면 아름다움이 극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가을 단풍 촬영지의 명소로 꼽힌다. 이러한 장관을 앵글에 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진작가들은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다.
아름다운 단풍에 빠져 걷다 보면 어느새 선운사에 닿는다. 선운산 기슭에 푹 안겨 있는 선운사, 선운사 뒤로 마치 병풍을 두른 듯 펼쳐진 선운산 자락이 고즈넉하고 멋스럽다.
선운산 자락에 자리한 선운사 풍경은 고즈넉하다.
선운사의 단풍은 어두운 물빛 덕분에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가을색을 더 짙게 하는 풍경, 풍경 소리
선운산도립공원에서 차로 30여 분을 달리면 구시포해수욕장에 이른다. 가는 내내 한적한 농촌 풍경을 감상하며 달려야 해서 ‘과연 바다가 나올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서일까. 길 끝에서 마주한 바다는 더욱 반갑기만 하다. 드넓게 펼쳐진 갯벌 풍경에 잠시 말을 잊고 만다.
밀물 때의 서해는 장엄한 장관을 이룬다. 끝없이 펼쳐진 갯벌로 힘차게 들이 차는 바닷물의 형상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날씨가 맑았다면 푸른 하늘과 회색빛 갯벌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겠지만 흐린 날씨 탓에 하늘도, 바다도, 갯벌도 온통 잿빛이다. 하지만 그 모습 또한 멋스럽다.
구시포해수욕장은 아름다운 모래 해변이 십 리에 걸쳐 펼쳐지고 송림이 우거져 있어 여름에는 최적의 피서지로 꼽힌다. 사시사철 캠핑족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고운 금모래가 펼쳐진 백사장, 멀리 보이는 가막도 풍경, 해변 주변의 송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멋을 뽐내기 때문이다. 해변 앞 카페에서 차 한 잔과 함께 바라보는 바다 풍경도 낭만이 넘친다.
특히 이곳의 낙조는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드넓은 서해를 붉게 물들이는 장엄한 풍광은 오래도록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
십 리에 걸쳐 펼쳐지는 구시포해수욕장의 간조 풍경
서해를 물들이는 구시포해수욕장 붉은 노을
해변을 돌아보았다면 이번에는 구시포항으로 가보자. 고창의 남쪽 끝에 위치한 구시포항은 1800년 무렵부터 소금을 생산하던 포구로, 염전을 일구기 위해 설치한 수문 모양이 ‘소의 구시통(‘구유’의 방언)처럼 생겼다’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구시포항은 여느 항구와는 달리 육지에서 떨어진 가막도라는 섬에 자리하고 있다. 육지와 가막도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야 구시포항에 다다를수 있다. 항구가 바다 한가운데 자리한 셈이다. 때문에 다른 항구에 비해 조수간만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어선이 입출항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구시포항은 우리나라 최초로 와인글라스(wine-glass) 형태의 어항으로, 하늘에서 바라보면 와인잔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 포함된 곳이기도 하다. 바다로 뻗은 두 개의 긴 제방 끝에는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자리해 서로를 마주보는데, 그 모습 또한 더없이 아름답다.
튤립 모양을 한 하얀 등대는 촬영 명소로 꼽힌다.
가막도라는 섬에 자리한 구시포항은 긴 방파제로 이어져 있다.
구시포항에서 바라다보이는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수궁회관 굴밥정식
손님들이 벽에 빼곡하게 남겨놓은 낙서들 덕분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수궁회관. 이곳은 간장게장, 굴밥, 바지락비빔밥을 주 메뉴로 한다. 그 중에서도 굴밥이 특히 인기 있다. 수궁회관의 굴밥은 밥에 굴을 넣어 익힌 형태가 아니라 ‘밥 따로’, ‘굴 따로’ 굴밥이다. 굴밥을 주문하면 굴, 파, 새싹무를 넣어 살짝 익힌 뜨거운 뚝배기와 공기밥이 따로 나오는데, 뚝배기에 밥을 넣고 취향에 따라 간장이나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는다. 곁들여 나오는 싱싱한 야채 반찬을 넣어 함께 비벼 먹거나 생김에 싸서 먹어도 맛나다. 제철을 맞은 굴은 향이 깊고 식감이 탱글탱글해서 먹는 즐거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