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connect
위대한 전환
내 머릿속에 물음표는
언제든 느낌표로
바뀔 수 있다!
송준석 예비역 육군 소령
2024년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 수기 공모전 우수상
2024년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 수기 공모전 우수상
‘따아~따! 따따따!~’ 휴대폰에서 들리는 기상나팔 소리를 들으며 이부자리를 빵 차고 2024년 7월 1일 아침을 맞이한다. 22년 11개월 동안 들었던 기상나팔 소리는 전역 후에도 친근하게 느껴지고, 오늘도 제2의 직장인 연구소에 출근하는 나의 모습이 자신감에 꽉 차 있다. 집에서 20여 분 거리의 연구소에 출근해서 오늘 진행될 R&D 기획파트, 특수사업파트, 장치개발파트 내용을 확인하고 검토한다. 군 시절 항상 7시 30분까지 출근하는 버릇이 있어서 9시에 정상 업무가 시작되는 연구소에서는 항상 1시간 30여 분의 여유시간이 나에게는 조용히 차 한잔 마시며 업무를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업무 시작 10여 분 전부터 부산하게 연구원들이 달리기 골인 지점에 도착하듯 사무실을 들어온다.
“부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편히 쉬셨어요?”
다 같이 인사하며 눈도장을 찍는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전직 지원 기간 동안 연구소 현장 연수 인원으로 직급 없이 근무했던 나! 지금은 10여 명의 연구원과 함께 국방 R&D 사업 총괄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2023년 1월 31일부로 대한민국 육군 소령으로 전역해서 1년여 만에 초고속 승진을 했다. 아침부터 각 파트장으로부터 보고가 물밀듯 들어온다.
“부장님! 오늘 SG社에 활성탄 소재 납품하겠습니다.”,
“부장님! 지난주에 조달청에 접수한 ○○살균소독기 물품 등록 완료되었습니다.”,
“부장님! 어제까지 장치 화학 성능 테스트 결과 합격 기준치 통과하였습니다.”
등등 그간 함께 기획하고, 개발해 왔던 제품들이 하나같이 상품화되어 가고 있다는 좋은 소식들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대전 대덕특구에 위치한 화학공정 소재(흡착제, 촉매제)와 국방 전력지원체계 장치를 개발 및 생산하는 업체이다. 화학 관련 여러 업체 중의 하나로 기업연구소까지 갖추고 있다.
대학 전공과 군사 특기의 ‘?’가 ‘!’로
나는 고향인 대구에서 화학공학 전공으로 대학교를 다녔고,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ROTC 사관후보생과정을 수료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대학교 전공 탓으로 군 특기도 화생방병과를 지원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학교 전공과 화생방장교로서의 업무는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학생 시절 분석화학, 공업화학, 물리화학 전공 과목의 이론수업과 실험을 해왔다면, 군에서는 위관 시절 방독면과 보호의를 착용하고 제독기와 제독차를 운용하면서 가상의 오염지역에서 제독작전과 정찰작전을 직접 수행하였다.
영관장교가 되기 전까지는 ‘대학교 전공과 군 특기가 맞지 않는다’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지만, 그래도 외면상으로는 화학공학 전공에 화생방특기로 제대로 군에 맞게 왔다고 나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주어진 직책과 업무에 수적천석(水滴穿石)의 자세로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꼭 해보고 싶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해외파병을 나가서 UN군 화생방장교로 이탈리아군들과 화학작용제 및 제독제 분석 업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또한, 군사령부에 근무하면서 미군들과 연합 WMD(대량살상무기) 제거작전을 수행하면서 독성화학물질 생산, 저장, 관리, 무기화되는 과정을 제거하기 위한 기술분석과 작전부대 운용계획을 수립하였다. 그 성과로 정부 국무총리 표창과 다수의 장성급 및 기관 표창을 여러 차례 수상하였다. 앗! 대학교 시절 화학공학을 전공했어야지만 가능한 업무가 아닌가. 새삼 위관시절 머릿속에 떠올랐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2011년 3월 1일 영관장교로 진급하고 나서는 군 업무의 난이도가 하늘 높이 올라가고 그에 발맞춰 나의 업무처리능력 또한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피라미드 구조의 계급사회인 만큼 주변 동료들과의 경쟁심도 초고층 건물의 엘리베이터처럼 올라가기 시작했다. 쉴 틈 없이 달려온 거 같다. 2022년 6월, 전역이 1년도 남지 않은 어느 날 나는 집 앞산에 올라서 그동안 달려온 22년 군 생활을 눈 감고 회상하였다. 험준한 산줄기가 빽빽하게 있는 강원도 화천에서의 첫 군 생활을 시작으로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 해외 중동 레바논 등 안 가본 곳이 오히려 있는지 머릿속에서 대한민국 지도를 펼쳐 보는 듯 생각에 잠겼다. 그때 휴대폰 벨 소리에 눈을 뜨고 화면 창에 낯익은 번호를 보면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4년 전쯤 대전 소재 군수사령부에서 근무할 때 모셨던 과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반가웠고, 그간 안부 전화를 자주 드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휴대폰을 두 손 모아 받기까지 하였다.
과장님은 33년 성공적인 군 생활을 마치시고 현재 국가 연구기관에서 연구기획 업무를 총괄하고 계셨다. 과장님은 안부 인사는 짧게 끊으시고 바로 본론부터 말씀하셨다. 꼭 무슨 경주를 하시는 듯 급하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말씀인즉, 대전대덕특구 기업연구소에서 화학공학 전공에 군 화생방장비 관련 전문지식을 갖춘 장교 출신을 모집하고 있으니 한번 지원해 보라는 것이었다. 또한, 주변에 몇몇 인원들에게만 물어보는 것이고, 마땅한 인원이 없으면 그 기업연구소에서 제대군인지원센터에 의뢰할 것이라고 덧붙이셨다. 전직지원기간이라 현장연수인원으로 지원이 가능한 터였고, 또한, 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분석화학과 공업화학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어서 과장님 말씀이 귀에 솔깃하게 들려왔다. 나는 과장님께 좋은 취업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알려주신 서류를 챙겨 3일 뒤에 인원을 모집한다는 대덕특구 기업연구소를 찾아갔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바로 그 연구소이다.
1층 현관을 출입해서 연구소장님을 찾아뵙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이력서를 내밀었다. 연구소장님께서 어떤 질문을 하실지 내 머릿속에 물음표가 수없이 나타났다. 화학공학을 전공했지만, 졸업한 지가 22년이 지난 터라 지금 기사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였는데, 머리 깊숙이 꼭꼭 숨어있는 전공 지식을 끄집어내기 위해 두 손으로 머리를 잡아보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이력서를 다 보신 연구소장님께서 첫 말문을 여시면서 화학작용제 성분 및 위험성, 군 화생방장비 제원과 운용 방법, 제독제 성분과 성능 효과에 대해 설명을 해보라고 하셨다. 군 생활하면서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 자세로 화학작용제를 분석하고, 매일같이 다뤘던 제독 장비와 안전에 유의하며 취급했던 제독제는 내 신체의 일부인 양 꿰뚫고 있는 것들이었다. 내 머릿속에 느낌표가 나타났다. 한 시간 정도 아무런 문서 없이 입에서 줄줄 물줄기가 하염없이 흐르듯 쉼 없이 설명했다. 마무리할 때쯤 살짝 목이 마르기도 할 찰나에 연구소장님께서 자신의 허벅지를 탁 치시면서 “송 소령! 정말 잘 왔네. 자네가 우리 연구프로젝트에 꼭 참여해야 할 인원이네. 내일부터 꼭 출근하게. 우리 서로 잘해보세.”
나는 연구소장님께 여쭤보았다. 현장연수 인원으로 합격한 것인지를. 연구소장님께서는 현장 연수뿐만 아니라 전역일에 맞춰서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계속해서 근무할 것을 재차 언급하셨다. 이것이 연구소 면접시험이었고, 뉴스에서 여느 대기업의 면접시험 난이도가 높아서 합격률이 저조하다는 기사와는 다르게 나는 한 번에 합격하였다. 그간 군 생활 경험과 연구했던 것을 한 시간 동안 설명한 것이 오히려 짧게 느껴졌을 정도였다. 연구소장님의 배웅 인사를 뒤로하고 내일 정식 출근을 위해 집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내 머리를 시원하게 해주어 잠시 눈을 감았다. 내 머릿속에 또다시 느낌표가 떠올랐다. 22년 군 생활의 경력과 치열한 경쟁 세계에서 끊임없이 노력해 왔던 모든 일이 전역하면서 나의 제2의 직장에 취업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는 것이다.
R&D 사업 총괄부장으로 제2의 인생 시작
2022년 7월 1일부 연구소에 첫 출근을 시작했다. 군에서 타 부대로 전출 가면 꼭 하는 것처럼 업무 파악을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숨 쉬는 소리와 여러 연구 문건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소리 빼고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2개월 동안 탐독하고 난 뒤, 연구개발계획서(PPT) 3건을 한 달 만에 작성해서 연구소장님과 여러 선임연구원, 그리고 우리 회사의 수장이신 대표님을 모신 자리에서 4시간에 걸쳐 브리핑했다. 영관장교 시절 사단장님께 지휘관 업무보고 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브리핑이 끝나고, 수 초간 정적이 흘렀다. ‘보고 내용이 부실해서 모두 할 말을 잃은 건가? 아니면 연구소의 R&D 컨셉과 맞지 않은 건가? 회사 출근하고 결국 3개월 만에 그만둬야 하는 건가?’ 숨소리만 들리는 그 수 초의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엔 수많은 물음표가 생기면서 머리를 띵하게 만들었다. 그때 그 적막을 깨는 대표님의 한 말씀이 들렸다.
“송 소령! 연구소장에게 간단히 송 소령에 대해서 들었지만, 오늘 연구개발계획서를 듣고 나니 확신이 드네요. 그리고 그동안 내가 꿈꿔오고 추진해 보고 싶었던 프로젝트가 개발계획서에 다 포함되어 있어서 듣고 있는 내가 떨리고 손에 땀이 날 정도네요. 대표인 저는 연구개발계획서대로 진행할 것을 승인하고,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다들 동의하시죠?” 대표님의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연구소장님을 포함하여 참석한 모든 분이 박수로 긍정의 신호를 보내주었다. 내 머릿속에 또다시 큰 느낌표가 나타났다. 군 경험에 연구소의 핵심기술을 접목시켜 보고한 연구개발계획서가 연구소의 R&D 컨셉은 물론 대표님의 연구개발 목표와 딱 맞아들어간 것이다. 너무나도 기뻐 심장 박동이 급격히 빨라졌다.
다음 날부터 쉴 틈 없이 국방 R&D 사업에 매진했다. 회사 입사 후 2년이 지난 지금 국방과학연구소와 공동 R&D 응용연구과제인 피부보호제 개발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다음 단계인 2025년 시험개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군 보호장비인 방독면 정화통과 전차 및 함정 여과장치에 국내 최초로 개발한 활성탄을 충진하여 성능시험에 통과하였고, 해외수출용 민수방독면 정화통에도 국산화 개발한 활성탄을 충진하여 실작용제 시험에 통과하여 2024년 후반기부터 방산업체에 납품하게 된다. 또한, 화학공장과 반도체 공정라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독가스를 제거하기 위한 이동식 유독가스 정화 장치를 6개월의 개발 과정을 거쳐 국산화 개발한 흡착제를 충진하여 성능인증을 받았고, 국내 삼성반도체 공정과 해외 반도체 공정에 2023년 11월부터 납품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현장 연수 기간일 때 기획했던 군용 개인 전투장비물자 살균소독장비를 1년 8개월 동안 군의 요구성능을 충족하기 위해 세밀히 분석하고 수차례 설계변경과 성능시험을 통해 2024년 6월 말 부로 개발에 성공했다. 내달이면 조달청에 우수조달제품 등록 수순을 밟게 되고, 육군본부 소요 심의 확정 시 2025년부터 시범 운용을 시작으로 납품이 진행될 것이다.
물음표에서 출발해 느낌표로 마침
제2의 직장에서 나는 이제 성공이라는 수천 고지 되는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나처럼 20년 넘는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고자 준비해 온 제대군인들이 많을 것이다. 그 시작에서는 군과 다른 사회라는 공간에 대한 두려움과 ‘나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의 장벽에 직면할 것이다. 나 역시 육군 소령으로 전역할 때쯤 나이는 만 45세였다. 한참 일을 할 시기이기도 하고, 고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아버지이기에 쉰다는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직장을 찾을 수 있을까, 며칠 동안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럴 때 내가 극복한 방법은 지금까지 걸어온 내 길을 되짚어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그동안 지내온 시간을 헛되게 보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 물음표와 느낌표는 모두 나 자신이 해 놓은 일들의 성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창 시절, 장기간 군 생활, 이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제2의 직장과 연결될 것이다.
새롭게 하는 것이 좋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전혀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중도 포기하고 또 다른 것을 찾기도 한다. 나 자신이 걸어 온 길, 장기간 군경력은 과거 학창 시절과 미래 제2의 직장을 연결해 주는 오작교이다. 분명히 군경력이 제2의 직장을 찾는 데 도움될 것이다. 젊은 20대 해맑은 청년의 나이로 군에 입대하여 40대 중년의 나이가 되기까지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걸어온 군인으로서의 길은 그 어느 것보다 값진 것이다.
여기서부터 제2의 직장을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또한, 국가보훈부 제대군인지원센터의 여러 정보와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나 또한 그랬듯이 자격증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기사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까마득히 잊은 대학 전공과목을 다시 공부하였고, 여러 취업 일자리 소식을 참고하면서 나의 대학전공과 군 특기에 맞는 직장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 ‘그 노력의 기다림이 언제 종결될까?’하는 물음표에서 지금의 느낌표 같은 나의 직장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으로 나는 나 자신이 걸어온 길을 결코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지금 걷고 있는 나의 길에 항상 이정표처럼 수없이 되묻고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제2의 직장에서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 두려움, 걱정의 물음표는 결국 내가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느낌표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긍정의 생각과 자세로 또다시 내일을 시작해 본다.
※ 본 수기는 개인의 경험으로 정부의 정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