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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JOB 굿 LIFE
마음은 여유롭게, 머리는 치밀하게
2022년 제대군인 리스타트 챌린지
수기 공모전 장려상(요약본)
글 정용문 예비역 육군 대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사투
2020년 2월 19일 ○○군 ○○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 발생합니다. 병원과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군 보건소 직원들은 간접접촉자로 분류되어 2주간 건물 내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격리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전쟁이 시작되었고 정신없이 일상을 보냈습니다.
2020년 1월. ○○군 보건소로 발령받았고, 업무는 구급차 담당이었습니다.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되고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코로나19 상황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1년 간 보병장교로 근무하며 다양한 훈련을 경험하였지만, 이런 두려움은 처음이었습니다. 119구급대가 본격적으로 지원 되기 전까지 방역복을 입고 부산, 포항, 김천, 광주, 충북 등 전국의 병원으로 확진자를 이송하였습니다.
정신없이 보낸 2월, 가족과 지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왔고, 항상 받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전역한 것이 후회되지 않니? ” 나의 답변은 “두렵고 무섭지만, 보람도 있고 즐거워~”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전역을 결심하다
2010년 여름, 상무대에서 고군반교육을 받고 있던 나는 해운대 미용실에서 일하는 초등학교 첫사랑을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그 만남을 시작으로 2013년 결혼을 하고, 경기도 양주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군인을 천직으로 알고 있던 나는, 1차 소령 진급에 떨어지고 2차 소령 진급에 들어갈 때쯤 며칠을 잠도 제대로 못자고, 한숨 쉬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조금만 참아보자’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설득도 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내린 전역에 대한 결심은 진급에 대한 스트레스와 잦은 이사가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전역과 동시에 우리는 텐트와 옷가지를 챙겨서 계획 없이 1주일간 전국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것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내는 인내심을 가지고 묵묵히 기다려 주었습니다. 1인 미용실을 운영하며 집안 살림, 가족 대소사를 챙겼습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힘들었을 것입니다. 고생한 아내에게 항상 감사합니다.
아내의 든든한 후원과 응원
아내의 든든한 지원 속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 고민하기 시작했고, 인사 · 군수 분야를 경험했기 때문에 행정 업무에 자신 있었으나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처음 1개월은 보험, 영업직, 반려동물 관리사 등을 알아보았습니다. 취업박람회나 보훈처에서 주관하는 직업교육도 참여하며 여러 기업에 문의해 보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결국, 장교로 근무한 경험을 보장받고, 내가 원하는 활동적 업무를 찾다가 예비군 지휘관이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응시 자격은 전역 후 3년간 주어집니다. 대위로 전역한 나는 가산점이 높은 소령 전역자와 경쟁하기 위해 필기시험 점수를 높여야 했습니다. 고시원에까지 들어갔지만 몇 번의 시험에서 모두 떨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버티게 하는 것은 아내의 응원이었지만 자신감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2018년 연말에 다른 직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다
2019년 3월, 다른 직업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보훈처에 문의하였고, 특별전형으로 운전직 공무원을 선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4월 마지막으로 예비군 지휘관 시험에 응시하였고, 결과에 상관없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2년간 준비한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관심 가지고 있던 한국사가 시험 과목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꾸준한 체력 단련 효과도 있었지만, 예비군 지휘관을 준비하며 독서실과 고시원에서 생긴 근성 때문인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집중하였습니다. 집중이 안 되는 시간은 대형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운전면허 학원에 다니며 진정시키기도 했습니다.
몇 개월간 준비하여 6월 중순 시험에 응시하였고, 필기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당시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면접준비를 위해 보훈처에서 주관하는 면접 강의를 들으며 사전 질문을 50개 준비하여 반복적으로 연습하였습니다. 방심하는 순간 미끄러진다고 했던가요, 면접 점수 미달로 재시험 통보를 받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이전 면접보다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발표하였고, 결과는 합격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로운 도전은 힘든 일이지만, 목표를 세우고 차근차근 열정적으로 준비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은 여유롭게 머리는 치밀하게
취업 준비를 하면서 힘들고 막막할 때도 있었습니다. 힘든 순간이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은 여유롭게, 머리는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기관에서 도움을 받았는데 그중 보훈처에서 제공하는 예산과 프로그램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기관에서 제공하는 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신선한 정보, 효율적인 판단, 다양한 인맥을 형성하며 도움을 받았고, 예산을 지원 받으며 시험 준비 비용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선배들의 조언을 경청했습니다. 대형차량 운전 경험 부족, 다른 직렬에 비해 진급률이 낮다는 등 부정적 소문들에 선배공무원의 긍정적인 이야기에 갈등이 해소되고 집중력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운전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코로나19가 완치된 환자를 모셔오기 위해 보호자와 함께 충청북도에 다녀왔습니다. 3시간을 이동하며 가족 이야기, 코로나19 발생 이후 힘들었던 부분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송이 끝나고 고생한 보건소 직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소소한 이벤트로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죠.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과 자부심이 있으면 어떠한 직업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취업 준비를 하는 전우들이 가까운 미래에 열정적으로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힘을 내었으면 합니다.
※ 본 수기는 개인의 경험으로 정부의 정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본 수기는 지면 관계상 내용이 다소 요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