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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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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의장 예비역 육군 대위

2025년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 수기 공모전 우수상

위대한 전환

안녕하십니까. 저는 2022년에 전역하여 현재 3년 차 사회인이 된 예비역 대위 정의장이라고 합니다. 우연한 계기로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수기 공모전 공지를 확인하고, 제 이야기가 전역을 준비하는 국군 장병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글을 작성하게 됐습니다.

저는 2016년도에 학군사관 54기 포병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전공은 회계학이었으나 장기복무를 희망하여 전투병과로 지원하여 파주와 인제에서 각각 군 생활을 했습니다. 워낙 군 생활에 대한 염원이 강하다 보니 임관 전 희망하는 근무지역으로 최전방 접경지역을 신청했을 정도로 꼭 장기복무에 선발되겠다는 목표에 맞춰서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각종 여단 및 사단 주특기경연대회와 GP 및 GOP 파견도 마다하지 않고 준비한 결과, 선봉포대 선발과 사격지휘 수상 등의 이력과 더불어 주변분들 도움이 어우러져 감사하게도 1차에 장기복무 선발이 되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평생직장이 생겼구나, 드디어 내가 공무원이 됐다는 생각에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장기복무 선발이 됐던 날 아버지, 어머니께서 ‘보태준 것도 없는데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맙다’며 흘리셨던 눈물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평생직장을 가지게 됐으니 이제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던 게 엊그제 같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건강상의 문제로 전역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게 되었습니다. 정말 갑작스러웠습니다. 서른의 나이, 군에서 한창 자격증을 따놨어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전역이었습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6년의 공든 탑들이 전부 물거품이 될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1차에 선발됐던 장기복무, 연합사에서 근무하고자 포부를 품고 매일 새벽마다 영어공부하며 취득했던 어학예비자격, 6개월 동안 하루에 3시간 자며 받아낸 OAC 교육평정 上등급, 20대의 절반을 바쳐 쌓아온 군 스펙의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었고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 인생의 전부라고 여겼던 공든 탑이 아무 의미 없는 신기루가 됐다는 생각에 눈물이 저도 모르게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하늘이 무너지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전역하고 난 뒤, 사회에 발을 내디딘 저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말 그대로 ‘무스펙’ 그 자체였습니다. 전공은 회계학인데, 직업군인을 생각하고 임관한 터라 준비한 전공자격증도 없고, 대학교 학부시절 3, 4학년 때는 방학마다 군사훈련을 받느라 인턴십 또한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나이도 서른에 전역하게 되어 신입사원 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무경력에 나이 많은 신입사원으로서의 취업은 쉽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려운 일은 항상 연이어 일어나듯이, 전역한 뒤 본가에 돌아오니 심각한 재정 상태로 가정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부모님 명의로 사채가 5천 만 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집을 지으려고 무리하며 받은 사채가 한 달에 이자만 160만 원이 지출되어 원금 한번 건드리지 못하고 3~4년을 고통받고 계신 것을 그제야 알게된 것입니다. 부모님은 심각한 빚에 대한 스트레스로 아버지는 알콜 중독, 어머니는 알콜 의존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소주를 그 자리에서 안주 없이 3~4병을 물 마시듯 마신 뒤 기절하듯이 다음 날로 도망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부모님도 나이는 들어가고, 약 봉투는 점점 늘어 가는데, 현실적으로 도저히 이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장에 가정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제가 받은 퇴직금과 공제회납입금 전 재산 5천만 원을 전부 갚아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큰 마음을 먹고 사채를 갚아드린 뒤 눈물을 훔치시며 고맙다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여러모로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왜냐면 가정은 살릴 수 있었지만, 이후 말 그대로 무일푼에 무자격증, 무스펙으로 사회에서 시작해야 할 상황에 놓인 상태였습니다. 정말 막막했습니다.

돈만 있다면 자격증 준비를 하든, 학원에 다니든 뭐든 준비할 수 있을 텐데 나는 왜 아무것도 준비할 수 없을까, 다른 부모님들은 못 해줘서 안달인데 나는 내가 돈을 드리고있으니 이런 상황이 왜 나한테 닥쳤을까, 그저 창문 없는 고시원조차 월세로 살 수 없는 그런 상태가 됐을까, 막막한 벽 앞에 놓인 것 같은 하루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다행히도 빚을 갚아드림과 동시에 가정에 드리웠던 알콜 중독이 눈 씻은 듯이 해결됐고, 다시 술에 의존하시지 못하도록 알콜치료 상담을 통해 가정을 첫걸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선 아들도 무일푼, 무스펙으로 사회에서 첫 걸음을 시작하니 아들을 봐서라도 함께 다시 일어서 보자고 마음을 함께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무일푼, 무스펙이라도 저는 국가를 위해 20대의 절반을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책임을 다했던 간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책임감. 그 책임감으로 가정을 빚의 수렁에서 건져내고 제 인생을 다시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단지 그때의 제가 국가를 위해 책임을 다했다면, 지금은 사회에서 주어진 역량으로 나의 삶을 위해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책임을 다해 살면 된다는 목표의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가장 먼저 알아봤던 것이 소자본 창업, 홈케어 시장에서의 창업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초기자본이 적게 드는 청소, 방충망 시공, 하수구 작업 등의 사업을 말합니다. 바로 돈이 되지만 쉽사리 하기에는 꺼려지는 시장입니다. 왜냐면 몸이 고되고, 블랙칼라라는 사회적인 시선이 곱지 못하기 때문에 젊은 연령대의 취업자가 적은 시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시작하기 전 주변의 많은 걱정이 있었습니다. “지금같이 젊을 때 그런 먼지 마시는 직업을 해야겠느냐, 그 직업을 하려면 성격이 얼마나 싹싹해야 하는데 너 같이 내성적인 사람이 할 수 있을 것 같냐.” 등 근심 어린 말들을 들으며 시작하기도 전인데 처음엔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나름 군에서 지휘관을 했고, 프라이드가 강한 직책을 맡아왔는데, 남들이 기피하는 직업을 선택한다는게 처음엔 굉장히 부끄럽고 긴장됐습니다. “군대에서 만났던 사람을 고객으로 만나면 어떡하지?”, “군에서 지휘관으로 있던 자부심이 있는데, 이런 먼지 마시는 직업을 선택하는 게 맞을까?” 등 안 해도 되는 걱정까지 생각이 들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엔 군대에서도 주어진 역할이 어떤 것이든 책임을 다했듯, 사회에서도 똑같이 임무가 주어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내 상황과 여건만 달라졌을 뿐, 내 삶의 발전을 위해 임무수행을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방충망 시공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제겐 군 생활을 통해 습득된 인내심이 있고, 체력과 지휘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임무를 달성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계획을 세워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지휘관의 니즈를 파악하고 장병들의 필요에 민감하려 노력했듯이, 고객에게 어떡하면 더 친절하게 응대할 수 있을까, 어떡하면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을까, 어떡하면 다른 업체들보다 더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을까 등 임무를 분석하고 결정적으로 어떻게 임무를 달성할 수 있을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준비했습니다.

그를 통해 방충망 시공을 하며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창업 첫 달에 매출 약 1,000만 원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몸은 정말 고됐지만 관측장교로 임무 수행할 당시 쉬지 않고 산을 타던 때에 비하면 방충망 시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나를 전문가로 찾아주는 고객에게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저를 무엇보다도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인지 또한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용인지역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뒤 화성시 동탄까지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동탄 2호점을 론칭함과 동시에 방충망 창업교육 사업까지 같이 시작하게 됐습니다. 저와 같이 상황이 난처하고, 돈은 없으나 당장의 일거리를 찾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 시작한 방충망 시공 창업교육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희망에 대한 정의를 하는데, 저는 그 장면을 굉장히 좋아해서 창업교육이름을 ‘희망교육사업’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지금은 사업이 잘돼서 블라인드 창업교육까지 확장한 상태입니다.

제게는 군에서 배웠던 L&T, 교수법, 육성 및 실병 지휘 역량이 있었습니다.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저만의 역량, 그 역량은 20대의 절반을 봉사한 군에서만 길러낼 수 있었던, 익혀낼 수 있었던 실력입니다. 그리고 그 실력을 바탕으로 시작한 창업교육은 지금까지 140명 가까이 배출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창업 후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현재 1억 8천만 원의 매출과 1억 3천만 원의 순이익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군대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노력에 비하면 사회에서의 노력은 정말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한 느낌이었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구분 없이 하루하루 전쟁을 대비하며 준비하던 군인에게 사회는 그저 전쟁에서 이긴 전쟁터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저에겐 군 시절이 20대 청춘의 절반 이상을 몸담았던 추억임과 동시에 새로운 삶의 도전과 발전의 뿌리이자 근간입니다. 그래서 지치고 힘들 때면 가끔 유튜브를 통해 힘들게 훈련을 받는 군인들의 영상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곤 합니다.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은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꽃을 피워낼 수 있게 만들어줬습니다.

만약 사회를 맞이할 미래를 준비하고 계신 장병분들이 계신다면, 현재 상황이 어떠하든지 군에서 자연히 길러진 책임의식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발전해 나가실 수 있도록 제 상황이 하나의 위로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응원합니다.

※본 수기는 개인의 경험으로 정부의 정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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