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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를 읽어 주는 이야기꾼

전기수 & 변사와 성우

종이 위 글자로 존재하던 이야기를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실감나게 이야기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했고 지금까지도 존재한다. 전기수에서 변사를 지나 성우에 이르기까지 콘텐츠를 읽어주는 사람, 그들은 여전히 강력한 가치를 지녔다.

사진 출처 : JTBC 토일 드라마 <옥씨부인전> 한 장면

연극을 하듯 생생한 소설의 낭독자,
전기수

JTBC 토일 드라마 <옥씨부인전>을 보다보면 송서인(추영우 분)이라는 인물이 전기수 천승휘로 활약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전기수(傳奇叟·기이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노인)는 조선후기 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고전소설을 낭독해 주는 일을 했다. 단순한 낭독의 개념을 넘어 문장에 가락을 붙여 마치 1인극을 하듯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과 말투를 실감나게 흉내를 냈는데, 다음 편의 이야기를 손꼽아 기다릴 만큼 인기 만점이었다.
<옥씨부인전>에 등장하는 천승휘 역시 팬을 몰고 다닐 만큼 인기 있는 전기수로, 그의 이야기는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눈물을 쏙 뺄 만큼 흥미진진해서 옥씨 부인으로 등장하는 구덕이 옥태영(임지연 분)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한 표현이 아주 적절한 입담꾼이다.실제로 조선 후기 민간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의 문집 ≪추재집(秋齋集)≫에는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소설을 읽어주며 돈을 버는 사람의 기록이 나온다.
“전기수는 동대문 밖에 살았다. 언과패설(諺課稗說·민담)인 숙향전, 소대성전, 심청전, 설인귀전 등과 같은 전기(傳記)를 구송(口誦)하는데 고저장단이 있어 얼핏 들으면 창(唱) 같기도 하다. 매달 초하루는 제일교 아래, 초이틀은 제이교 아래, 초사흘은 이현에, 초나홀은 교동 입구에, 초닷새는 대사동 입구에, 초엿새는 종각 앞에 앉는다. 이렇게 올라갔다가 초이레부터는 도로 내려온다. 이처럼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다시 아래로 옮겨 한 달을 마친다. 다음 달에도 또 그렇게 한다.
책을 잘 읽기 때문에 구경하는 이들이 겹겹이 둘러싼다. 그는 읽다가 가장 간절하여 매우 들을 만한 대목에 이르면 문득 조용히 소리를 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하회(下回)를 듣고자 다투어 돈을 던진다.
이것을 일컬어 요전법(邀錢法)이라 한다. 간혹 어떤 아녀자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리니 영웅의 승패를 칼로도 나누기 어려워라. 재미있는 대목에선 말문을 딱 멈추면 듣고 싶은 게 인정이니 그 방법 묘하기도 하더라.”
그런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의 역사는 이보다 오래됐다. 신라 원성왕 때 도적들에게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들려주어서 모두 자신의 제자로 삼은 승려 영재의 일화도 그런 흔적 중 하나이다.

사진: 배우보다 몸값 높았던 당시 인기 변사들
출처: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사진: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의 장면

무성 영화의 시대를 주름잡은 스타,
변사

구한말을 지나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전기수의 지위가 위태로워졌다. 책이 대량으로 인쇄되고, 문맹률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수의 후예가 탄생했다. 바로 극장에서 영화 대사를 들려주는 변사의 등장이다. 낯선 외국 영화에 코믹한 대사를 덧입히며 들려준 변사들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극장에서 신작 영화를 홍보할 때 영화 자체보다는 어떤 변사가 해설을 해 주는지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성영화 시대의 흥행 성적은 오로지 변사의 입담에 좌우됐다고 할 정도로 변사는 스타 중의 스타였다. 당시 일류 배우가 40~50원을 받고 고급 관리들의 월급이 30~40원이었는데 변사는 70~80원의 월급을 받았다고 하니 대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된다. 참고로 쌀값이 가마당 15원, 설렁탕 한 그릇이 15전, 양복 한 벌에 영국제가 45~55원이었다. 변사가 전성기를 구가한 무성영화 시기 단성사의 주임변사 서상호, 조선극장의 김조성, 우미관의 이병조가 3대 변사로 꼽혔고, 우정식·서상필·김덕경·성동호 등도 이름을 날렸다.
이렇게 하늘 높이 치솟던 변사의 인기는 1930년대 중반, 배우가 직접 대사를 들려주는 유성영화가 등장하면서 시들해졌다. 변사가 몰락한 이후에도 전기수의 후예는 1960년대까지 근근이 활동을 이어갔다. 지방의 장터를 다니면서 책을 팔던 장사꾼들이 바로 그들인데 책의 내용을 외워서 사람들에게 들려줬던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한때 외면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라디오드라마부터 오디오북까지,
성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주목받으며 등장한 새로운 직업, 성우이다. 외화 더빙부터 만화 영화, 라디오드라마, 광고 스팟, 다큐멘터리, 홈쇼핑 내레이션, 내비게이션 녹음, 게임, 팟캐스트, 오디오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우리나라 성우의 역사는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최초 라디오가 시험 방송을 시작하면서 조선극우회 소속 복혜숙 씨가 처음으로 시험멘트 방송을 했고, 이후 성우협회 초대 고문으로 ‘성우의 어머니’라 불리기도 했다. 1927년 경성방송이 본 방송을 시작하면서 최초의 라디오드라마가 전파를 탔고, 1946년 본격 연속방송극 <똘똘이의 모험>이 방송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54년 KBS 성우 1기 모집과 함께 성우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라디오드라마 <인생역마차>(1954)를 시작으로 최초의 라디오 멜로 연속극 <청실홍실>(1956)과 라디오 홈 드라마 <로맨스 빠빠>(1958)를 거치며 자리를 잡는다. 이어 1960~70년대 라디오 전성기를 맞아 미스터리극,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 수많은 작품이 등장했고, 1965년부터 1983년까지 방송된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메가 히트작도 나왔다. 나문희, 김영옥 등 실력파 성우들이 인기를 타고 TV로 옮겨가면서 얼굴 없는 성우들이 인기 탤런트로 잇달아 변신했다. 또 <육백만불의 사나이>의 양지운, <형사 가제트>의 배한성, <달려라 하니>의 주희, <겨울 왕국> 엘사와 안나인 소연과 박지윤, <명탐정 코난>의 강수진 등 목소리만으로도 영화와 만화의 한 장면으로 옮겨 놓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더빙이 자막으로 바뀌는 시기가 찾아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상파 방송사들의 더빙 영화 제작이 거의 전무해졌고 영화 자막을 택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성우들의 입지가 좁아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콘텐츠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유튜브, 오디오북, 게임 등으로 성우들의 활약이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 오디오북은 말 그대로 듣는 책이어서 성우는 특화되어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목소리에 의존해 책의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데, 정확한 발음과 듣기 좋은 발성은 필수 사항이고 문장을 이해하며 글의 표면적인 뜻과 이면의 의미까지도 전달할 수 있어야 하기에 목소리로 연기하는 성우들에게 아직은 기회가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다.

성우, 어떻게 되나요?

성우가 되려면 재능과 열정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준비와 교육이 필요하다. 성우는 매년 또는 격년으로 KBS, 투니버스, 대원방송, 대교어린이TV 등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국에서 실시하는 공개모집(공채)에 합격해야 전문 성우로 진출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연령, 학력, 국적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단, 남자는 군필 또는 면제자여야 한다.
시험은 방송사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1차는 지원서(음성 파일 포함) 제출 후 2차 실기 시험과 면접이 진행된다. 주어진 대본의 실제 연기와 내레이션을 즉석에서 해야 한다. 최근에는 만화 더빙으로 시험을 본다. 역대 공채 시험 문제들을 보면서 직접 녹음하고 시도해 보며 어떤 캐릭터든 빠르게 이해하고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준비를 해 뒀다면 유리할 것이다.
그렇기에 성우 지망생 중에는 성우 교육을 받기 위해 방송연예과, 연극영화과 등 방송 또는 연기관련 학과에 진학하거나 성우학원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인 연기 기술, 발성법, 호흡법 등 성우지망생에게 필요한 기초를 쌓을 수 있으며 전문가인 교수에게 고급 연기 기술을 밀도 있게 배우고 네트워킹을 쌓는 데도 큰 장점이 있다. 성우 학원의 경우 성우에 관심 있거나 성우 공채 준비가 목적인 사람들이 주로 다니기 때문에 성우 연기 기술을 집중적으로 훈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우 관련 정보와 공채 정보를 빠르고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성우 임금 수준 및
직업 만족도

<자료: 워크넷, 성우(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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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복 세컨드브레인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