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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
막힘을 뚫다,
인생의 길을 열다
군의 분석력으로 길을 찾고,
책임감으로 삶을 바꾼 기술 창업가
김우종 예비역 육군 대위
군 시절 그는 언제나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법을 내놓는 장교였다. 그 습관은 전역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2억 원의 빚, 무너진 계획, 막막한 현실. 그러나 그는 좌절 대신 분석을 택했다. 2013년 육군 대위로 전역한 후 단돈 200만 원으로 시작한 하수구 막힘 해결업체 ‘봉사자컴퍼니’. 지금 그는 연매출 3억 원을 올리는 기술창업가이자 유튜브 ‘하수구중대장’의 운영자로, 군에서 배운 분석력과 책임감을 삶의 무기로 바꾼 한 사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글 박선경 사진 박진형

김우종 예비역 육군 대위
K I M W O O J O N G

책임감으로 버틴 시간, 그리고 첫 도전
김우종 예비역 대위의 전역은 준비된 퇴장이 아니었다. 결혼 2년 차, 첫째 아이 출산 직후 유학을 꿈꿨던 계획은 무너졌고, 투자 실패로 2억 원의 빚이 남았다. 군복을 벗자마자 찾아온건 자유가 아니라 생계였다. 그는 개인회생 절차를 밟으며 “다시 훈련하듯 시작하자”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의 첫 일터는 건설현장이었다. 월급 120만 원, 안전모를 쓴채 하루 12시간을 일했다. 포크레인을 배우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다. 점심시간엔 포크레인 기사 곁에서 조작법을 익혔고, 퇴근 후엔 현장 서류를 정리하며 경리 업무까지 익혔다. 그의 진심은 현장을 움직였다. 6개월 만에 현장 대리로 승진했고, 관리·공무·장비운용까지 직접 맡는 다역 인력이 되었다.
그 시절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또 다른 군 생활이었다. 지시가 없으면 스스로 임무를 만들었고, 평가가 없어도 매일 결과를 기록했다. 그는 “군대는 근육보다 습관을 만든다”는 사실을 몸으로 증명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유도를 했던 그는 인내심과 근성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운동 대신 공부에 집중하며 모의고사 점수를 200점에서 320점으로 끌어올렸고, 결국 원광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군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학사장교로 임관했다. 그때의 ‘잡초 근성’이 훗날 낯선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막힘을 뚫는 기술, 삶을 바꾸는 길
포크레인 임대회사로 자리를 옮긴 그는 기사로 정식 취업했다. 그러나 안정된 수입 뒤에는 ‘이 길이 내 평생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따라왔다. 그는 새로운 시장을 탐색했고, 건설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하수관 보수 작업에 주목했다.
남들이 꺼리는 영역이지만,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일이었다.
“하수구 막힘을 해결하는 기술이라면, 분명 성장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200만 원으로 장비를 마련해 2014년 ‘하수구 막힘 해결업’을 시작했다. 개그맨 김준호가 “개그맨은 봉사하는 사람” 이라고 말한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고 그는 이야기했다. 그는 “서비스업도 결국 봉사”라 생각하며 회사 이름을 ‘봉사자컴퍼니’로 정했다. 실제로 군 시절 부대원들의 머리를 깎아주거나 지역에 이발 봉사를 자주 나가던 경험도 이 이름에 영향을 주었다. 첫해에는 가정집 변기, 싱크대, 배수관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밤늦은 호출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하루 열 곳이 넘는 현장을 돌며 직접 고객을 만났다. 언제나 현장을 점검표로 기록했고, 문제의 원인을 분석했다. 무엇보다 창업 이후 성장의 배경에는 ‘모든 것을 직접 하는 자세’가 있었다. 장비 점검부터 고객 응대, 시공까지 전 과정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했다. 책임감이 신뢰로 이어졌고, 비용 절감 효과는 고객의 만족으로 돌아왔다. 입소문은 또 다른 고객으로 이어졌다.
이후 내시경 카메라와 고압세척기를 도입하면서 사업은 전환점을 맞았다. 하수관을 굴착하지 않고도 진단과 보수가 가능한 ‘비굴착 보수 기술’이 전국적으로 주목받았다. 누구보다 앞선 기술을 도입한 그는 공사비 절감과 빠른 복구로 신뢰를 얻었다. 창업 5년 차에 연매출 2억 원을 달성했고, 채널A·연합뉴스 TV·TJB 방송에 청년창업 성공사례로 소개되었다.
현재는 1명의 직원과 함께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간 함께했던 직원들 중에는 기술을 배워 독립해 창업한 이들도 많다. 그는 직원들에게 언제나 블로그와 SNS를 활용한 자기 홍보를 강조했다. “지식은 나누고, 기술은 기록해야 오래갑니다.”

군에서 배운 시스템, 사업의 무기가 되다
그가 말하는 ‘성공의 공식’은 단순하다. 군에서 배운 계획·실행·피드백의 3단계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고객문의가 들어오면 원인 진단, 현장 분석, 시공 절차를 기록으로 남기고 작업 후에는 점검표와 사진 보고서를 고객에게 전달한다.
“군의 보고 체계를 사업에 이식한 셈이죠. 그 덕분에 관공서나 기업 의뢰도 신뢰로 이어졌습니다.”
봉사자컴퍼니의 일과표는 작전명령서처럼 짜여 있다. 하루 업무는 시간대별로 구분되고, 장비 점검은 의무화되어 있다.
새 직원 교육은 훈련처럼 진행된다. 그는 군 시절의 구호를 사업 현장에서도 그대로 실천한다. 이런 체계는 위기 상황에서도 빛을 발했다. 폭우로 배수관이 역류하던 어느 날, 그는 긴급 출동팀을 꾸려 도심 한복판 침수 피해를 막았다. 그 경험은 ‘기술보다 대응이 먼저’라는 교훈으로 남았다. 대기업과 관급 공사에도 참여하며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군대에서 전술을 배웠다면, 지금은 물길의 전략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의 마케팅 철학 또한 군의 전략적 사고에서 출발했다. 그는 블로그 상위 1% 파워블로거에서 출발해 현재는 유튜브 채널 ‘하수구중대장’(구독자 2만 명)을 운영한다. 현장을 숨기지 않고 공개하는 방식이다.
“정직한 기록이 가장 강력한 홍보라는 걸 알게 됐어요. 하수구를 보여주는 유튜브가 생소했지만, 지금은 제 또 다른 교실이 됐죠.”
함께 나누는 기술, 그리고 후배들에게
창업 11년 차, 그는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이제 목표는 혼자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기술 생태계’다. 그는 하수구 기술인들을 모아 협동조합 설립을 추진 중이다.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과 숙련된 전문가를 연결해 일거리와 기술을 함께 나누는 상생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최근 그는 지하 우수관에 쌓이는 석회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준설 차량을 제작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장비는 같아도 경험의 깊이는 다릅니다. 다른 업체가 못 하는 막힘을 우리가 해결할 때, 10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낍니다.”
그에게는 이미 여러 명의 제자가 있다. 기술을 전수받아 스스로 창업한 후배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그들과 협력하며 그는 또 다른 사명감을 느낀다.
“제가 배운 걸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에요. 군에서 배운 리더십이 결국 이렇게 사람을 연결하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힘든 시절을 돌아보며 그는 말한다. “그 시기가 제 인생을 성숙하게 만들었습니다. 술술 풀렸다면 몰랐을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어요.” 지금 그는 가족과 함께, 여전히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다.
후배 제대군인들에게 그는 현실적인 조언을 건넨다.
“모두가 대기업에 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군에서 배운 책임감과 체계는 어디서든 통합니다. 군대는 대기업 시스템과 같아요. 그것을 사회의 언어로 바꾸면 어떤 일에서도 경쟁력이 생깁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여전히 ‘장교의 어투’였다.
“우리는 이미 최고의 조직에서 일해 본 사람들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세요. 부대 밖은 전쟁터가 아니라, 당신의 인생을 새로 설계할 수 있는 훈련장입니다.”
1. 솔직해지자
거짓말은 언젠가 복리의 악재로 돌아온다.
2. 나를 알리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
블로그·유튜브는 최고의 무기다.
3. 마케팅은 배워야 하는 기술이다.
배움이 곧 생존이다.
4. 가족의 믿음이 가장 큰 자산이다.
함께 버텨준 가족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