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November Vol.189
‘희망드림 상담소’는 전역(예정)자들의 고민을 들어보고, 해당 분야 전문가가 고민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칼럼입니다.
솔루션 제공. 제본승 변호사(법무법인 아크로)
2020년 1월 육군 원사 전역 후 몇 번의 이직을 거쳐 현재는 요양병원에서 시설관리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시설물을 관리하고 정비하는 것이 적성에 맞아 근무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추가 업무를 하라고 합니다. ‘점심시간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없는 환자의 식사를 돕고 그분들이 식사를 마치면 식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간호조무사’ 자격증 소지자라서 이러한 추가 업무를 부여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부당한 업무 지시라고 생각합니다. 시설관리자로 채용될 당시에 이러한 업무가 주어질 것이라는 고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요양보호사 업무를 병행하라는 회사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정당하게 거부하여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이러한 업무 거부가 해고의 사유가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 희망드림 상담소에서 솔루션 받기를 원하시는 제대군인은 vnet5729@gmail.com으로 고민거리를 보내주세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는 임금과 휴일 등 복지 조건 외에도 어떤 업무 분야를 맡을지에 관한 사항을 포함한 ‘근로조건’을 정하게 됩니다(근로기준법 제17조 제1항,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8조 제1호). 그런데 고용주가 채용 당시와 전혀 다른 성격의 업무를 수행하라고 지시하거나, 심지어 부서 배치를 변경하거나, 다른 지역 영업소로의 이전을 명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이 같은 업무내용의 추가, 변경에 관한 지시는 고용주가 자신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에 따라 한 것인데, 대법원에서는 ‘전직이나 전보 등 피용자가 제공하여야 할 근로의 종류와 내용 또는 장소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것은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여 업무상 필요한 범위 안에서는 상당한 재량을 인정한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90다12366 해고무효확인 사건). 다만 업무지시가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는 근로기준법 규정(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을 위반했거나 권리남용이었다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그 지시는 위법하여 무효라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경영상 필요성이 명확하거나, 근로자 간 형평성에 문제가 없다거나, 근로자가 입을 피해가 크지 않다거나, 채용조건인 업무 분야와 지나치게 다른 업무가 아니었다면 추가업무 또는 업무변경을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연에서 고용주가 지시한 ‘점심시간에 혼자 식사를 할 수 없는 환자의 식사를 도우라’는 업무는 당초 사연자의 채용 조건인 ‘시설관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업무입니다. 이 같은 업무는 노인복지법에 따른 자격을 가진 요양보호사의 업무(노인 등의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 등의 업무, 노인복지법 제39조의 2 제1항)라 할 수 있어 기존 업무에서 필요한 업무상 능력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사연자는 간호조무사 자격을 갖고 있는데, 간호조무사는 간호사를 보조하여 환자에 대한 간호 및 진료의 보조 등을 할 수 있고,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하여’는 의사의 지도 하에 환자의 요양을 위한 간호 및 진료 보조를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의료법 제2조 제2항 제5호 가 내지 다목, 제80조의 2). 이처럼 사연자가 해당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러한 사항은 사연자 개인의 특별한 능력사항일 뿐 본인의 업무영역에서 요구되는 능력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더욱이 고용주가 경영상 필요에 의해 요양보호사를 추가 채용하지 않고 시설관리자를 통해 이 같은 업무를 실시해야 할 특별한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나아가 위 같은 업무지시에 따라 사연자는 법률상 정해진 휴게시간을 침해받게 됐습니다(근로기준법 제54조 ①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한다. ②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근로자는 단지 새로운 업무를 부과받은 것을 넘어서 법에서 보장한 휴식권을 침해받는 피해까지 입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고용주의 업무지시는 부당하다고 볼 수 있어 그 지시를 거부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사연자가 업무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했다면, 그 해고는 일종의 징계해고로서 해고가 정당한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① 고용주의 업무지시가 정당한지, ② 사연자의 업무지시 거부가 해고에 이를 징계사유인지 등이 고려될 것입니다. 그런데 부당한 업무지시에 대한 거부를 이유로 한 해고는 부당해고라는 대법원 판례에 비춰봤을 때(대법원 91다20548 사건) 고용주의 해고는 부당해고가 될 것입니다. 도리어 고용주는 당초 시설관리자로 채용된 사연자의 근로조건을 부당하게 변경하여 근로조건 준수의무를 위반해 도리어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도 볼 수 있고(근로기준법 제19조), 법정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아 형사처벌 책임도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근로기준법 제110조 제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