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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 my Life
굿 JOB 굿 LIFE

다시 한번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을까?

박진호 예비역 육군 대위

2023년 제대군인 리스타트 챌린지 수기 공모전 장려상(요약본)

다시 한번 나라를 위해 싸울수 있을까?

전역사; 국가와 국민 위해 한 몸 바치리
“상황장교! 앞에 나와서 전역사(轉役辭) 한번 해봐!”
주간 상황 회의를 끝내고 작전지도를 마치신 사단장님의 명이 떨어졌다. 지휘통제실 한쪽 구석의 상황장교 자리에서 야간 근무를 했기에 몽롱한 상태였던 나는 쭈뼛쭈뼛하며 단상 앞으로 나가 사단장님 이하 참모들과 화상으로 참석하신 예하 부대 지휘관들 앞에 섰다.
수방사 52사단 지휘통제실 상황장교 중 한 명이었던 나는 그날의 마지막 근무를 마치면 휴가가 예정되어 있었고, 그 이후에는 두 달간의 직업보도반 교육 그리곤 전역이었다. 코로나 사태라는 혼란한 와중에 조용히 떠나고 싶었는데 누군가의 언질이 있었던 것일까? 지금은 수방사령관이 되신 사단장님은 나를 그냥 떠나보낼 생각이 없으셨나 보다.
“특전사에서 뛰고 쏘는 것밖에 모르던 제가 군 생활의 마지막을 제 고향인 광명시에서 그것도 52사단 작전처에서 마무리할 수 있어서 크나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랑했던 군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밖에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제 한 몸 바치겠습니다!”
잠이 덜 깬 와중에 내뱉은 말은 두서없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단장님께서 격려 말씀과 손목시계를 주셨는데 퇴근하는 길에 시계는 같이 고생했던 상황병에게 채워주고 나왔다. 그것으로 군대에서 수행했던 나의 임무는 모두 끝났다.
차를 몰고 위병소를 빠져나와 내가 했던 말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니 지난 10년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풍비박산 난 집안의 자식이었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고 고3 때 특전부사관으로 입대하려던 나를 한사코 말리시던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7년간의 장교 복무 조건으로 군 장학금이 지원되는 대학에 진학했다. 졸업 이후 곧바로 장교로 임관한 나는 소원대로 특전사 장교가 되어 전국의 하늘과 산, 바다를 뛰어다니며 군 생활을 했다. 내겐 군대가 곧 집이고 가족이었다. 그런 날이 계속될 줄로만 알았다.

전역할 결심; 군복보다 방화복이 익숙해져
군 생활밖에 모르던 내가 전직을 꿈꾸게 된 건 특전사에서 중대장을 하던 때였다. 안타까운 국가적 참사 이후 대한민국의 재난 대응 체계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국방부는 특전사를 재난에 대비한 긴급구조 지원 기관으로 지정하였고, 부대별로 전시 임무 외에 유사시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부대를 창설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 이전에도 특전사가 재난 대응을 해왔으나 일시적이고 비전문적으로 인력을 동원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상 매우 난감한 업무였다. 인력, 장비, 전문성 등 모든 것이 없는 상황에서 기존에 하던 임무에 추가로 119구조대에 준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부대를 재편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운 없는 부대의 중대장 중의 한 명이 바로 나였다.
막막했지만 한 단계씩 업무를 풀어나갔다.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은 소방의 119구조대였으므로 소방의 체계, 장비, 구조기법 등을 배워나갔고 소방학교 교관 초청 교육 및 장비 도입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런 와중에 서울소방학교에 위탁교육을 다녀와 부대원들에게 최소한의 화재 대응 기법과 기본적인 구조 기술을 가르쳐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처음에는 막막한 임무였지만 점점 재난 구조 부대에 걸맞는 구색을 갖추어나갔고, 그것이 계속해서 전수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였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흘렀을 때 나는 군복보다 방화복이 더 익숙해졌고 자연스럽게 소방공무원으로의 전직을 꿈꾸게 되었다.
내가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숙소에 복귀했을 때는 소방공무원 필기시험이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운 좋게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체력시험을 자신만만하게 준비하던 나는 보기 좋게 낙방하였다. 의욕이 앞선 탓에 부상을 입고 만 것이었다.

가슴이 답답할 때면 광명소방서에 가 있었다
시험에 불합격한 직후 당연히 합격을 예상하고 모든 계획을 수립했던 나는 곧바로 혼란에 빠졌다. 소방공무원 시험은 1년에 한 번뿐이었고 늘 나오던 봉급이 당장 다음 달이면 끊길 상황이었다. 시험은 고사하고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전에 없던 불안감과 절망에 사로잡힌 나는 백방으로 해결책을 강구했다. 취업을 생각하기도 했으나 소방공무원 시험만 준비한 나에게 취업에 필요한 스펙이 마련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애초에 전직을 결심한 이유가 단순히 취직을 위한 게 아니라 나름의 큰 뜻이 있었기에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불현듯 제대군인지원센터가 생각났다. 국방전직교육원의 기본교육 이후 나는 전역 예정 장교로 분류되어 주기적으로 제대군인지원센터 담당자분의 연락을 받았었다. 그분은 취업에 필요한 여러 도움을 주려고 하셨지만 나는 소방공무원 시험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기에 필요 없다고 생각하여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담당자분께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설명해 드렸더니 정확하게 이해해주었고 일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직장을 알아봐 주셨다. 두 개의 업체를 주선해주셨는데 나는 두 번의 면접을 통해 코오롱 연구소의 보안근무자로 취직하게 되었다. 또한, 취업 직후 6개월간 받는 전직지원금을 일시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처리해주셨다. 면접 때부터 나의 상황을 설명해 드렸기 때문에 직원들이 모두 나의 상황을 이해해주어 나는 근무시간 외에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시험일지라도 다음 시험일은 빠르게 다가왔다. 일, 공부, 재활치료, 운동을 병행하니 정신없이 계절이 바뀌어 어느덧 원서 접수 기간이 다가왔다. 준비되었다고 자신했지만 언제나 변수의 연속이었다. 필기시험을 9일 앞두고 코로나에 확진되어 격리되기도 하고, 운동하다가 계속해서 부상에 시달렸다. 마음대로 풀리는 것이 하나도 없어 가슴이 답답할 때면 나는 늘 자취방 건너편에 있는 광명소방서로 가곤 했다.
그 뒤에는 ‘장미정원’이라는 공개공지(公開公地)가 있었는데 벤치에 앉아 소방서 청사와 소방차를 한없이 바라보며 내가 왜 소방관이 되려고 하는지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기나긴 고독한 싸움 끝에 나는 2022년 경기도 소방공무원 시험에 최종 합격하였다. 합격 후 2주 뒤 나는 바로 경기도소방학교에 입교했는데 절묘하게도 회사 재직 기간 1년을 채웠기 때문에 퇴직금도 받을 수 있었다. 그것까지 계산하고 취업을 제안해주신 제대군인지원센터 담당자분의 혜안에 감탄했다.
5개월간의 소방학교 교육도 도전의 연속이었다. 급한 성격 탓에 남들은 잘하는 것을 실수하기 일쑤였고 동기들과의 트러블도 간혹 있었다. 중요한 평가를 앞두고 코로나에 확진되어 1주일간 격리되기도 하였으며, 구급차 실습을 할 때는 생떼를 부리는 환자를 만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훈련병처럼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무척 고되었다. 하지만 기껏 노력해서 시험에 합격했는데 여기서 교육을 수료하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터였다. 게다가 소방학교의 성적은 소방서 배치 지역을 결정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동기들 간의 경쟁도 치열하였다. 합격만 하면 쉴 수 있을 줄 알았더니 또 다른 경쟁의 연속이었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소방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다행스럽게 연고지인 광명소방서에 배치되어 정식 근무를 시작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또 다른 기회에 감사
어느덧 나의 소방관 생활도 1년이 다 되어간다. 근무일 아침이 되면 나는 수험생 시절에 찾았던 그 ‘장미정원’을 쓸곤 한다. 그날의 업무와 출동이 힘들 때면 수험생 시절 벤치에 앉아서 다짐했던 마음가짐을 다시 떠올려본다.
많은 사람이 군 생활은 시간 낭비였고 인생의 지우고 싶은 부분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나에게 군 생활은 사회로 전직할 새로운 기회를 주었고, 내가 진정으로 추구하던 삶의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아마 군인이 되지 않았다면 소방관이라는 길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소방관 생활을 버텨낼 만큼의 체력과 정신력도 기를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더 이상 군복을 입지는 않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 국가와 국민에 헌신할 기회를 얻게 되어서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의 국토와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바치고 있는 모든 후배 장병의 건강을 기원하며, 또한 그들이 전역한 이후에도 안정된 삶을 영위하기를 소망해본다. 아울러 전역 군인의 행복한 삶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해주는 제대군인지원센터의 지속적인 발전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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