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와 함께 백제의 옛 도읍지로 백제 역사 유적이 많아 남아있는 공주. 금강의 남쪽, 공산성과 무령왕릉, 봉황산으로 둘러싸인 오목한 이 지역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제민천을 중심으로 공주목 관아, 충청감영 등 옛 주요 관청 건물과 공주시청, 그리고 근대의 유적과 함께 골목골목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자리한 원도심으로 이제는 새롭게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공주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나태주 시인은 시 ‘풀꽃’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제민천을 중심으로 하는 공주의 원도심은 이 시구에 꼭 들어맞는 곳이다. 금강의 물길을 따라 형성된 공주에서 금강의 지류 중 하나인 제민천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관청들이 들어섰고, 근대에 들어서는 공주시청, 공주의료원, 공주고, 공주여고, 충남도청 등이 자리하면서 공주시민들의 삶의 중심이 되었다. 제민천을 중심으로 주택가와 상가가 형성되면서 사람들은 제민천에서 빨래도 하고 놀이도 하면서 그렇게 이 지역의 중심으로 오랜 시간 자리 잡았다. 하지만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공주시를 비껴가고,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순식간에 충남의 중심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1980년대, 금강 너머 북쪽의 논밭이었던 신관동 일대가 신시가지로 개발되면서 순식간에 사람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떠나게 된다. 그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제민천 주변은 사람도, 물자도, 시간도 멈춘 듯 변화 없이 정체되었다. 마치 제민천이 흐르지 않는 하천이 된 것처럼.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다시 사람도, 시간도 흐르게 된다. 그 시작 역시 제민천이었다. 제민천을 생태하천으로 만들면서 주변을 정비하고 저류지와 습지 등을 만들어 제민천을 흐르게 했다. 그리고 생명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하면서 살아난 제민천 주변으로 사람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제민천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을 감싸고 있는 것은 봉황산과 공산성이다. 높지는 않지만 포근한 봉황산 아래에 4~5년 전부터 제민천 주변으로 사람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단순히 귀농이나 귀촌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제민천 주변 마을들이 주는 매력에 빠진 이들이 둥지를 튼 것이다. 그 첫 시작은 한옥 게스트하우스 봉황재로 60년이 넘은 옛 한옥의 멋을 그대로 살린 이곳에 묵고 간 이들이 동네의 매력에 빠져 하나둘 모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제민천을 중심으로 로컬 자원이나 사람들을 활용한 다양한 곳들이 생겨났고 사람이 흐르는 곳이 되었다. 현대판 곳간을 표방하는 ‘곡물집’은 어느 사이에 낯설어진 우리의 토종 곡물을 소개하고 토종 곡물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탐구하는 곳이다. 토종 곡물을 재료로 한 음료와 메뉴,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토종 벼와 콩, 녹두 율무 등을 재료로 한 그레인 스프레드나 라이스칩, 그레인 파우더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양한 식경험을 할 수 있는 식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앞으로는 ‘식경험 미식 학교’도 설립할 예정이다. 제민천에 위치한 독특한 건물에 자리잡은 카페 프론트와 책방인 블루프린트북 역시 단순히 무엇인가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예전에 하숙집으로 운영되었던 공간을 고친 이곳의 1층엔 제민천을 향해 오픈된 카페 프론트가 자리잡고 있다. 제민천을 산책하거나 오가는 주민들이 언제든 들려 맛있는 커피 한잔을 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플랫오트와 런던포그밀크티, 앉은뱅이밀 수제 쿠키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3층에 자리한 블루프린트북은 작은 동네 독립서점을 표방하는 곳으로 평일에는 무인으로 운영되고 사전 예약 시 심야책방으로도 이용 가능한 곳이다. 이제 공주 원도심에서의 하루는 제민천 주변을 산책하며 향긋한 모닝커피 한잔을 하거나 갓 구워나온 빵을 사고, 동네 책방에 들러 다양한 책들을 읽거나 구입하며 흘러간다. 저녁에는 동네 작은 바에 들러 한잔하거나 공유 스페이스에서 진행하는 청음회에 참가하고 제민천 야경을 둘러보다 집으로 돌아간다. 서울 어느 핫플레이스에서의 하루가 아니라 공주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