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빛과 그림자’, ‘이별’, ‘당신은 모르실거야’, ‘당신만을 사랑해’ 등을 지었다. 패티김, 혜은이 등 가수가 그의 노래를 불러 대중의 심금을 울렸다. 1927년 평안북도 영변 출생. 본명은 최치정(崔致禎). 평양 종로국민학교와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9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의 전신인 치과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치과대학 선배인 김영순이 조직한 악단에 가입해 활동한 뒤 1950년 일본 도쿄로 가서 재즈 음악과 색소폰 연주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1952년 악단을 조직해 주일 미군 부대를 순회하면서 공연했다. 당시 예명이 요시야 준(吉屋潤)이었다. 이 일본식 예명을 1960년 귀국 이후에도 활용했다. 일본에서는 ‘요시야’가 성이었지만 한국에서는 ‘길’이 성이 됐다. 1960년대에 서‘ 울의 찬가’, 빛‘ 과 그림자’ 등을 작곡했고 1970년대에 ‘이별’, 사‘ 랑은 영원히’, 당‘ 신은 모르실거야’, ‘당신만을 사랑해’ 등을 발표했다. 1995년 6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일본 사업가. 주켄공업(樹硏工業)을 창업해 카메라와 시계, 자동차, 의료기기 등에 들어가는 초소형 톱니바퀴나 나사 등 플라스틱 부품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업으로 키워냈다. 1935년 나고야 출생.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공고 재학 중에는 미장공, 인쇄공, 제빵사 등으로 일했다. 아르바이트 중 재즈 밴드 활동에서 가장 즐거움을 느꼈다. 아이치대 법경학부에 입학하고 나서도 밴드생활을 이어갔다. 졸업 후 화학회사에서 3년간 경험을 쌓은 뒤 1965년 개인 사업체로 주켄공업을 창업했다. 구성원들이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도록 하는 기업 문화를 만들고 운영해 더욱 주목받았다. 주켄공업은 출퇴근이 자유다. 개발은 누구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며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한다. 정년도 없다. 자발적으로 일하도록 하는 기업 문화 속에서 오히려 내로라하는 장인이 속속 배출됐다.
한국인 작곡가와 일본인 사업가.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노력’과 ‘결실’을 주제로 한 글의 서두에 올린 이유가 궁금하시리라. 둘에게는 남다른 노력으로 음악계와 사업계에서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보다 나는 마쓰우라 모토오가 길옥윤으로부터 받은 큰 가르침을 공유하고자 한다. 두 사람 소개는 그에 앞서 필요한 기본 정보 제공 측면에서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50년대 초에 이어진다. 당시 길옥윤은 일본 제일의 색소폰 연주자로 명성을 날렸다. 길옥윤은 지인으로부터 트롬본을 연주하는 10대 청년을 추천받아 오디션 없이 자신의 재즈 밴드에 받아들인다. 그 청년이 마쓰우라 모토오다. 그는 어느 날 길옥윤으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자네, 재즈곡을 몇 곡이나 외우고 있나?”
“300곡 정도는 연주할 수 있습니다.”
길옥윤은 “마음을 담아서 연주할 수 없다면 외웠다고 할 수 없네.” 라며 말한다. “자네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린 사람이 있나? 한 사람의 마음에 말을 걸어 본 적이 있냐는 말일세.” 이어 그는 본론을 꺼낸다.
“매일 자네의 온 마음을 담아서 한 곡씩만 외우도록 하게. 3년이면 1,000곡이 넘지. 그것이 바로 진정한 프로가 되는 길일세. 자네가 음악을 계속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라는 점을 명심하게. 나는 인생은 얇은 종이를 한 겹 두 겹 겹치는 거라고 생각한다네. 그렇게 몇 년이고 쉬지 않고 겹친 두께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지.”
마쓰우라는 책 ‘주켄 사람들’에서 길옥윤을 “내게 인생과 기업 경영의 모든 근본을 각인시켜 준 세 사람”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얇은 종이 한 겹 두 겹은 쉽게 찢어진다. 그러나 얇은 종이를 몇 년간 겹쳐 올린 두께는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찢지 못할 힘을 발휘한다. 길옥윤은 이런 축적의 노력을 마쓰우라에게 가르쳤고, 마쓰우라는 이 가르침을 사업에 적용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이 가르침에는 더 곱씹어야 할 대목이 있다. 쉬‘ 지 않고’다. 노력은 정기적금을 붓듯이 꼬박꼬박 기울여야 한다. 쉰 시간은 그전에 노력한 시간을 삭제한다. 쉰 시간이 길수록 전에 쌓아놓았던 노력 중 무위로 돌아가는 부분이 커진다. 얇은 종이를 몇 년 동안 겹친 두께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데, ‘쉬지 않고’ 겹쳐야만 그 두께가 나온다.
보완할 대목도 있다. 길옥윤은 ‘얇은 종이’라고 표현했지만, 남보다 더 잘하려면 남보다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이를테면 하루에 두 시간 노력할 경우 기량이 두 배로 향상되는 데 36개월이 걸린다면, 하루에 네 시간 노력할 경우 기량이 두 배로 향상되는 기간이 18개월로 단축된다고 설명할 수 있다. 기량이 네 배로 향상되는 기간은 각각 72개월과 36개월로, 간격이 더 벌어진다. 다른 사람보다 더 기울인 노력의 결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적으로 더 커지는 것이다.
노력 축적에 필요한 기본 활동이 측정과 기록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수원 전 특허청장의 내공을 전한다. 그는 마라톤과 색소폰 연주 등을 취미로 즐긴다. 그가 약 10년 전 마라톤 대회 후 열린 달리기 동호회 뒤풀이 행사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다. 그 달리기 동호회멤버인 나도 행사에 참석했다. 뜨거운 갈채 속에 앙코르곡까지 들려주고 자리로 돌아온 그에게 물었다.
“얼마나 연습하면 그 경지에 오를 수 있나요?”
이런 질문에는 대개 “입문한 지 10년 됐다”는 식으로 ‘햇수’가 돌아온다. 대답의 형식이 뜻밖이었다.
“지금까지 1,400시간 정도 연습했어요.”
매번 연습 시간을 기록하고 집계한다는 얘기였다.
“주말에 한 번, 5시간 정도 연습합니다. 그럼 일 년에 250~300시간이 됩니다. 연습량 1,400시간은 약 5년 가까운 기간에 누적된 것이죠. 색소폰 연주는 2007년에 시작했어요.”
그는 연습한 시간을 기록하면 “시간과 노력의 힘을 믿게 된다.”고 말했다. 노력한 시간은 반드시 성취라는 보상을 준다는 것을 믿게 된다는 것이었다. 다만 성과가 바로 나오기를 조급하게 기대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실력이 계단식으로 향상되더군요. 그리고 그 계단은 초기일수록 다음 계단에 이르기까지 오래 걸립니다. 계단 수평면이 긴 것이죠. 하지만 연습 시간을 쌓아가면 어느 순간 다음 계단에 올라선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간은 지렛대라고도 할 수 있다. 노력한 기간이 길수록 지렛대가 길어진다. 노력을 다년간 축적한 뒤에는 남과 같은 힘을 들이더라도 훨씬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꾸준히 노력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젊을수록 좋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아니라 소소익선(少少益善), 즉 어릴수록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 값진 결실을 마주치고 싶은가? 그 결실은 우리가 지금부터 꾸준히, 오랜 기간에 걸쳐 기울이는 노력이 주는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