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W TO START
  • HOW TO WORK
  • HOW TO LIVE
반갑다 새 인생

영원한 현역,
70까지 선발 등판을
꿈꾼다!

2022년 제대군인 리스타트 챌린지 수기 우수상

글 · 김종근 예비역 육군 준위

70까지 선발 등판을 꿈꾼다

시설관리는 야구에서 수비와 비슷하다. 관리사무소에는 소장, 경리, 시설, 미화 및 감사·의결하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있다. 야구의 수비에서 투수, 포수, 내야, 외야, 더그아웃과 많이 닮았다. 게임에 출전한 투수를 ‘등판’, 나머지는 ‘출장’이라 하는데, 나는 투수(소장)를 맡고 있다. 첫 직장인 12층 빌딩에서 36개월 근무를 마치고, 234개 상가가 밀집된 대형 건물을 관리하는 두 번째 직장으로 옮겼다. 첫 직장에서 노련해져 불안감은 없다.

진정한 원팀의 전제 조건은, 직원들 잘 섬기고 나부터 솔선수범하는 것. 우리 직원들은 곧 한 몸이 될 것이다. 신체 건강하고 큰 실수만 없다면 70까지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MLB의 전설적인 선발 투수 랜디 존슨, 불혹의 KBO 클로저 오승환처럼. 다시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군 복무와 다른 점은 전투화 끈을 매지 않는다는 것, 전우를 대신하여 직장 동료가 있다는 것이다. 출근하여 당직 근무자에게 R형 소방수신기, 각종 설비시스템, 지하 주차장 시설들이 이상 없음을 보고받는다.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을 시각, 청각, 후각을 동원하여 살펴보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목장갑을 끼고 꽃들이 자라는 화단에서 잡풀을 뽑는다. 배수펌프 고장으로 인한 소동, 불량 입주기업과 관리소가 주차 문제로 충돌했던 엊그제 기억에 모닝커피 맛이 씁쓸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감내해야만 한다. 경리 직원의 환한 미소가 적잖은 위로가 된다. 얼떨결에 전직하여 좌충우돌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첫 직장에서의 용전분투!

나는 36년을 복무하고 2019년 6월 전역했다. 전역 3개월 전, 제대군인지원센터의 1일 워크숍에 참가하여 자기소개서 검토를 부탁했다. 상담사께서 “선생님에게 꼭 맞는 구인처가 있다”고 하여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Clinic받은 서류를 제출해 첫 직장에 취업했다. 맞춤형 자격(전기기사, 소방안전관리자 1급) 보유가 비장의 카드였다. 용역회사에서 선발 후 파견하는 근무 형태이며, 하루의 인수인계를 거쳐 12층 건물의 30개 상가와 부대시설, 직원 6명을 관리하는 빌딩관리소장이 되었다. 전기 및 소방 안전관리, 각종 시설물 관리, 행정 처리 직무가 부여되었다.

첫날부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군에 갓 입대한 이등병의 심정이 이러하리라. 그만두고 싶었지만 용역회사 대표님과의 면담이 떠올랐다. “사회 경험은 없지만, 오랜 군 생활 경험으로 잘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선발했다”는 진심이 느껴졌던 말씀.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최소 3일은 부딪쳐 봐야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파악해 나갔다. 신기하게도 3일쯤 지나자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의 근원은 각종 어려운 과제를 해결했던 군 생활의 노하우였다. 새로운 환경과 직무에 익숙하지 못한 것일 뿐,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전임자가 깔끔하게 해결하지 못한 난제들이 밀려왔다. 소방종합정밀점검에서 지적받은 일부는 자체 해결, 전문적인 부분은 업체에 의뢰하였다. 관할 소방서에 신속하게 조치 결과를 보고하였고, 시설은 최단 시간 내에 복구되어 정상적으로 가동되었다. 여름 폭우와 겨울 폭설 등 기상으로 인한 문제들은 인터넷과 본사의 기술 자문으로 해결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버틴 2년, 큰 문제는 없어졌고 작은 것들만 조치하면 되었기에 마음이 편했다. 대표님에게 “경험이 없는 저를 어떻게 믿고 현장에 배치하셨는지 궁금하다”며 너스레를 떨 정도로 여유까지 생겼다. 나는 ‘포크레인처럼 흙을 한 삽 크게는 못 퍼내지만, 삽질을 계속하여 어떤 큰일도 결국 해내고야 마는 기질’이 있다.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 모든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사회 진출을 위한 노력이 열매를 맺다

나는 통신병과 준사관으로 복무했고, 통신은 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전기에 대한 실무 경험은 많았다. 그러나 국가공인자격증은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군에서 시행하는 국가기술자격 검정의 전기기능사 시험에 응시했다. 1차 이론, 2차 실기에 통과하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이후 전기기사에 도전했다. 약 3년 간 많이 응시했고 떨어졌다. 벼락치기로 공부한 결과였다. 그러나 ‘Never give up’의 신념으로 끈질기게 응시했고, 자연스럽게 책상에 앉았다. 엉덩이의 힘이랄까? 몰랐던 내용이 조금씩 이해되었고 문제 해결 시간은 점차 빨라졌다. 결과 발표 날, Q-net에서 불합격을 확인했지만 조금만 더하면 합격하겠다는 자신감으로 불타올랐다. 전직 기간 중 3개월을 공부에 집중한 결과 최종 합격하였다. 온라인 수강만으로 전기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 것이다. 수험생으로 땀 흘리는 남편과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 또한 큰 소득이었다. 이 습관들은 내게 소방안전관리자 1급, 가스 일반시설 안전관리자 자격증을 덤으로 안겨 주었다.

영원한 현역으로서

“이제 와서 무슨 공부냐? 나는 안 된다”라고 이야기하는 동료가 꽤 있었다. 그리고 도전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꾸준히 노력하면 불가능이 없다는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눈에 안보였지만 반복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눈에 들어왔고 조금씩 재미를 더해 갔다. 군 복무 중 먼저 전역한 여러 선배님들이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하지 못하고 자주 옮겨 다니는 것을 봤다. 지금와서 생각해 볼 때,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화된 자격을 준비하지 않았거나 힘들었기 때문일 것(내가 첫 직장에 발을 디뎠을 때 포기하고 싶었던 것처럼)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수기를 쓰면서 느낀 것이 많다. 사회로 전직하여 처음 맞닥뜨렸던 당황스러운 일들과 준비하면서 하나씩 쌓아 온 열매들을 보면 코끝이 찡해온다. 취업한 일자리가 현장 관리직 이어서 상‘ 처뿐인 훈장’을 피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안정되었던 작은 일터를 떠나 큰 곳에서 동분서주하면서 지금도 현실 안주를 경계한다. 물이 고여서 썩지 않도록 매일 조금씩 변화하며 새로움으로 나아가겠다.

저의 변변찮은 경험이 선후배님들께 도움이 되길 소망하며 감히 한 말씀 올립니다. 본인이 잘하는 일에 우선 취업하세요. 그리고 후일을 도모하시기 바랍니다. 자격을 갖추는 일이나 직장생활은 조금만 견디면 해결되고 곧 익숙해집니다. 우리는 과감하게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악전고투를 극복하고 황무지를 개간한 역전의 용사입니다. 각종 임무의 성공적인 완수를 위해 불철주야 열정을 쏟아부었고, 부대가 칭찬받으면 가슴 뭉클한 전우애와 자긍심이 하늘을 찔렀던 평생 군인이었습니다.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든, 그러한 정신과 각오로 임한다면 다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군 복무 경험을 되살려 자신 있게 도전하시고, 취업에 성공하셨으면 제대군인의 자부심으로 항상 멋지게 살면 좋겠습니다. 제대군인 모두 파이팅!

※ 본 수기는 개인의 경험으로 정부의 정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본 수기는 지면 관계상 내용이 다소 요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