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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새 인생

부장님!
부팅이 안 됩니다

2022년 제대군인 리스타트 챌린지 수기 우수상

글 · 박재현 예비역 공군 준위

늦은 밤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치고 잠을 청하려는 순간, 난데없이 휴대폰이 울렸다. 스팸이려니 하고 확인하자마자 바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급한 음성이 들려온다.
“부장님! ㅇㅇ함 사통 정비사 김 하사입니다. 밤늦게 죄송합니다, 공기건조기의 부팅이 안 됩니다.”
“괜찮습니다. 일단 전원을 껐다가 켜서 다시 시도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제어 보드를 체크해 보세요.”
얼마나 다급했으면 나한테까지 전화했을까? 순간 안타까운 마음과 고마운 생각이 함께 들었다. 현역 시절 야간에 긴급한 전화를 받고 꼭두새벽에도 출동해야 했던 때가 떠올랐다. 나는 지금 방산협력업체 입사 4년 차로, 현역 같은 느낌으로 일하고 있다.

나는 비교적 늦은, 만기 전역 2년을 앞두고 은퇴 준비를 시작했다. 그간 전역 5년 전부터는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들어왔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군 업무에 집중해야 했고, 또한 제2의 직업을 어떤 직종으로 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시작할 수가 없었다. 다만 주변 선배나 동료들이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 전기기사 등의 자격증 취득에 치중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직업보도교육 명령이 내려왔다. 제대군인지원센터의 장기복무자 사회적응교육 과정에 곧장 입과해 강사분들의 정성 어린 지도와 교육 관계자들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았다. 막연하기만 했던 인생 2막의 방향을 조금씩 잡아가기 시작했고, 교육이 마무리될 무렵 두 가지를 얻었다. 첫째는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격증도 중요하지만 지인들 도움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었다. 교육 일정을 마무리하자마자 시골 고향으로 향했다.
봄철 일손 요청이 왔기 때문이다. 몸은 고단했지만 농촌 체험을 통한 소중한 은퇴 준비라고 생각했다. ‘잠깐이면 되겠지’ 시작했던 일이 가을까지 길게 이어졌다. 얼마 후 지인으로부터 일자리 소개를 받았다. 용인 인근 골프 연습장의 관리 업무였다. 당장 출근이 가능한가 물어왔지만 집과 거리가 멀어 매일 출퇴근이 어렵고, 골프 관련 자격증도 전혀 없던 터라 선뜻 응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정정하시던 89세 어머님의 건강 상태가 갑자기 악화하였다. 진단 결과 위암 말기 판정으로 나왔다. 가족회의끝에 수술하기 힘든 상황이라 판단하고, 어머니가 제일 편안해하시는 시골집에서 요양하다가 보내드리기로 했다. 3월 말 전역신고를 위해 본가에 잠시 갔다가 곧장 시골로 내려왔다. 어머님이 걱정되어 전역 축하를 받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6월 하순 어느 날, 뒤척임 없이 호흡만 겨우 하시던 어머님은 목사님의 도움으로 마지막 숨을 멈추셨다. 가슴이 복받치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어머님을 보내드리니 한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머님을 여읜 슬픔을 뒤로하고 그해 여름 제대군인지원센터의 안내로 건설안전감시단 양성과정에 등록했다. 전혀 접해 보지 않은 분야였으나 호기심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교육생들은 모두 진지했고, 금방이라도 취업할 것만 같았다. 일부 교육생은 이미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교육만 이수하면 바로 건설현장 취업이 가능했지만, 욕심이 생겨 건설안전 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안전관리자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강사가 추천해 준 도서를 집중적으로 보고, 인터넷 강의를 빠짐없이 수강한 결과 1차 이론시험은 무난히 합격했다. 그리고 2차 실기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보여 시골 일손을 도우며 준비했고, 몇 달 후 실기 시험을 쳤다. 합격일 거라고 기대했으나 내 이름이 없었다. ‘이 길도 내 길이 아닌가?’ 일단 다음 시험까지 준비해보기로 마음을 달래며 기분 전환 겸 지인 모임에 나갔다. 여기에서도 취업에 관한 얘기가 쏟아지고 기가 죽었다. 그때, 내 처지를 눈치챈 한 지인이 자기가 거래하는 회사에서 제대군인 출신을 선호하는데 면접이나 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신경 써서 건넨 제안을 쉽게 거절할 수 없어 바로 다음 날 방문했다. ‘네오시스템’이란 간판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들고 사장과 면담했다. 회사소개와 업무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내일부터라도 일할 수 있냐고 물었다. 전공한 전자 분야보다는 기계 분야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며칠간 고민 끝에 결국 부딪혀 보기로 마음먹었다.

2019년 새해. 군복도 양복 차림도 아니었지만 드디어 제2의 직업에 첫발을 디뎠다. 출근 첫날 바로 근무에 투입되었다. 처음맡은 일은 모터 분해 조립 보조였다. 사장을 제외하고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고 명함만 부장이지 신입사원이나 다름없었기에 모든 것을 배워야 했다. 군에서는 계급이 서열을 좌우하지만, 이곳은 철저하게 경력이 우선이었다. 경험과 아는 것만이 지위를 결정하는 것 같았다. 처음 나를 지도한 과장은 귀찮은 듯 말도 없이 작업에 몰두했다. 난 눈치만 보다가 필요한 공구나 부품을 챙겨 주는 게 일이었다. 부품 규격도 생소해 헤매기 일쑤였고 기계 용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힘든 하루를 보내니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앞섰다. 하사 시절보다 더 힘들게 느껴졌다. 그러나 매일 일찍 출근하여 청소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내가 여기서 못 버티면 다른 데 가도 마찬가지겠지.’ 3개월이 흘러 일이 손에 잡혀갈 때쯤 함께하던 과장이 퇴사해 선임 연구원한테 다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이는 아들뻘인데 더 얄미운 선임으로 다가왔다. 좀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면 좋으련만 도면 하나 던져 주고 조립해 보라고 했다. 오기가 생겨 겨우 마무리하면, 뜯고 다시 조립하라는 얘기에 열 받기 일쑤였다. 작업 중 작은 실수라도 하면 곧장 사장한테 보고해서 이중으로 욕을 먹는 경험도 하면서 정말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월급은 꼬박꼬박 나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존심을 다 내려놓으며 1년을 버티고 2년 차부터는 단독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협력 업체에 납품도 가고 부대 요청에 의한 이동 정비도 다녔다. 입고 및 이동 정비는 군 생활 30여 년 동안 수행했던 터라 별 어려움 없이 소화했다. 항상 내가 먼저 인사하고 다가간 덕분인지 동료들과의 관계도 개선되고 담당해야 할 업무를 선임으로부터 무난히 전수받았다. 3년 차부터는 모든 업무가 한눈에 들어오고 일에 자신감도 생겼다. 부품 검사, 조립, 수정, 제품 출고, 입고, 이동정비, 재고관리 등 모든 분야를 관리·감독할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군대와 끈끈한 인연의 연속이다. 육군 하사로 입대해 공군 준위로 예편, 이제는 해군 관련 업무를 하고 있다. 예나지금이나 맡은 바 업무에서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아야 직성이 풀린다. 가끔 예비역으로 복무 중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야간에 걸려 오는 전화를 주시하고, 해군 정비사들이나 협력업체에서 정비 관련 문의가 오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내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고, 나를 믿고 맡겨주는 동료도 있다. 입사 4년 차, 인생 2막의 직업,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엊그제 야간에도 해군 정비사의 전화를 받았다.
“부장님! 압축기 압력이 안 올라갑니다.”

※ 본 수기는 개인의 경험으로 정부의 정책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본 수기는 지면 관계상 내용이 다소 요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