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시장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어딘가 낡고 투박한 점포와 식재료와 식료품 위주의 한정된 품목들, 젊은 층보다는 고연령층들이 주로 오가는 가운데 곳곳에 오가는 떠들썩한 흥정 행위.
과연 그것이 전통 시장의 전부일까?
낮은 한옥 지붕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전주 한옥마을. 그 안을 빼곡하게 채운 갖가지 음식점들과 주전부리들, 그리고 넘쳐나는 사람들. 전통을 표방하지만, 어딘가 전통과는 다소 거리가 먼 상품들과 다소 비슷비슷한 먹거리 보다는 조금 더 사람냄새 나는 일상의 전주를 느끼고 싶다면 전주 남부시장으로 발걸음해야 한다. 풍남문을 기준으로 남쪽에 자리한 남부시장은 1473년 발생해 지금까지 계승된 역사적 시장으로 예전에는 호남 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의 집산지로 유명했으며 그만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농수산물과 토산물이 넘쳐났고 조선 후기에는 전국 3대 시장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곳 역시 쇠퇴하기 시작했다. 특히 21세기 이후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옥마을이 흥하면서 상대적으로 유동 인구가 감소하고 빈 점포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침체가 지속되었다. 이에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전성시 사업’을 통해 청년 장사꾼 육성을 통한 전통 시장 활성화를 꾀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청년몰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그리고 2013년 해당 사업이 종료된 이후, 청년 상인들과 상인회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 21개의 청년 상인 점포가 외부 지원없이 자치로 운영되고 있다.
청년몰을 방문하려면 남부시장을 찾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야 한다. 남부시장 어딘가에 있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찾는 것이 그 첫 단계다. 청년몰이 창고 등으로 방치되었던 남부시장의 2층 공간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넓은 남부시장 이곳저곳을 다니며 유명한 콩나물 국밥이나 피순대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 2층으로 향하면 1층과는 또 다른, 레트로한 감성의 공간들이 펼쳐진다. 상인들이 자재와 물품들을 방치하듯 쌓아두었던 크고 작은 창고들의 겉모습을 그대로 살린 외형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나 판매 아이템의 특성을 살려 꾸민 공간들이 저마다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보통의 시장들과 달리 뻥 뚫린 옥상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근사한 펍에서는 노을 진 하늘에 어울리는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소담한 책방 앞에는 치즈 태비 고양이 한 마리가 여유롭게 앉아 있기도 하다. 걸음을 옮기다 보면 색다른 쥬얼리들이 올망졸망 전시된 곳에서 발걸음이 멈춰진다. 흙으로 도자 쥬얼리와 도자기한복인형을 빚어 만드는 이색 도예공방 ‘세라누리’다. 자연을 모티브로 한 핸드메이드 도자 쥬얼리와 조선시대 한복의 드레이핑을 정교하게 표현한 도자 인형들이 저마다 나를 향해 손짓한다.
목이 마를 때쯤 발견한 ‘드로잉파티’. 상호만 보고 그림 공방인가 싶어 방문해 보니 과일을 활용한 맛있는 메뉴들을 판매하는 곳이다. 인근 한옥 마을과 천변에 인접해 관광이나 피크닉을 하기 좋은 위치에 있다는 점을 활용해 ‘내가 그리는 파티’라는 의미처럼 여행이나 휴식, 피크닉, 행사 등에서 간단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토스트와 쥬스, 커피 등의 메뉴를 테이크아웃으로 제공하거나 케이터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곳들 외에도 메뉴판 없이 취향을 말하면 커스텀으로 칵테일을 만들어주는 ‘바, 차가운 새벽’이나 깔끔한 그릇에 올려진 맛깔난 돈카츠와 덮밥 등을 먹을 수 있는 ‘백수의 찬’, 맞춤제작 자수전문점인 ‘피치모모’, 사장님이 직접 그린 웹툰 캐릭터를 비롯한 추억의 문방구 물품들을 만날 수 있는 ‘백방구’, 전통공예 매듭으로 키링이나 뱃지같은 패션 소품을 만드는 ‘연희공방’, 동네 책방을 표방하며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선보이고 전시도 하는 ‘토닥토닥’까지. 청년몰에 가면 평범한 청년들이 자신만의 이야기에 개성을 담아 재미있는 공간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처럼 이곳저곳 구경하고 먹거나 만들거나 하면서 전주에서의 색다른 하루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