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히어로

새로운 도전의 아이콘

최영재

예비역 육군 대위

도전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새로운 삶에 대한 목표 의식? 자신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생각? 때로 도전이라는 것은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작은 사랑에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도전이 우리의 삶을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데려가곤 한다.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도전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는 방송인 최영재를 만나보았다.

글 · 양샘   사진 · 김재이   영상 · 하주현

특전사의 전설과 딸 바보 아빠

“장교로 10년 동안 육군에서 복무하고 전역했습니다.”

본인 소개를 부탁하는 첫 질문에 그의 답변은 간단했다. 과연 그 10년의 군 생활이 그렇게 간단했을까. 용인대학교 경호학과. 태권도를 비롯하여 도합 13단의 무술 실력. 45기 학사장교 임관 뒤 특전사 복무. 최정예로 구성되는 707대테러부대 선발과 교관 생활. 레바논 UN 평화유지군과 UAE 군사훈련협력단 고공팀 교관으로 2차례 파병. 그 밖에도 크고 다양한 훈련들과 강하조장(Jumpmaster), 컴뱃다이버(SCUBA), 고공강하(HALO) 교육 수료, 한미 연합작전 참여 등 그를 설명하는 것들은 많다. 그런데도 그는 굳이 그 시절을 자랑하려 하지 않는다. 한 종편채널 <강철부대> 라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지고 유튜버와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나 자신에게 충실한 한 명의 인간 최영재이자 한 사람의 남편이요 두 아이의 아빠다.

“전역 후,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해 개인 헤어숍을 운영하고 있고, 키즈 카페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송을 시작하면서 방송인 활동과 유튜버, 최근에는 군사학과 초빙교수를 맡아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두 딸이 성장하면서 친구처럼 교감할 수 있는 대상이 되고 싶었습니다. 여자아이들이 평생 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하다가 아이들의 머리를 아빠가 해주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 미용을 배우게 되었지요. 아이들이 저에게 와서 “아빠, 이 머리 어떻게 하는 거야? 아빠 나 이 머리 해줘” 얘기를 하니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키즈 카페도 마찬가지로 아내와 함께 육아하며 아이들이 편하게 놀면서 같이 추억을 나누기 위해 하게 되었습니다.”

두 자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에는 따스한 빛이 번졌다. 하지만 아무리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도 장교 출신에 군에서 리더 역할을 도맡아 하던 이가 전혀 다른 직종, 그것도 바닥부터 새로운 일을 배우고 시작한다는 것이 과연 쉬웠을까.

“처음 도전할 때 망설였어요. 10년 동안 리더로 생활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의 통제를 받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미용사라는 직업은 군대라는 곳과는 전혀 다르다 보니 자존심에 내가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딸들을 위해서라면 그냥 해야겠다,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밑바닥에서 청소부터 시작했어요. 군 시절 정말 힘든 훈련도 많이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도 많이 했는데, 이 정도는 내가 나를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도전을 했고 덕분에 10살, 많게는 20살 가까이 어린 친구들과 함께 청소나 샴푸 같은 것을 하면서 어울리고 소통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도전과 두려움,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

그렇다면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는 어땠을까.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마 인생에서 가장 고민이 많은 시기가 아니었을까요. 사회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부담감이 매우 커서 결정도 쉽지 않았고, 전역 후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는 것도 막막했고요. 군에서 해왔던 역할의 연장 선상을 생각할 수도 있는데, 사회에 입문하면 그 여건들이 보편적으로 없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그럴 경우 내가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하고 두려움도 있어요. 저도 군에서 했던 임무와 직책을 연결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고민도 굉장히 많았었어요. 군에서 했던 일과 연관된 것을 찾아갈 것인가, 새로운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

그는 전역 후 군에서의 활동을 살리는 길과 대학 시절 전공을 살려 경호원으로 나가는 길, 2가지를 설정했다. 하지만 그전에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영어였다. 언어가 되어야 활동을 할 수 있는 무대를 한국을 넘어 더 넓힐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침 아내가 토익 강사여서 전역하기 전부터 수강생으로 영어 강의를 듣고 더불어 군대에서 10년 동안 생활해 왔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준비했다.

“전역 후 새로운 일들을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진 않죠. 내가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서로 다른 분야에 시간을 할애하면서 경험이 없는 세계에 들어가는 건데 당연히 두렵죠.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지적이나 질책을 받았을 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다른 분야에 대해 경험하는 모든 것이 도전이다 보니 내가 목표로 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내 삶에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재산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이겨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시작,
새로운 도전을 해 나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생각하는
모습이 될 겁니다.


멈추지 않는 도전, 새로운 도전

“군 생활 10년 동안 모든 훈련이 굉장히 기억에 남습니다. 특수부대원으로서 좋지 않은 상황과 환경, 날씨 속에서 훈련하는 것이 의미가 있었죠. 너무 추웠던 날 강원도 바다와 산속에서 수영하고 작전했던 경험들, 파병 갔을 때 정말 위험했던 경험들도요. 하나하나가 힘들었고 기억에 남기 때문에 딱 하나 뽑기는 어렵지만, 지나고 나니 전부 특별했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이 10년의 시간이 지금 사회에 나와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100%를 넘어 200%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군에서 리더로 지휘·통솔하는 생활을 안 했다면 현재 사회에서 하는 사업들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군 생활을 통해 정신적·육체적으로 보통 사람들보다 강인하게 단련이 되었기에 힘든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힘들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기준선이 높아졌다고 한다.

“군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을 때, 그 순간들이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사회에 나왔을 때 육체적으로 그 정도까지 힘들 수가 없어요. 덕분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자신감과 내 자신을 믿게 되는 강인함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사회에 나와 기술적으로 배워가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내가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겪어온 모든 군 생활이 현재의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자신이 사회에 나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겪고,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도전해왔기 때문일까. 수많은 예비 최영재들에게 진심을 다한 당부를 전한다.

“사회에 나왔을 때 내가 무엇을 할까라는 고민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 그리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준비하고 시작한다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는 않아도 각자에게 맞는 시기가 올 겁니다. 저 역시 지금이 되기까지 5년, 7년 이렇게 시간이 지나야 했고, 비로소 이러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처럼 말입니다. 당장 전역하고 무엇인가를 이루겠다보다 새로운 시작, 새로운 도전을 하나하나 해 나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의 때가 와서 내가 생각하는 모습이 될 겁니다. 그리고 제대군인지원센터나 여러 기관의 지원과 도움도 충분히 받으시고 경험해보셨으면 합니다. 내가 도전하고 꿈을 가지고 있는 열정을 놓치지 말고 끝까지 가지고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