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새 인생

북위 36.5˚의 삶

글 · 장민우(예비역 육군 대위)

나와 마주서는 시간

전역 후 마주한 사회. 일말의 변명거리도 없이 실패하였다.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자신과 사회에 떳떳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이상이 너무나 컸고, 준비가 부족했다. 복무 중 한 협동조합 공채를 준비하면서 사회적 경제 분야 공부와 물류 및 유통관리사와 지게차운전기능사를 취득했지만 협동조합 산하 물류센터 업무는 너무 생소하고 이질적이었다. 조직에 융화되지 못하고 업무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임원면접 자리에선 ‘아직까지 본인이 너무 군인 스럽다고 생각되지 않은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비영리 시민활동 조직을 기반으로 조성된 사회적 경제 주체인 사회적 기업과 시민단체의 근본적 속성이 나 자신과 부합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고, 조직이라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보장받던 것으로부터 완전히 무장 해제가 되었다. 여기에서 근본적인 물음이 떠올랐다. 부모님께 떳떳한 아들이 되고자 육군 군장학생과 학군사관후보생(ROTC)을 거치면서 많은 것들을 경험했지만, 삶이 너무나 목표 지향적이고 기계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전역 후 찾아온 실패 앞에서 많은 것이 해제되는 순간 이제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1년에 걸쳐 여행길을 나섰다.

발길 닿는 대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고 여행의 틈틈이 1365 자원봉사포털 사이트와 사회복지 자원봉사 인증관리 사이트를 통해 봉사활동도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격한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어떠한 삶의 모습일지라도 그것을 쉽게 성공과 실패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너무도 평범하지만 중요한 가치를 되새기게 되었다. 결국 모든 여행의 시작은 집으로 돌아가는데 있다는 사실, 그곳에 우리의 가족이 있고, 소박한 일상과 평범함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삶의 목표이자 우리의 정체성임에 감사를 느꼈다. 내 삶을 대함에 있어 조금은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은 몸과 마음에 여유를 찾아 주었고, 결국 사랑하는 누군가가 곁에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길 위의 삶

1년의 공백기를 거쳐 처음으로 제대군인지원센터와 고용노동부를 통해 취업 준비에 매진하였다. 직업상담사분들과 연계하여 대인 상담과 MBTI 등 각종 심리검사를 거쳐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고, 취업 정보를 가능한 많이 수집하면서 취업시장의 흐름을 읽고자 노력했다. 이를 통해 나에게 맞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국립공원 관리업무를 선정했다. 이에 따라 취업 관련 전문기술과정 이수의 필요성을 확인하였고, 따라 국가기간·전략산업 직종 훈련으로 선정된 자연생태복원기사 양성과정을 4개월에 걸쳐 교육받았다. 대학 전공이었던 지리학이 문·이과 공통의 통합적 성격이 짙어 생태학에 대한 접근이 용이했고, 방공무기체계 운용과 부대 관리 과정에서 습득한 군수 분야 지식은 토목학을 공부하는데 배경지식을 넓혀주었다. 그리고 복무 중 각종 법률 규정을 검토하여 실무에 적용했던 경험은 법률체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환경 관련 법률을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양성과정이 마무리 될 즈음 국립소백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탐방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기간제 근로자에 지원을 했고 최종 면접에 합격, 군 복무경력과 전역 후 전문성 제고를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재난구조대원으로서 산악구조와 산불 예방, 공원시설물 정비 및 동절기 제설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교관임무 수행을 통해 정립된 스피치 역량을 토대로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안전산행 홍보 방송도 진행하고, 등산 전문 채널인 마운틴 TV의 국립공원 촬영 편에선 전문인솔자로 출연하기도 했다. 기간제 근로자란 신분적 한계가 있었지만 직무 전문성을 강화하고자 재직기간 중 끊임없이 노력했던 모습이 동료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좋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그렇게 직장생활이 안정화 되어가던 중 직장 8년 선배였던 아내와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면서 소백산이 위치한 경상북도 영주는 나에게 제2의 고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조선 중기 학자 남사고 선생이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고 일컬었던 소백산과 북위 36.5도에 위치하여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이곳 영주가 나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을 선물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후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시험을 거쳐 신분의 안정성을 보장받게 되었고, 사랑스러운 딸아이도 태어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가족이란 테두리가 완성되면서 보다 자랑스러운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고자 직무 전문성을 좀 더 높이기 위한 굴착기·로더·롤러 등 중장비 기계 운용에 대한 자격증 공부에 매진하였다. 그러던 중 경상북도 북부 내륙지역의 국도를 관리하고 있던 영주국토관리사무소에서 도로보수분야 국도관리원을 선발한다는 공고를 접하게 되었다. 국립공원 구조대원으로서 재난 상황에 대비한 평시 탐방로 보수업무를 통해 각종 기계사용 능력을 제고하였고, 산불 예방 및 제설업무를 위한 차량 운행경력이 있었던 만큼 서류전형은 무사히 통과하였지만 면접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대학과 대학원 학업 이수 과정 및 군 복무경력이 현장 직군보단 행정직군에 좀 더 적합한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불합격이란 결과를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몇 개월 후 조직개편으로 추가 선발의 기회가 찾아왔고 다시 도전, 동일한 문제 제기 상황에서 군 전역 이후 삶의 경로를 차분하게 전달하였다. 평범하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소박한 일상 그 자체가 진실로 추구하는 삶의 목표이며, 그 꿈을 이루고자 끊임없이 자기 계발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음을 호소하고, 나의 새로운 인생 경로가 깊은 고민 끝에 이뤄진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진심이 전달된 것이었을까. 두 번째 도전에서 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당신의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응원합니다.

인생의 전환점마다 힘든 난관들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의 군인으로서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았던 지난날의 당신과 우리 모두가 오늘의 당신을 응원하고 있음을 잊지 말길 바란다. 평범하지만 소박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당신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