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린 기회는 땅이 유리한 것만 못하고 땅이 유리한 것은 사람이 화합하는 것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하(下)편에서 맹자는 화합을 강조하는 말로 포문을 열고 있다. 맹자는 군대의 예를 들면서 하늘의 때, 땅의 이로움, 인간의 화합을 승패의 관건으로 꼽았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날씨, 방위, 날짜의 길흉에 견주어 하늘이 내린 절호의 때를 맞는 것도 필요하나 성이 높고 못이 깊으며 병기와 갑옷, 군량이 비축된 땅의 유리함만 못하고, 땅의 조건이 아무리 유리하다 해도 사람 간의 화합이 없으면 끝내는 성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난공불락의 상대를 함락시키는 데는 하늘의 때와 땅의 유리함에 앞서 사람들 사이의 융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화합은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과제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목표와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제한된 자원을 놓고 다른 이들과 경쟁하고, 서로 간에 발생하는 차이에 불만을 품거나갈등과 분쟁을 빚기 쉽다. 또한 공동체에 속해 있는 구성원들 간에 서로 양보하고 포용하며 화목하게 화합하는 모습보다 서로 시기하고 다투며 편을 나누어 따돌리고 제압하려는 모습을 더 빈번하게 발견하곤 한다. 사람들이 지닌 이와 같은 이기적이고 미성숙한 면모로 인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화합을 애써 강조해왔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화합이 쉬운 일이었다면 굳이 화합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거론하거나 당부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화합은 요원하기만 한 것일까?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우즈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화합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이들은 자신의 저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Survival of the Friendliest)』에서 협력하고 소통하는 친화력이 종의 생존에 필수적이라 하면서 사나운 늑대나 침팬지보다 정서적 교감과 소통에 능한 개나 보노보의 개체 수가 는 것을 그 예로 들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통념과 상반된 것으로 힘의 논리에 의한 경쟁과 지배에 관한 오랜 신념에 도전한다. 이들은 인간이 살아남은 것은 더 많은 적을 정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은 친구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한편, 친화력 이면의 외부 집단을 향한 혐오와 비인간화 경향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사실 화합이라는 단어와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직과 대상 가운데 하나가 군대와 군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군이라는 특수한 체계 자체가 적을 상대로 하며 그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전투력을 확보하고 유지하여 증강하는 것을 절대 절명의 사명으로 표방하기에 화합과는 영 거리가 먼 것 같다. 오히려 화합과 정반대의 구도와 입장에서 긴장과 갈등, 반목, 경쟁, 싸움, 승리를 전제로 존재하고 화합과 상충되는 과정과 목표를 향해 기능하고 작동하는 집단이 곧 군대고 군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이런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나, 생각해보면 화합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는 군이 역설적이게도 다른 어느 조직보다 화합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조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4시간 전시에 대비해야 하는 군대와 군인만큼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집단도 없을 것이다. 한 치의 오류나 지체도 용납될 수 없는 군의 삼엄한 위계질서와 임무수행의 작동원리가 차질없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규칙만큼이나 그 규칙을 준행하는 구성원 간의 존중과 소통을 토대로 한 화합의 정신과 실천이 필수적이다. 대규모 집단생활, 엄격한 규율과 통제, 사생활의 제한과 침범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로를 향한 배려, 양보, 협력이 더욱 빛을 발한다. 이것이 빠진 군 생활은 하루 속히 벗어나고픈 악몽의 시간이 된다. 반면에 같은 상황에서도 불편과 불쾌를 겪고 있는 동료에게 편의를 양보하고 힘들어 하는 동료의 짐을 나눠지며 화합의 역량을 기를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군대는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조직이기보다는 전쟁, 파괴, 살상을 방어하고 억제하며 저항하기 위한 평화와 화합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상명하달의 엄격한 기강이 요구되는 군대 문화 속에서도 조직이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하는 비결은 바로 구성원 간의 응집, 단합, 결속, 친화, 융화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부족하거나 결여될 경우에 다른 어느 조직보다 심각한 문제와 부작용이 발생하는 곳도 바로 군대다. 한편 군 복무가 대한민국 남성의 필수 의무인 것과 군에서 경험한 화합의 경험을 밑천으로 사회로 진출할 수많은 제대군인의 역할과 영향력을 생각해 볼 때, 제대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은 군 생활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가 속한 사회에서 화합의 촉매제로 기여할 수 있는 소중한 국가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제대군인이라는 지위는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화합의 상징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복무한 이력을 발판으로 엄중한 군 생활 속에서도 숨통을 트이게 하고 활력을 갖게 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 화해, 협력, 친화, 화목을 바탕으로 한 어울림과 조화였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화합의 가치와 기능, 영향을 군대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여실히 경험한 예비 전사의 경험을 사회에 선하게 나누고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설사 내가 복무한 군대에서 화합을 이룬 긍정의 경험보다 화합이 깨진 부정의 경험을 더 많이 했다 하더라도 화합의 가치와 기능을 깨닫게 한 인생의 교훈으로 삼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멋진 제대군인으로 우뚝 설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군 복무 경험은 없지만 군 경험이 화목을 도모하는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가까이서 목격했다. 친구의 오빠가 군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 식구들을 챙기느라 본인 식사는 뒷전이었던 어머니께 “엄마도 어서 오셔서 같이 드세요”라고 해서 가족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다섯 남매 중에 부모 속을 가장 많이 썩힌 철부지 아들이 부모를 귀하게 여기고 흩어진 가족을 연결하는 화합의 용사가 돼 돌아온 것이다. 필자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은 군 제대 후 복학해 아무도 하려 하지 않은 학년 대표를 맡게 됐다. 처음에는 나이 차이가 나고 냉담한 후배들과 화합하는 일이 힘들었지만 군 시절을 떠올리며 인내하고 솔선수범해 먼저 배려했더니 후배들도 차츰 마음을 열고 협조하게 된 일화를 지켜보기도 했다.
공자는 『논어』 자로(子路)편에서 군자는 서로 다르지만 화합하는 ‘和而不同(화이부동)’의 인물로, 소인은 서로 같으면서도 화합하지 못하는 ‘同而不和(동이불화)’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화평케 하는 자를 ‘복 있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크게 칭찬하고 있다. 화합은 거창하고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사소하고 가까이 있는 것일 수 있다. 한데 우리의 일상은 화합, 융화, 평화보다 대립, 갈등, 분열이 만연하기도 한다. 때로는 화합을 가로막는 현실 앞에서 무력해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화합을 깨는 길로 가지 않고 화합을 이루는 길을 모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은 길이기에 더욱 의미 있는 길이 화합의 길이다. 모쪼록 대한민국의 제대군인들이 자랑스러운 ‘화합의 전사’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펼치게 될 눈부신 활약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