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의 운항, 선박 엔진의 운항, 선박통신에 관한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국가자격 시험에 합격하여 소정의 면허를 취득한 자로서 항해사, 기관사, 전자기관사, 통신사, 운항사, 수면비행선박 조종사, 소형선박 조종사로 구분된다.
2006년 7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빚보증으로 집안 물건들이 경매에 붙여지는 모습에 돈이라도 벌자는 마음으로 낯선 해군에 입대했다. 배 많이 타고 진급 잘된다는 전탐이라는 직별을 얻어 나름 인정받고 안정된 직업군인이라는 타이틀에 9년 가까이 해군에 몸담았다. 그러나 추자도에서 야간 당직사관을 할 당시 원인 미상 헬기 추락사고로 동기를 잃는 등 큰 트라우마를 얻어 전역을 결심했다. 막상 전역을 앞두고선 취업이 고민 되었지만 서른이 되면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서른이 되기 3개월 전 전역을 실행했다. 해군처럼 바다에 종사하는 어업관리단, 해양경찰, 상선 등 선박을 이용한 직업에 관심이 많아 해양경찰을 준비하였으나, 세월호 사건으로 해경 모집이 지연되면서 공부를 하고 용돈을 벌기 위해 일단 부산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전역 후 불확실한 미래와 교육비는 부담이 되었으나 국가보훈처의 제대군인지원 프로그램을 소개받아 자기개발에 필요한 교육비 등을 지원 받을 수 있었다. 친절한 상담사는 진로에 대한 고민, 취업 상담 고민 등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같이 걱정해주며 지도해줬고 금전적인 부분을 교육 수당으로 해소할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딱딱한 군대에 있다 보니 국가보훈처도 형식적으로 날 대하고 군대와 다른 점이 없다고 생각한 내 판단은 틀린 것이었고 때로는 형처럼, 아버지처럼 잦은 전화로 근황을 묻는 등 지금도 그 상담사분이 아니었으면 쉽게 좌절하고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을지 모른다. 불투명한 미래와 명확한 계획 없이 전역을 준비하는 전역자는 가까운 지방보훈청을 찾아 상담과 지원을 받으면 불안하고 답답한 현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시 해양수산부와 해군이 MOU를 체결하여 대형선사 LNG선을 탈 수 있게 해양수산연수원 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하였고 열심히 아르바이트와 교육을 병행하며 대형선사인 현대상선에 입사할 수 있었다. 사실 사기업 선박 승선을 앞두고 해양경찰과 상선 사이에 진로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20대에 못해본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기에 일단 한국과 예멘을 오가는 상선에 몸을 실었다. 한국을 떠나 예멘으로 항해하는 16일 동안 해군과 상선은 참 많이 다르구나 하는 이질감을 매일 느꼈다. ‘해군 함정을 많이 탔으니 상선은 아무것도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던 오만은 첫날부터 흔들렸고, 상선에 대한 지식 없이 승선하여 공구하나 찾지 못해 허둥지둥 대며 첫날부터 꾸중을 들으니 전역이 처음으로 후회됐다. -172도 액화 LNG가스가 터지면 도시 하나가 날아간다는 선배들의 말에 늘 긴장 속에 망망대해를 항해하며 적응하려고 버텼다. 7~8개월을 휴가 없이 한국과 예멘만 오고 간다는 선장의 말에 더욱더 상선의 해기사가 아닌 해양경찰이라는 꿈을 포기할 수 없다 생각하던 중 인도네시아 근처에서 전복된 어선에 외국 선원들이 매달려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당연히 구조를 할 줄 알았으나, 화물이 늦게 도착할수록 큰 손해가 발생한다는 발주처의 말에 선사는 고민을 했다. 결국 뒤늦게 그들을 구하러 가긴 했으나 그때 비로소 느꼈다. 20대 대부분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다에서 일하며 사람들을 구조하고 편안히 살 수 있도록 바다를 지켰던 나와 이윤을 먼저 생각하는 사기업은 맞지 않는다고. 결국 나는 짧았던 한 달을 뒤로하고 퇴사를 했다.
다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해양경찰이라는 목표 하나만 보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가 가장 머리가 맑고 편안했던 시간 같다. 미취업 상태지만 노력하면 된다는 확신과 뚜렷한 목표가 있기에 흔들림이 없었으며 부모님도 명확한 목표에 대해 지지해주셨다. 2015년 5월. 해양경찰 해군특채 면접시험이 치러질 여수에서 특채를 준비하는 선·후배들과 만나 이야기를 공유하며 들뜬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시험 하루 전날 아침 뉴스특보로 해경 해체 발표가 나왔고 적게는 1년, 많게는 3~4년을 준비한 전역자들은 실망감과 무기력으로 말을 잃었으며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짐을 싸야 했다. 공통된 꿈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보면서 나도 돌아가야만 했고 또다시 야간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는 일상으로 돌아와 무기력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담당 상담사를 찾아가 교육 훈련수당을 지원받으며 해경에 필요한 해기사, 전파기기통신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를 계기로 열정이 살아나서 면접과 체력시험을 준비했고 결국 그해 10월 재개된 해군특채 해경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해경에 들어와 보니 모든 군 생활과 업무들이 해경 적응에 도움이 되었고 전탐업무 역시 인정받아 자신감 넘치고 적극적인 직원으로 인식되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교육원에서 만난 아내와 함께 해경에서 부부 경찰관으로 종사하며 내 집을 장만하고 날 닮은 아이까지 낳으며 남부럽지 않은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제대군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잘 이용하여 대형선사에 취업해 상선도 승선해 보고, 많지는 않아도 6개월간 지원금도 받아 전역 후 부담도 덜고, 자격 취득을 위한 교육 훈련수당까지. 참 많은 혜택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보훈처 홈페이지를 보면 전역 군인들을 위한 취업 모집 공고, 각종 이벤트, 일자리 소개 등 나라를 위해 애쓴 군인들에 대해 소홀하지 않고 신경 써주는 것 같아 뿌듯하고 내 젊음을 바쳤던 군 생활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용기를 얻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다면
미래의 나도 오늘처럼
멋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리스타트 챌린지 공모 문자를 받은 날, 잠들려는 순간 나를 상담해 주시던 그분이 떠올랐다. 진실한 마음으로 진로와 취업에 도움을 주려고 했던 그분. 따뜻한 말 한마디와 용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기에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뚜렷한 계획 없이 전역 후 방황하고 있다면 중장기 제대군인으로서 처우를 인정받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대군인지원센터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꿈꾸길 바란다. 군 생활이 그저 낭비였고 후회라 생각하지 말고 경험과 능력을 활용하여 더 큰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럴 자격이 있으니깐. 해양경찰인 현재의 나는 해군이었던 과거의 나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용기를 얻었다. 과거의 나를 되돌릴 순 없지만 현재의 나는 미래를 위한 출발선 위, 하나의 시작점에 있다. 그렇기에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불평하지 않으며 후회스러웠던 일들을 바로 잡고 지금처럼 노력한다면 미래의 나도 오늘처럼 멋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