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어록

칼보다 강한 
말 한마디의 지혜
서희

정리 · 편집실

송과 교류하면서 거란과 국교를 맺지 않는 것은 여진족 때문이다.
그들이 압록강 인근을 점거하고 있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육로로 교통하기가 어렵다. 여진을 내쫓고 압록강 일대를 되찾으면
우리가 왜 너희와 굳이 국교를 맺지 않겠느냐.

장위공 서희(章威公 徐熙, 942~998)

고려 성종 당시 거란의 대군 침공에 맞서 말 한마디로 거란군을 철군시키고 오히려 강동 6주까지 되찾아온 것으로 유명한 서희. 그가 단순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가능했던 것일까? 서희는 광종 11년에 18세의 어린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며 처음 벼슬길에 나선다. 이후 사신이 되어 송(宋)나라를 다녀왔으며 돌아와서는 상서좌승을 거쳐 군정의 책임을 맡은 병관어사직에 올랐다. 문관직에서 무관직으로 옮긴 것이다. 당시 당을 이은 송나라와 옛 고구려 땅에 자리한 거란은 힘겨루기 중이었고, 거란은 송과 친교 하면서 자신들을 배척하고 북진정책을 펼치는 고려를 치기 위해 993년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게 된다. 고려 역시 방어를 위해 나섰지만, 선봉 부대가 격파되면서 전세가 불리하게 되었고 이에 대신들은 화친을 주장하거나 서경(평양) 이북의 땅을 떼어주자 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서희는 자신을 지지하는 이지백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소손녕과 담판을 짓게 된다. 서희는 거란의 침공이 단순히 고려를 정복하기 위함이 아닌, 화친을 맺기 위함임을 대화를 통해 알아냈으며, 나아가 ‘병민(兵民)일치’ 제도로 인한 전력의 약점 때문에 거란이 전쟁을 오래 끌고 싶어 하지 않음을 파악한다. 여기에 외교의 장애물로 여진족을 지목함으로써 거란으로 하여금 실리적인 선택을 하게 한다. 덕분에 철군뿐만 아니라 오히려 강동 6주까지 획득하게 된다. 서희는 단순히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개인의 외교역량과 담력, 그리고 정확한 상황 파악과 분석, 그리고 때를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였다. 무엇보다 명분이 아닌 실리에 따라 상대방이 선택할 수 있게끔 하여 서로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