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새 인생

또 다른 품

전역은 익숙한 품을 떠나 새로운 품으로 떠나는 또 하나의 관문이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 어떠한 수호무기를 가져야 할까?

글 · 박철호 예비역 공군 준위

조경관리사란

식물 · 토목 · 물 · 조형물을 이용하여 생활공간을 꾸미고 자연을 보호하고자 도입된 국가공인자격증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환경 파괴로 환경 복원과 주거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과 그 중요성이 급 부각되어 생활공간을 아름답게 꾸미고 자연환경 보호에 대한 관심에 따라 전망이 밝다.

나는 2014년 12월 31일부로 약 35년 11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지역사회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제대군인이다. 젊은 시절 군문에 들어설 때 어머니의 품을 떠나던 초조함과 두려움 이후 군인으로서 성인으로서 내일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살았다. 그러나 무심히 흐르던 시간에 어느새 전역은 코앞이었고 충격 속에 허둥지둥 짐을 싸야했다. 나는 두 번째로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야 하는 허탈함과 전역 후에도 긴 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그 일이 무엇이 될지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전역은 사회라는 밀림 속에 벗겨진 채 놓이는 것이라는 선배의 충고를 들으며, 전역을 1년 앞두고 시작된 교육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주특기가 재취업과 연관성이 적었기에 목표를 설정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학원 문만 두드리고 다녔다. 적성검사 결과도 무엇을 해야 할지 뚜렷하게 가리키지 못했고 마음에 두던 일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적정 연령기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36년 가까이 한눈팔지 않고 성실히 외길을 살아온 나에게 마음을 비우고 즐겁게만 살자는 가족의 권유는 낯설고 공허하기만 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내게 맞는 일은 어디에 있을까? 주변에서 재취업이나 창업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들고 우울한 하루가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국가보훈처로부터 걸려 온 한 통의 전화가 나를 깨웠다. 내게 한 번 주어지는 교육과정에서 조경기술을 배워보라는 추천이었다. 사실 어린 시절 문화적 환경이 열악한 시골에서 보냈던 나는 대신 자연에 대한 정서와 창조적 감수성이 풍부했다. 오랜 시간 잠자고 있던 그 감성이 전화 한 통으로 깨어난 것이다. 망설임 없이 동의하고 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들으며 이 기회가 새 삶을 보장해 주리라는 기대가 들었다. 이후 이론 교육은 경기도 과천으로, 실기 교육은 서울 용산으로, 자격증 시험은 강원도 원주로, 몇 개월 동안 부지런히 다녔다. 집중이 안되거나 힘들기도 하고 귀찮은 순간도 있었지만, 지금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는 생각으로 굳건히 버티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취업의 기회와 더불어 또 다른 삶을 제공받게 되었다.

조경기능사자격을 취득 후 서울 모 구청에서 모집하는 조경공무직 채용에 응시해 시험과정을 무난히 통과하여 마주하게 된 면접관들. 다양한 질문 중 나에게 던져진 건 ‘장기복무를 하고 퇴역한 직업 군인이 왜 쉴 생각을 안 하는가? 이 일을 젊은이들에게 양보할 생각은 없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저는 55세에 정년을 맞았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인생은 60부터니 백세시대니, 유행하는 말에 수긍을 하더라도 55세는 너무나 젊은 나이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제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소모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국가로나 지역사회로 볼때나 낭비일 뿐입니다. 젊은이들의 현실문제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젊은이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들과 견주어서 결코 뒤처지거나 혹은 앞선 삶을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경험이 없는 나의 이런 답변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모른다. 그래도 용기 있는 나의 모습에 일을 맡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작용했으리라. 결국, 전역신고 뒤 정확히 한 달 후 취업에 성공하였고 떳떳한 사회의 일원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첫 출근하는 날, 아내와 자녀들의 얼굴을 봤다. 군 생활을 방랑의 세월이었다고 평가하던 아내에게 평범하면서도 늠름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성실히 떳떳하게, 주어진 직무를 수행하는 나에게 이 사회는 더 이상 밀림이 아니었다. 설사 그렇다 해도 능히 해쳐나갈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조경분야는 수행되는 업무가 다양한 만큼 수요가 많은 편이다. 흔히 생각하듯 맑은 공기 마시고 새소리 들으며 예쁜 꽃과 나무를 심을 수도 있지만, 훨씬 다양한 환경에서 여러 형태의 작업을 한다. 작게는 공원 초화류 식재부터 크게는 가로수 고사목 제거까지 수행하며, 때로는 관련 민원업무를 처리하거나 장마나 태풍 등 기상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사고 수습까지 바쁘고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고된 일과 속에서도 땀방울을 씻어내며 퇴근길을 걸을 수 있었던 건, 내가 이 사회의 시민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일꾼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자긍심이었다. 새로 시작한 인생 2기. 가슴속 한 켠에 새겨놓은 초심유지는 늘 겸손과 성실을, 군 생활에서 오랜 시간 축적해온 군인정신은 솔선수범과 희생, 그리고 책임감을 발휘하게 해 주었다.

또 한 번 정년을 맞이하여 지자체장으로부터 공로감사장을 받던 퇴임식 날, 남은 동료들에게 초심유지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였다. 변하지 않는 몸과 마음의 자세야말로 나를 굳건히 지켜주는 수호무기라고 믿는다. 5년간 공무직을 수행하며 경험한 많은 일은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 새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서 근무하던 관청에서 다른 신분으로 하던 업무를 계속 수행하게 되었다. 새롭게 펼쳐진 또 다른 삶속에서 나는 어느덧 경력자로서 내 위치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삶의 시작점에서 직위, 보수 혹은 사업의 규모가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고심이나 갈등의 요소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수많은 시간을 일심단편으로 국가에 헌신한 뒤 명예로운 인생 후반을 걷는 전역군인에게 하찮은 욕심일 뿐이다. 이 사회의 현실은 전역자에게 밀림일 수도 사막일 수도 절해고도일 수도 있다. 나는 초심유지와 최선매진을 삶의 수호무기로 삼았다. 이 수호무기는 내 삶을 건강하고 보람 있게 지켜주었고 사회가 결코 밀림이 아닌 신선하고 매력 있는 또 다른 품인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이 사회의 현실은 전역자에게 밀림일 수도
사막일 수도 절해고도일 수도 있다.
나는 초심유지와 최선매진을
내 삶의 수호무기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