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펼침

배려의 균형

글 · 선안남 심리학 박사, 선안남심리상담연구소 소장

“더 나은 배려를 위해, 믿는 동시에 믿지 않습니다.”

자신이 군대에서 최고의 선임이었음을 자부하는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조직문화 속에서는 좋은 사람이 반드시 좋은 상사는 아니기 때문에 인간미나 인간성이 아닌, 배려의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에게는 사람들을 대할 때 중요하게 적용하는 배려의 원칙이 있었지요. 바로 ‘믿는다, 믿지 않는다’의 원칙이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그 누구를 대할 때도 ‘믿는다. 믿지 않는다’의 원칙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믿어주기를 바라고 믿어주는 것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너무 믿어줘도 부담을 느끼고요, 또 믿어준다는 게 너무 기대는 것이 되어 결과에 따라 서로 원망하게 되기도 해요. 기대하고 믿는다는 말로 살펴주지 않았다가 서로 오해하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하지요.”

그는 타인을 믿어주면서 또한 믿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여러 계획을 동시에 세웠고, 그 사람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배려하기 위해서는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배려에는 다양한 차원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기 때문이지요. 균형 잡힌 배려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배려를 둘러싼 몇 가지 특징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타자 중심적인 동시에 자기중심적입니다.

배려는 ‘내가’ 하는 것이지만 그 수혜자는 ‘타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타인을 위해 배려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배려를 해주는 것이 아닌 ‘받는 것’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살펴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바탕에는 ‘나’라는 사람의 한계가 있습니다. 나라는 사람의 시야에서, 나라는 사람이 가진 경험의 폭과 나라는 사람이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의 한계 내에서 배려는 이루어지지요. 그래서 어떤 배려이든 ‘나’에서 ‘너’로 닿기 전에 ‘나’라는 사람의 한계가 전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너를 위해’, ‘너를 향해’하는 모든 행동에는 ‘나를 위한’, ‘나를 향한’ 의도가 담겨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배려 속에는 ‘나’와 ‘너’가 모두 담기게 되고 담겨야 합니다. 그 사실을 살피지 않고 누군가를 위한 배려를 실천하다 보면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엇갈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나’에서 ‘너’로 향하는 배려의 길에는 나와 너를 모두 포괄하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을 위한 배려 밑에 깔려 있는 나 중심성의 한계를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 중심적인 배려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배려는 타자 중심적인 동시에 자기중심적입니다.

둘째, 배려하지 않음의 배려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고 우리 마음에서 중요한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그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려 하지요. 특히 누군가가 곤경에 빠진 것 같거나 도움이 필요한 것 같을 때, 배려하기 위해 움직이지요. 하지만 움직이기 전에 일단 한번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실제로 배려가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 아직 분명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힘들 때 필요한 배려에 대해 ‘그저 충분히 스스로 고민해볼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배려하지 않음의 배려’를 이야기합니다. 특히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우리는 자기만의 시간,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속도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주려 해도 타인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만약 아직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우리에게 뭔가를 해주려 한다면 마음에 부담이 생깁니다. 원하지 않을 때 받는 선물은 선물처럼 받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배려‘하는’ 것만 배려로 수용하기보다는 배려‘하지 않는’ 배려를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적인 신뢰가 갖춰져 있는 조건하에서라면, 타인의 결여에 대해 취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태도는 그것을 ‘배려’ 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 p24, 신형철>

타인을 위한 배려 밑에 깔려 있는 나 중심성의
한계를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 중심적인 배려를 실천 할 수 있습니다.
배려는 타자 중심적인 동시에 자기중심적입니다.

셋째, 타인을 위한 배려지만 결국 우리를 위한 배려가 됩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타인은 우리의 거울이 되고 우리의 마음을 담아주는 그릇이 됩니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작은 행동 하나는 한 사회의 배려로 이어지는 연쇄작용을 일으켜 또 다른 배려의 출발선이 됩니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시도하는 작은 배려가 마음의 ‘나비 효과’를 불러오는 것이지요. 그러니 배려는 나라는 사람의 작은 행동이지만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는 큰 힘이 됩니다.

타인을 향한 배려는 결국 나를 향해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이미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을 하는 그 순간, 우리 내면에는 어떤 좋은 에너지가 고이게 됩니다. 내 마음을 배려로 채우고 그 마음을 타인에게 나누어주고 부어줌으로써 우리는 한 사회가 잘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좋은 에너지의 순환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에너지의 파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여진을 우리 내면에 남깁니다. 한 사람의 작은 행동이 한 사회의 큰 에너지로 이어지지요.

배려를 강조하는 이유는 어렵지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배려를 강조합니다. 한 사회에서 어떤 가치가 그렇게 강조된다는 것은 그것이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에, 또 어렵지만 중요하기에 강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배려를 여러 각도에서 균형 잡힌 관점으로 살펴보고 ‘나’에서 ‘너’로 향하는 모든 배려의 길을 통해 끈끈한 ‘우리’를 실감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