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히어로

너와 내가 함께 가기 위한
‘같이’의 배려
유 채 선

예비역 육군 대위

10년 동안 한 조직에 있거나 한 가지 직업에 종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이라면 더욱 그렇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을 하고 있는 유채선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글 · 양샘   사진 · 강권신   영상 · 하주현

10년의 군 생활, 그리고 새로운 꿈

“군 생활이 일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 데, 질문 자체가 큰 의미 없는 것 같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그대로 몸에 녹아있거든요. 평소의 자세, 눈빛, 언어처럼 군 생활 동안 생긴 좋은 습관들이 그대로 제 것이 되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펴진 허리와 상대방을 바라보는 또렷한 눈. 분명한 발음과 어투. CEO라는 직함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달리 편한 캐주얼 차림으로 등장한 유채선 대표. 그러나 사진 촬영과 인터뷰가 진행되자 자연스럽게 잡히는 자세와 풍기는 분위기에서 그의 말처럼 군인 출신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임관하고 소대장을 하면서 강안에서 소초장을 했고, 야전부대의 공보장교, 연대 정훈 과장을 거쳐 판문점에서 근무했어요. 아이티로 해외파병 갔다가 국방홍보원에서 현역 기자와 앵커도 했고 마지막 보직은 여단 정훈참모였습니다.”

1년에 한 번꼴로 근무지를 옮겨 다니며 그만큼 수많은 업무와 보직을 수행했다. 군대라는 큰 조직의 중요한 일원이 되어 전체가 유기적으로 잘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역할이었다. 큰 규모의 조직에서 행정을 경험했다는 것 자체가 보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씩 다른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로 일을 해보았다면, 앞으로는 스스로 주도하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커졌다. 그렇게 10년 만에 사회라는 낯선 정글에 뛰어든 유채선 대표. 하지만, 사회는 생각 이상으로 만만치 않았다.

“여러 직업을 경험해 보았어요. 실직도 해보고요. 그러다가 창업하게 되었는데 잘 맞았어요. 진짜 해보고 싶었던 주도적인 일이 창업이었던 거죠. 실제로 결과도 좋았습니다.”

배려란 함께 간다는 의식,
동료라는 의식이라 생각해요.
눈높이를 맞추고
속도도 맞춰야 하죠.

함께 가기 위한 속도 맞추기

2016년 말,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상업용 부동산 O2O 서비스 플랫폼 회사를 창업해 1년 만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게 된다. 이전에 창업 4개월 만에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를 바탕으로 아이템 선정과 세팅, 수익적인 부분까지 꼼꼼히 따지고 준비했다. 덕분에 개발도 성장도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스타트업을 투자하고 키우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회사를 창업하게 된다.

“군에서 문서 작성, 예산 집행 등 행정업무를 많이 경험해 본 것 자체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회사일 역시 문서로 시작해 문서로 끝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저처럼 문서 작업이 익숙한 예비역들을 고용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행정업무 경험이 있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큰 도움이 되고 있죠.”

그렇게 그는 사회에 나와 누군가와 함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가고 있다. 군대나 사회 모두 사실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이 필수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배려라고 유채선 대표는 말한다.

“배려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간다는 의식, 동료라는 의식이라 생각해요. 함께 가기 위해서는 눈높이를 맞추고, 속도도 맞춰야 하죠. 이런 것 하나하나가 배려이지 않을까요. 의식적으로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와 함께, 조직과 함께 가는 것 자체가 배려의 시작과 끝이라 생각합니다.”

고민보다 Go

현재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CEO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유채선 대표.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도와주면서 더 큰 기업으로 스케일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주 업무로 가장 초기 단계 시드머니 투자부터 시리즈 A 투자, 시리즈 B 투자까지 진행해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고. 그래서 투자했던 기업들, 보육했던 기업들을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계획대로 되었던 게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매 순간 충실히 일을 하다 보면 성과가 나고 재미가 생겨요. 그렇게 한발 한발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목표까지 도달해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것이 생각해왔던 10년 뒤의 목표일지, 바로 앞의 목표일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계속 가보면 10년 뒤에는 이 목표에 도달해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채선 대표의 이런 생각은 자신을 향한 배려이자 많은 이들과 함께 가기 위한 배려가 아닐까. 제2의 인생을 앞둔 예비 제대군인들에게도 같은 마음이 담긴 말을 건넨다.

“군대는 먼저 나오느냐 좀 늦게 나오느냐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언젠가는 나와야 하는 것은 같습니다. 전역하기 전 했던 가장 쓸데없는 고민은 ‘나가서 뭐 하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나오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보다 ‘무엇을 하면 좋겠다’, ‘이것을 할 수 있겠다’에 집중하면 오히려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고 임관하자마자 바로 조직생활을 해서 쉼이 없었어요. 그래서 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실직하고 급여 없이도 살아보고 그런 것이 익숙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그런 여유도 필요하고 공간도, 틈도 필요하더라고요. 그러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것도 하나의 과정이구나 생각하면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